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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1일 10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1일 14시 12분 KST

지구의 탑승자들

gettyimagesbank

남성이 사정할 때 나오는 정액의 속도가 시속 45km라는 기사를 읽는다. 머릿속에 그려본다. 시속 45킬로미터의 속도로 멋지게 날아가는 정자의 모습을. 해방의 기쁨을. 연이어 무너질 듯 빠르게 진동하는 여자의 몸을 떠올린다. 멋진 조합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발적으로 경계를 허물고 무너뜨리는 행위에서 우리는 지극한 쾌락과 조우한다. 만일 운 좋게 수정란이 만들어진다면, 난관을 거쳐 자궁에 이르는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빛의 절반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이 있다. 지구를 떠나 새로운 식민 행성에 정착하기를 결심한 오천 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동면 장치에 잠들어 있다. 120년이라는 운행 시간을 견디기 위해 탑승자들은 모두 냉동상태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4999명의 잠든 사람을 뒤로 하고 누군가는 깨어난다. 우주선 작동을 총괄하는 시스템은 애초에 헤아리지 못한 오류에 대응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다시 동면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한 끝에 그가 알아낸 것은 동면을 해제하는 방법뿐이었다. 이제, 38세의 실버 클래스 승객 제임스는 거대한 우주선 속 인공도시에서 서서히 늙어가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구를 떠난 지는 30년이 지났고 목적지까지는 90년의 여정이 남아있다. 그는 홀로 우주선에서 일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가 지구를 버리고 120년 후의 식민 행성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지리적, 시대적 자살인 동시에 부활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임스가 떠났던 미래의 지구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것이 자라나는 땅이 아니다. 보수와 수리의 번거로움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대체될 수 있는 세상이다. 2등급 엔지니어로 분류되는 제임스가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니체가 말했던 바와 같이 인간이 가치의 설정자이자 창조자가 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비록 거대자본에 의해 계획된, 식민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자신을 맡겼으나, 그의 포부는 원대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면서 자신을 긍정하는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익숙한 시대와 사람들을 떠나 120년을 뛰어 넘은 뒤, 도착 2개월 전에야 일어나 나머지 탐승객들과 아름답게 설계된 강철 도시에서 긴 여정의 마지막을 즐길 예정이었다.

무의미한 생존의 나날이 이어지던 중, 그는 사랑에 빠진다. 수천 개의 동면장치 속 한 명의 여성에게. 결여가 절대적일수록 만남은 더 강렬해진다. 의미 또한 벼락처럼 쏟아진다. 우연은 필연이 된다. 차갑게 잠들어 있는 수많은 그녀들 중 단 한 명을 만난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마주침이었고 압도적 이끌림이었다. 수많은 선택 가능성 중 최상의 상품을 쇼핑하듯 고른 것이 아니라, 어느 우연한 날, 날씨가 바뀌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쫄딱 젖어버리듯, 몰아치는 회오리바람 속에 통째로 빨려 들어가듯. 여기서 그녀는 고유명사가 된다. 대체될 수 없는, 바로 그 "여자"이다. 그는 우주선 내의 도서관과 영상자료실을 뒤져 그녀에 관한 모든 자료를 찾아낸다. 골드 클래스 승객인 그녀의 이름은 오로라, 직업은 작가이다. 그녀의 인터뷰들과 저작들을 접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더 깊이 빠져든다. 이제 그가 당장 대면한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고독이 아니라, 상대를 더 알고 느끼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 앞으로 90년을 더 잠들어 있어야 할 그녀를 깨우고 싶다는 유혹이다. 만일 그가 그녀를 깨운다 해도, 그녀가 그에게 사랑을 느끼리라는 보장은 없다. 확실한 것은, 그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고독한 죽음을 안기리라는 것, 우주의 적막한 공간 속의 속절없는 늙음의 시간을 부과하리라는 것, 그리고 120년의 동면을 치를 만큼 소중했던 또 다른 꿈을 말살시키리라는 것뿐. 1년이 흐른다. 마침내 유혹에 굴복한 사내는 여자를 깨운다. 그들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우주선에 남은 단 두 사람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가 아닌, 만남이 있었고 설렘의 순간과 운명적 조우라고 느낄 만큼의 강렬한 매혹이 일어났다. 함께 탈출을 모색하던 그들은, 그 불가능 앞에 그들만의 세상을 설계하는 것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온전한 낙원은 없다. 그에게는 그녀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는 그녀에게 광활한 우주 속 탑승자로서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선물했다. 도착은 없고 이동만 있는 삶.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 속 비밀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두 사람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과 대면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가장 큰 고통을 준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가장 큰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을.

