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2월 05일 06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7일 14시 12분 KST

줄지 않는 복부둘레의 주범 여성호르몬

1년 전 내원했던 환자의 차트를 다시 찾아보았다. 처음 내원 시 기입란에 '호르몬 치료중'이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녀도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성호르몬 제재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원래 복부에 자리잡고 있던 섬유성 셀룰라이트가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면서부터 지방 부종까지 형성하여, 복잡한 살성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에, 심부열 고주파를 아무리 해도 반응이 없고 오히려 딱딱했던 셀룰라이트가 조금씩 풀어지면서 부풀어오르기까지 했던 것이다.

Alamy

여성호르몬의 두 얼굴

기억을 더듬어서 초경을 맞이할 무렵을 생각해 보자. 키가 쑥쑥 커지면서 날씬했던 소녀의 다리에 어느 날부터인가 불길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복숭아뼈가 드러나서 앙상하다 싶을 정도로 날렵했던 발목이 뭉툭해지면서 종아리가 굵어진다. 살이 찌나 싶더니 묵직하니 아프기도 하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 초경을 맞는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리통이 굵어지면서 셀룰라이트가 진행된다. 종아리가 전례 없이 땡땡 붓고 발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 무렵에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 발목뼈가 두꺼워졌다고 믿는 여자도 있다.) 그리하여 소녀에서 숙녀로 발돋움하는 18세에 이르면 가지고 있는 지방량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여자는 다리에 셀룰라이트를 지니게 된다. 즉 사춘기에 여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여성스러움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셀룰라이트도 여성호르몬의 분비 양상에 맞춰 같이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에스트로겐으로 대표되는 여성호르몬은 지방 형성을 도모해서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곡선의 몸매를 만드는 한편, 지방 부종을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에 여성성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셀룰라이트를 양성히는 이중성을 지녔다. 즉 여성호르몬은 탐스러운 여성스러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셀룰라이트도 만드는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자에게 셀룰라이트는 숙명인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18세에서 30세 사이 여성의 90퍼센트 이상이 말라깽이이든 육상선수이든 관계없이 셀룰라이트가 발견된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호르몬이라도 막아라!

외부에서 몸 안으로 유입되는 여성호르몬 유사 물질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여도 호르몬으로 인한 셀룰라이트가 생기는 속도를 얼마든지 늦출 수 있다. 피임약, 여성호르몬 치료제, 음식에 포함되었다가 섭취함으로써 우리 몸에 유입되는 외인성 에스트로겐 물질들 때문에, 셀룰라이트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음식에 여성호르몬 유사 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겠나 싶겠지만 어린 여자 아이가 환경호르몬이 다량 포함된 오염된 음식물을 장기간 섭취했을 때 여성호르몬 유사 물질에 노출되어 성조숙증이 생기는 사례는 이미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환경호르몬 등 외인성 에스트로겐 물질은 뇌에서 내분비 생체 피드백을 교란시켜서 호르몬 분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말초 에스트로겐 수용체도 작동시키기 때문에 셀룰라이트 변성을 촉진한다. 이러한 환경호르몬들은 바탕질에 노폐물을 쌓이게 만드는 한편, 여성호르몬과 같은 작용으로 지방 부종, 지방림프부종, 수분 저류 등을 야기한다.

이외에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 피임약이나 갱년기 치료에 사용되는 여성호르몬 제재들인데, 이런 약물들을 복용했을 때에는 치료 효과와 상관없이 살이 찌고 붓는데다 셀룰라이트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찐 살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일러스트 : 강상훈

왜 복부 둘레가 안 줄어드는 걸까?

