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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13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2일 14시 12분 KST

때리면 안된다

연합뉴스

영국은 여전히 철도와 우편의 나라다. 아침에 버스나 자가용이나 지하철이 아닌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쓰고 싶지만 얼마나 많은지 안 찾아 봤으니 그건 모르고, 하여간) 참 많고, 우리집에만 해도 하루에도 우편물이 십여 통은 온다. 은행 또는 보험 기타 공과금 관련한 것들도 편지로 오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면 집으로 회사로 카드가 온다. 당연히 잡스런 광고물도 배달되어 오고.

우편물 집배원은 매우 묵직한 가방을 들쳐 메고 대개 도보 또는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 이사 왔을 당시엔 우리 동네에 나이 지긋한 한국인 집배원 아저씨가 계셨는데 이분 말씀이 자기가 유일한 한국인이라며, 그 동안 걸어다니느라 매우 힘들었는데 드디어 차를 지급해줘서 좀 낫다고 했다. 힘든데 자부심은 있는 직업이라고. 그리고 나서는 어쩐지 뵌 일이 없다만.

2013년, 30대 초반의 집배원이 3만 통에 가까운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버리거나 파묻거나 태웠다가 들통이 났다. 일은 당연히 힘들고 지루했을 것이다. 비도 자주 오는 나라에서 길은 축축하고 바람은 불고 주거 형태가 아파트도 아니니 골목골목 헤매고 다니며 각 집마다 일일이 우편함에 직접 넣어줘야 한다. 그 우편물에는 물론 광고전단지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야 할 고지서도 있을 거고, 법적인 효력이 담긴 문서도 있었을 거고, 연애편지도 있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용서를 비는 편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범인은 도저히 시간을 맞춰 배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고되고, 아픈 아이를 포함하여 아이가 둘이고, 업무에선 제일 바닥에 위치해 있으니 배달할 우편물은 거의 쓰레기 같은 광고물이어서 사실상 손해를 끼친 건 없다, 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는 사회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 행위이고, 사람들의 신뢰를 저버렸으며, 쓸모 없어 보여도 이를 배달해 달라고 요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는 쓰레기가 아니었던 것이라며 범인의 주장을 배척한 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얼마 전 인천에서 김치인가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나라가 들끓었을 때, 어린이집 등 보육교사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데 무조건 교사만 탓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꽤 보았다. 물론 보육교사의 처지가 열악하며 이와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필요한 주장이며 논의이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근무환경이 나쁘다는 것과 이를 이유로 한 어린이들에 대한 가혹행위는 매우 별개의 문제이다. 시스템을 핑계로 돌보아야 할 아이들에 대한 폭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시스템을 만든 것은 맞은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봐야 할 아이들이 너무 많아 업무가 고되고 힘들고 박봉이면 아이들을 때려도 되는가? 그럼, 일이 고되다면, 우편배달부가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버려도 되는가? 처우가 나쁘다는 이유로 소방관이 화재를 보고도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업계 사정이 나쁘고 경쟁이 치열하여 변호사가 위법한 줄 알면서도 그를 돕는 건 어떠한가? 하다못해 제조업체의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경우 그 처우가 열악하다 하여서 만드는 제품을 부수거나 슬쩍 잘못 만들어도 된다는 주장은 들어본 일이 없다. 아이란 훈육이든 통제를 위해서든 짜증나서든 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 새끼도 힘들면 손 나가는데 남의 새끼 여럿 돌보기가 쉽나, 뭐 이런 이야기를 남 듣는 데서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를 잘, 성심성의껏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를 입히지 않고 돌보는 것은, 우편물을 맞는 주소에 제대로 배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직업에 있어서 최소한으로 행해야 할 기본적 의무이다. 그것을 못하겠으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 힘들어서 우편물을 가져다 버리고 싶어질 정도면 우편배달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일이 힘들어서 아이를 때리고 싶을 지경이면 아이 돌보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기 태가 채 벗어지지도 않은 그 어린아이를 온 힘을 다해 후려 갈기는 그 기막힌 폭행 동영상을 보고 온 나라가 뒤집어지는 것 같더니, 뭔가 조치가 취해졌다거나 진지하게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또 계속 어린이 폭행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째 별로 많이 신경들 쓰지 않는 것 같다.

잘못된 시스템은 바꿔야 하지만, 아이는 때리면 안된다(사실, 사람은 때리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러면 얘기가 너무 퍼지니까 고만하고). 이 당연한 사실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변화가 있을 때까지 이뤄져야 하고. 제발 좀 우그르르 흥분하고 그 다음엔 잊고 그러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