이는 십여 년 전에 쓰인 존 스파이츠(Jon Spaihts)의 시나리오 "탑승자(passengers)"의 전반부를 요약한 내용이다. 할리우드의 대형 제작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음에도 우주선 내부만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흥행에 참패한다는 당시 경향을 고려한 끝에 프로젝트는 사장되었다. 이와 같은 징크스는 2012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적 흥행을 거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에 의해 깨졌고, 이 시나리오는 조만간 영화화될지도 모른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그리고 여기 21세기의 광활한 인터넷 공간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발견한다. 뉴욕에 사는 그녀는 서울에 사는 그 남자를 내일의 남자라고 불렀다. 두 도시에는 14시간의 시간차가 존재했고 대체로 그녀가 그를 떠올리는 저녁이면 그의 시각은 다음날의 아침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어제의 여자였다. 달력상으로는. 페이스북을 채우는 수많은 얼굴들 중에서 왜 그에게 호기심을 느꼈는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 들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터넷상에 올라온 그의 글을 찾아 읽었다. 검색 엔진에 그의 이름을 돌려보고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그의 얼굴을 찾아내며 조금씩 그에게 더 가까워지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고독이 만든 환상이자 욕구의 투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 멀리 내일을 살아가는 남자의 존재는 하루가 다르게 매혹적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봄날의 새벽 세 시,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날을 살아가는 그 순간, 그녀는 인터넷의 창을 활짝 열고 그를 불렀다. 그때 그는 사무실에서 깜박 잠이 든 상태였다가 메시지 전송 알림소리에 눈을 떴다. 메시지 창을 열어보니 낯선 여자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몇 달에 걸쳐 쌓아온 그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밝히지는 않은 채, 그를 이제 막 한 편의 글을 통해 발견한 듯 굴었다. 그녀의 직관과 두 사람의 공통 취향 덕택에 모든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그해 여름 그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창 장마가 몰아치던 무렵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은 잠깐 비가 그쳐 먹구름 사이로 해가 살짝 얼굴을 내밀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십 센티미터가 넘는 굽의 새 구두를 신고 나갔는데, 길들여지지 않은 탓에 자꾸만 왼쪽 발이 빠져나왔다. 약속시간에 5분 늦은 까닭은, 불편한 구두 덕분에 걸린 시간과 만남이 즐거울 경우를 대비해서 숙소로 다시 돌아가 챙겨온 굽 낮은 신발 때문이었다. 그녀가 가방 속 단화를 꺼내서 갈아 신은 것은 그와 만나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였다. 잠시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그녀는 보다 간편한 걸음으로 그에게 말할 수 있었다.

"함께 걸어요."

그와 밤거리를 헤매는 일은 우주의 한복판을 배회하는 기분을 자아냈다, 낮도, 밤도, 새벽도, 어제도, 내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그녀는 문득, 이기 팝 IGGY POP의 노래 "탑승자 PASSENGER" 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막히게 어울리는 이 순간의 승객이라고. 그녀가 오래도록 그를 깨울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은 그녀의 가방 속 바꿔친 구두처럼 무겁고 은밀한, 그 순간의 승차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끝이 있었고 이별과 고통이 따라왔다.

사랑의 유혹은, 어쩌면 나를, 너를 환희보다 더 큰 고통 속으로 깨워 넣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긴 삶의 여행 속, 때로는 진부한 순간들로 무수히 흩어진 여정 속에 잠시 함께 할 탑승자를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그 시간을 살아가는 나와 당신 삶의 증인이 되는 것이고 서로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기꺼이 누군가를 내 옆자리에 앉히고 달려가는 일. 운이 좋으면 때로는 시나리오 <탑승자들> 속 연인처럼 초신성의 폭발 같은 장관이라든가, 아니면 어제의 여자와 내일의 남자처럼 한강변의 바람에 어지럽게 흩어진 불빛을 함께 헤아리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지구라는 행성은 어쩌면, 세포가 진화를 거듭하여 호모 에로스로 오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아득한 진화의 나날들을 싣고 갈 거대한 탈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지구의 승객들이다.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해 출발하여 도중에 사라질 수억의 정자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속 45 킬로미터의 달려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럴 듯하다. 운 좋게 수정란이 되든 아니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