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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8일 06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8일 14시 12분 KST

아베 미국 방문 감상법

한국의 감각으로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보이는 아베에게 미국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미국은 역사인식과 그 밖의 외교안보 문제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본다. 물론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미국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A급 전범 7명을 교수형에 처하는 것으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단죄했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이 그것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베에 대해 미국이 '실망했다'는 입장을 냈던 것은 이러한 기준 때문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문제라는 차원에서 엄격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ASSOCIATED PRESS

아베 일본 총리의 4월 말 방미와 관련하여 귀추가 주목되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이 결국 성사되었다. 이번 합동연설이 일본 총리로서 사상 최초라는 사실은, 일본이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전당사국이었다는 과거의 멍에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한 멍에를 벗어버릴 기회가 유독 아베에게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미일동맹 기축노선에 서서 대미협조를 강화한 지도자들은 요시다, 기시, 나카소네, 고이즈미를 비롯하여 여러 명 있었다. 그러나 국내외적인 저항이 부담스러워서 좀처럼 손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슈들을 보란 듯이 척척 해치워버리는 단호함에서 아베는 전임자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집단적 자위권의 해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강행 등 미국에 확실하게 보여줄 실적을 쌓았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만 보더라도,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족쇄를 풀고 적극적인 군사적 역할을 통해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협조해 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의 해금은 일본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과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작년 7월 집단적 자위권을 해금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데 이어 금년 상반기 국회에서 관련 법규의 정비까지 끝낼 예정이다. 아베 방미에 맞추어 미일 방위협력지침까지 개정되고 나면 미국으로서는 수십 년의 숙원을 이루는 셈이니 합동연설쯤이야 흔쾌히 내줄 만한 선물인 것이다.

한국의 감각으로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보이는 아베에게 미국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미국은 역사인식과 그 밖의 외교안보 문제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본다. 물론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미국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A급 전범 7명을 교수형에 처하는 것으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단죄했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이 그것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베에 대해 미국이 '실망했다'는 입장을 냈던 것은 이러한 기준 때문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문제라는 차원에서 엄격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인식이나 위안부 문제가 복병이 될 수 있음을 아베 자신도 2007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미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하자 방미를 앞두고 있던 아베는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위안부 문제로 사죄하지는 않겠다'고 발끈했다. 그러나 방미가 임박하자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그들이 위안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우리들은 책임이 있다'고 발언했고, 정상회담에서는 '마음으로부터 동정하고 있으며 죄송한 심정'이라고 언급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미국의 분위기를 잘못 읽고 강경하게 나가다가 급히 궤도를 수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아베는 이번 방미에서 역사인식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총론적으로 반성과 사과, 그리고 과거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미국으로서는 수용 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는 자책골을 넣는 실수도 하는 법이다. 최근 워싱턴의 일본 언론인이 이메일로 칼럼을 보내왔다. 그 칼럼을 읽어보니, 평소 알고 지내는 일본 외교관이 "'위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 문제에 관해서 미국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도록 더욱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본부의 훈령이 잔뜩 와 있다"고 하면서, "(미국 측이) 간섭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한데 (본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미국인이 "요즘 일본이 왜 이러느냐"고 하면서, 일본 외교관으로부터 그런 설명을 듣고는 'go to hell'이라고 대꾸해 줬다고 하더라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겠다는 아베 정권의 집착이 자칫하면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도 미국에 대해 아베 연설의 내용에 관한 직접적인 주문을 하기보다는 미국이 갖고 있는 역사문제의 기준에 부합해야 할 것임을 점잖게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 글은 내일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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