셀룰라이트가 오로지 '여성호르몬' 카드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경우에는 어떠한 비싼 노력도 물거품일 수 있다. 필자도 여성호르몬의 위력을 간과하여 셀룰라이트 치료를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49세였던 그녀는, 50세가 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고 싶어 큰 맘 먹고 내원했다. 키 153센티미터, 몸무게 45킬로그램인데, 체지방은 15킬로그램이나 체크되어(이 정도 키와 몸무게면 12킬로그램이 적당하다.) 심부열 고주파를 이용해 지방량을 덜어내는 것은 문제없겠다 싶었다. 환자는 복부와 팔뚝살을 줄이기 원했고, 나는 원하는 만큼 줄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살성이 보기 드물게 쫀득쫀득했지만, 복부 둘레도 85센티미터 이상 나왔으므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환자는 쾌활하고 시술에 대한 신뢰도 높았다. 문제는 얼마 뒤에 일어났다. 복부 시술을 하고 3주가 지났는데도 둘레가 1센티미터밖에 안 줄더니, 4주가 지나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복부 둘레가 늘어난 느낌이라고 환자는 호소했다. 몸무게나 체지방량도 그대로였다. 체지방 분석표를 다시 점검하니 기초대사량이 1,000킬로칼로리였다(보통 정상 성인은 1,100킬로칼로리 이상으로 나온다). 하루의 음식 섭취량을 더 줄이도록 하고 고주파 시술을 반복시행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배출을 위한 모든 관리를 했고, 특수 운동 장비기구를 이용한 운동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다행히 팔뚝살은 둘레가 평균치 만큼인 2센티미터 이상 줄어들었지만, 기대가 컸던 복부 둘레에는 차도가 없었다.환자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져 갔다.

2개월이 지나도 효과가 없었다. 정작 둘레가 4센티미터 이상 늘어나 버렸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다른 환자들과 너무나 다른 치료 결과에 환자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뒤 허리는 사진상으로는 눈에 띄게 날씬해졌는데, 허리 둘레가 늘어났다는 것은 환자가 배를 내밀고 측정해서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열심히 시술을 해도 환자는 계속해서 약속한 섭취량보다 훨씬 많은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그런 문제는 의사로서 늘 당면해 온 거였고, 매번 그 이상의 살을 빼 왔기 때문에 비겁한 변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3개월이 지나도 별 다른 효과가 없었다. 결국 치료비의 일부를 환불하고, 치료를 종결하고 말았다.

간과하기 쉬운 여성호르몬이 주범

비슷한 사례가 1년 뒤에 또 있었다. 이번에는 51세의 여자 환자였다. 복부 고주파 시술을 반복해서 했는데, 살이 안 빠지고 오히려 둘레 사이즈가 늘어난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마치 내가 환자한테서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주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적극적인 배출 방법으로 저장성 용액을 피하지방층에 주입하고 캐비테이션 시술을 시행했더니 복부가 꺼지기는커녕 물 먹은 솜처럼 부풀어 오르기까지 했다! 사이즈가 5센티미터까지 늘어나서 난감하던 차에 초음파로 피하지방층을 측정해 보았으나 별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환자는 살을 빼기 위해 평소 한 시간씩 하던 운동을 세 시간이나 하고 있다고 호소했으나, 운동량을 늘이지 말라고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환자가 갱년기 홍조 증상으로 호르몬 치료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바로 중단하게 하였다. 3개월 후 다시 복부 둘레를 재봤더니 늘어났던 복부 둘레가 감소되어 있어서 고주파 치료를 다시 시행하였다. 1개월 후에 재보니 복부 둘레는 처음 재었던 것에서 4센티미터 줄어들어 있었다.

1년 전 내원했던 환자의 차트를 다시 찾아보았다. 처음 내원 시 기입란에 '호르몬 치료중'이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녀도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성호르몬 제재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원래 복부에 자리잡고 있던 섬유성 셀룰라이트가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면서부터 지방 부종까지 형성하여, 복잡한 살성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에, 심부열 고주파를 아무리 해도 반응이 없고 오히려 딱딱했던 셀룰라이트가 조금씩 풀어지면서 부풀어오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녀가 지금 내원한다면, 일단 호르몬 제재 복용을 중지시키고, 진행된 섬유성 셀룰라이트 지방 부종에 대해서는 고주파 시술과 충격파 시술을 병행하여 보다 빠르게 호전시켰을 텐데, 당시에는 충격파 장비도 없어서 섬유화가 진행된 조직에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쉬움이 남는 일이지만 여성호르몬의 무시 못할 영향력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계기였다.

* 이 글은 <제3의 살 - 젊고 건강한 몸매로 만드는 안티셀룰라이트 다이어트>(RHK, 2014)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광고] 네스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