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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3일 10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3일 14시 12분 KST

역사의 기시감(旣視感)

연합뉴스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은 조국이 워털루전투에서 패하자 제정의 부활을 일편단심으로 꿈꿨던 공상적 모험가였다. 그가 유랑자로 여러 망명지들을 떠돌거나 동족의 냉담과 모욕을 견디며 절치부심하는 동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파고는 거세졌고, 구체제 복귀에 골몰하던 부르봉파와 상층 부르주아와 결탁한 오를레앙파가 7월 혁명(1830)과 2월 혁명(1848)으로 차례로 몰락했다. 그 혼돈의 시기에, 보나파르트 왕가의 혈족이라는 점 외에 정치적으로는 거의 무명이었던 그가 그야말로 혜성처럼 제2공화정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에 대한 대중의 환상, 특히 그의 삼촌에 대한 대중의 복고적 열망에 힘입은 바 컸다.

공화정의 임기제 대통령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3년 만에 전격 의회를 해산하고 여론투표(plebiscite)를 통해 쿠데타를 사후에 정당화하며 나폴레옹 3세가 됨으로써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보나파르티즘 독재체제(제2제정)는 영국에서 발원하여 유럽을 휩쓸던 산업화의 명암 속에서 근 20년 동안 지속됐지만,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굴욕적으로 패하면서, 시작이 그랬듯, 돌발적으로 막을 내리고 루이 나폴레옹이 품었던 제국의 꿈은 프랑스역사에서 영원히 소멸한다.

보통사람의 힘

프랑스혁명 이후의 대중운동을 관찰했던 사회심리학자며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던 구스타프 르 봉은 저서 『군중』에서 자신의 이익과 문명을 스스로 거스르는 "최면술에 걸린 주체"로서 군중이 지닌 비합리성을 경고한 바 있다. 주목할 것은, 대중의 속성에 대한 평가는 평자의 처지와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를지언정, 대중의 염증과 수치심과 경멸이 두려움을 압도하는 시점에서 그것들은 집단적 분노가 되어 당대의 권력을 향해 분출한다는 점이다. 대중이 자신의 힘을 의식하는 순간 또한 그 지점이다.

가령 20세기의 전체주의 정부들을 추동하고 추인했던 기만의 선봉에는 늘 지식인들이 서성댔다고 관찰한 조지 오웰은 변화의 동력은 오직 보통사람들(의 품위)에서 나온다고 확신했다. 그가 한 꼬마가 거대한 짐마차 말(馬)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을 보고는, 동물이 자신의 힘을 알게 된다면 인간은 결코 그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며 냉소했을 때, 그는 바로 그 점을 빗대고 있었다. 우리는 4·19혁명, 부마 투쟁, 6월 항쟁 등 한국 현대정치에서 격변의 전기를 마련했던 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해소하는데 분주해야 할 정치가 이 땅에서만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들의 진원지로 된 지는 꽤 오래되었거니와, 하다 하다 이제 교과서를 갈등의 소재로 삼으며 분열을 조장하는 데에 이르렀다. 군인의 정권찬탈이라는 가장 모범적 형태의 군사정변을 쿠데타로, 도무지 논란거리일 수 없는 친일을 친일로, 지극히 표준적인 권위주의체제를 독재로 부르길 전염병 피하듯 꺼리는 정권과 그 하수인들에서 우리는 무지와 광신의, 가장 위험하고 혐오스런 결합을 본다.

느닷없는 국정화 논란으로 민생을 제쳐 놓더니 민생 먼저 챙기자며 해묵은 민생좌판을 펼치는 일은,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외치는 꼴이요, 피의자가 재판관이 되어 형을 언도하겠다고 나서는 야바위 짓에 다름 아니다. 상식이 몰상식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을 향해 호통 치는, 정치에서 혼이 빠진 상황이 지속되는데 민주사회가 침묵했던 적은 역사에 없다.

기록, 용서의 방식

용서가 힘든 것은 그것이 망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은 그저 막막한 시대가 만들어낸 수사일 뿐이다. 도대체 잊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동체가 회복되길 바랄 수 있다는 말인가. 무릇 모든 용서에는 비용이 따르거니와, 그때 피해자는 물리적 상처를 스스로 떠안을 뿐 아니라 정신적 비용 곧 망각이라는 힘든 과정을 치러야 한다.

따라서 역사의 기록이란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한 눈물겨운 분투요 훼손된 역사를 치유하려는 공동체의 자구책일 것이다. 잊는 것은 피해자의 몫일 터인데 현 정권은, 참으로 기이하게도, 화톳불의 재를 뒤적여 불씨를 살리듯이 과거를 끊임없이 들춰내며 잊지 말라고 부추긴다.

평론가 어빙 하우는 오웰의 『1984』가 그린 세계를 평하다가 "히틀러는 책을 불태웠고 스탈린은 책을 다시 썼다"고 말했다. 역사를 농락하면 역사의 기아가 되기 십상이다. 국정화 소동의 주역들의 뿌리와 계보를 상고하다 보면, 현대사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그들이야말로 역사해석의 마지막 주체가 돼야할 것은 자명해 보이지만, 죄의식이 없으니 체면마저 마다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현대사에서 기시감이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지도자는 위기의 싹을 키우지 않으며, 혼란 중에도 저 바닥을 흐르는 암류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대통령이 "눈 위를 덮은 왕관"을 내려놓고 민주적 지도자의 본령을 되찾기 바란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