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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2일 11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3일 14시 12분 KST

선진국형 마음의 자세

Norsk Telegrambyra AS / Reuters

브레이빅을 극우파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미친 놈으로 분류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작자는 2011년 노르웨이 중도 좌파의 청년 캠프를 덮쳐 69명을 죽였고, 꼼꼼하게도 그 전에 시내에 폭탄을 설치해서 8명을 더 죽였다. 반성하지도 않았고 후회조차 한 적이 없다. 당연히 종신형에 처해졌는데, 노르웨이의 감옥은 한국의 감옥에 비하면 어우 별 다섯개짜리 호텔이다만.

이 뻔뻔한 인간은 노르웨이 감옥의 처우가 심해서리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노르웨이 법원은 브레이빅의 주장을 일부 인용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브레이빅의 인권이 몇 가지 지점에서 침해당했다고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법원이 특히 주목한 것은 브레이빅이 독방에 수용되어 있고(어우 야 한국에선 독방은 정치범의 필수 코스이자 징벌 수단이라고. 아아아 야만하다); 다른 재소자들과 교류가 금지되어 있으며; 야간에 그 방실이 큰 이유 없이 수색당하곤 하는데; 게다가 거기 여성 교도관이 동석했다는 것. 이는 다른 재소자들에 비하면 더 심하게 처벌당하고 있는 것인데, 유럽인권규약에 따르면 저지른 죄에 비하여 '지나치게 심한 처우(...)'를 당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거 좀 놀랍지 않나. 아니면 나만 놀라나. 거의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대량살인범에게도 인권은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이것이 법적인 논리이다. 감정을 도외시한 것이라는 비난이 물론 있을 수 있겠으나, 법은, 중립적인 도구이어야만 한다. 법을 적용하는 원칙이야 물론 있어야 하고, 그 원칙은 국가 수준에서 본다면 그 헌법에서 추구하는 가치인 것이고(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 있으며 꽤나 민주적인 경제질서를 채택하고 있고 자유스럽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고 노동을 권리로 보장하는데) EU 기준이라면 여러 협약이 주창하는 가치들이지만 인권은 그 중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이 원칙들을 추구하는 방향을 따르는 한에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적인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수많은 젊은 목숨을 앗아간 살인범이 공개적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조차도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판단을 함으로써 노르웨이의 법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판결이라는 코멘트를 하였다. 즉, 나를 죽이려 했던 자의 인권을 보장하여 주었다니 우리 법원이 역시 훌륭하구나, 이런 평가.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은, 그래 마땅한 인간을 죽일 수 없는 것(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소위 선진국의 절대 다수는 사형제도가 없다), 세금으로 그를 먹여살려야 하는 것, 그것도 어쩌면 서민들보다도 훨씬 더 잘 먹여살려야 한다는 것, 적반하장격으로 인권을 주장하는 미친 놈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수긍해야만 한다는 것, 게다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소송비용까지도 물어줘야만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나의 세금으로 범죄자들이 잘 먹고 잘 산다니 내 돈 아깝다 아 그냥 죽여버려라, 라고 말하면서는, 죄지은 자는 철저히 응징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범죄자에게 인권 따위 없다고 생각해서는, 고생해 마땅하다고 생각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말하자면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사회의 방향성의 문제.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

그니까 요약하자면, 사이다만 좋아해서는 도대체 건강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매우 피곤한 얘기지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