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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25일 05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5일 14시 12분 KST

당신은 무섭지 않은가

매우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라면 아무래도, 저렇게 멀쩡히 눈앞에 보이는 배에서 어떻게 한 명도 건져내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물이 무섭다지만. 그럼 다른 나라의 선박 사고들보다 세월호의 경우가 유난히 어려웠던 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해 버렸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그래서 앞으로 유사 사건이 만에 하나라도 발생할 경우에 대한 어떤 식의 교훈을 얻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년 11월 14일 백남기 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사건은 나에게 있어서 세월호 이후 가장 납득하기 어렵고 어이가 없는 사건이다. 시위가 불법이었든 아니든 폭력적이었든 아니었든, 이것은 별개로 분리해서 따져야 하는 문제다. 이 사고는, '가만히 서 있던' 사람에게 물대포를 쏘아 넘어뜨린 후 '넘어진' 사람에게 또 물대포를 쏜 행위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시위가 불법이었다고 하여 경찰의 이런 행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위가 불법이었으면 시위 주모자와 참가자를 처벌하면 된다. 법대로. 적법하게. 서 있는 사람을 물대포로 쏘는 행위가 불법 시위 참가자에 대하여 가능한 처벌 방식으로 허용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집회나 시위 참가자에 대한 처벌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무슨 소리냐고? 폭력 시위로 상황이 급박한데 경찰이 그럴 정신이 어디 있느냐고? 이런 소리를 하는 당신이야말로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는 거다. 경찰은 '그래도'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공권력을 집행함에 있어서 법을 지키지 않았으면 '경찰' 역시 처벌되어야만 한다. 만일 위법한 공권력 행사 당시의 상황에 참작 사유가 있으면 경찰의 책임이 경감되겠지. 때로는 100% 면책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걱정까지는 당신이 할 필요 없다. 당신은, 99%의 확률로 물대포 앞에 서게 될 사람이지 남을 조준할 수 있는 물대포 뒤에 서 있을 수 있거나 더 나아가 아 그 골치 아픈 인간들 좀 어떻게 해 보라며 저 어디 뜨뜻한 곳 좋은 책상 앞에 앉아서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공권력이라는 것이 적법하게 행사되지 않을 때, 당신을 포함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법'집회에 참석한 것이 잘못이라고? 살기가 힘들어서 도저히 못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게, "식물인간과 뇌사 그 어디 중간쯤"의 몸이 되어 돌아올 정도의 중범죄는 아니지 않나.

그러게 그럼 왜 거기 서 있었냐고? 서 있었던 사람 잘못이라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당신은 스스로의 자유와 운명을 공권력의 손에 턱 맡기게 된다. 공권력의 의중에 거슬리지 않게 잽싸게 도망치고 눈치껏 피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권력에 내키는 대로 행위할 여지를 듬뿍 주는 것이고. 공권력이란 참으로 막강한 것이다. 적법하게 통제되지 않는 공권력 앞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서 있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정말이지 재수 없게 어떤 일은 발생할 수 있다. 말려들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다. 공권력이 악의를 갖고 있지 않아도 그러하다. 막말로 집안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누군가로 오인당해 체포될 수도 그 와중에 이런저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설마 발생하겠냐고? 백남기 씨는 설마 집회 참석하면서 맨 몸으로 서 있다가 물대포 맞을 줄 알았겠는가. 그 가족은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는가.

사고가 발생했으면,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와 실행자를 고의 과실의 경중에 맞추어 처벌하는 것이 순서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데 대하여 유감은 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자기네 강아지가 남의 꽃밭을 짓밟아도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마당에.

사건이 발생한 후 백남기 씨가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볼에 대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아이의 것일 생일케이크의 촛불이 붙여지고 그걸 물끄러미 보는 모습. 굉장히 따뜻하고 소박한 사진이어서 눈물이 났다. 노구라면 노구에 뭘 대단한 것을 바라고 집회에 나섰겠는가. 조금이라도 살기에 편안한 세상. 그런데 현실은 사과조차 없는 세상인 거고. 참으로 슬프고, 사실은 무섭다. 나나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봐서. 억울한데 분하기조차 할까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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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백민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