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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8일 11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4월 18일 12시 44분 KST

설탕과 왜 전쟁을 해? 우리의 주적은 소금 아닌가?

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디어들도 설탕이 술·마약 중독만큼이나 위험하다며 난리다. 얼마 전 방송한 SBS 스페셜-`당(糖)하고 계십니까`에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등장해 설탕 섭취를 부추기는 일부 방송에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그런 방송을 하냐"면서 일침을 가했다. 그는 당시 "방송이 가진 공공성, 그렇게 설탕이 듬뿍 든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미각들을 흔들 수가 있다. 방송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한국인은 설탕을 정말 많이 먹나? 우리가 가장 흔하게 준거 기준으로 잡는 OECD의 최근 통계(2013년)를 살펴보자. 일단 전 세계에서 가장 설탕을 많이 먹는 나라는 탄산음료의 왕국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하루에 126.4g의 설탕을 섭취한다. 미식의 천국 프랑스는 68.5g을 섭취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56.7g이다. 그렇다면 설탕을 국가의 적으로 지목한 한국은 얼마나 먹나? 하루 30.8g을 섭취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국가적으로 관리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근 국제보건기구에선(WHO) 성인의 설탕 하루 섭취 권장량을 전체 열량의 10%에서 5%로 낮췄다. 하루에 2,000Kcal를 섭취한다고 했을 때 설탕으로 섭취하는 열량은 100Kcla정도로 제한하라는 뜻이다. 이를 역산하면 대략 25g, 티스푼 6개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권고 기준 이상의 설탕을 섭취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 권고량 이하로 설탕을 섭취하는 국가가 10개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에 기준이 변경된) 권고량이니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공공의 건강' 측면에서 굳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우리의 주적은 설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조금 더 위험한 건 소금(그리고 내 경우엔 술)이다. WHO의 나트륨 권장 섭취량은 하루 2,000mg으로 소금으로는 티스푼 5g 정도다. 반면 한국은 하루 5,300mg의 나트륨, 12.9g의 소금을 섭취한다.한 사이트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소금을 많이 먹는 나라로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안착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미식가라면 의아할 수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의 음식을 먹어보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짜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면 모든 음식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 그런데도 한국인의 소금 섭취가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물 음식'을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탄수화물을 소금물에 묻혀 먹는 걸 즐긴다. 전골을 먹고 면을 넣어 국물을 묻혀 먹는다. 순댓국을 끓여놓고 밥을 말아 국밥을 해 먹는다. 그리곤 마지막에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라면은 얘기하지 말자. 라면 없이는 살기 힘드니까.

또 하나의 이유는 '매운맛' 사랑이다. 얼마 전 인터뷰 때문에 만난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송훈 셰프는 한식의 간이 강한 이유는 매운맛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당 음식들은 신맛 보다는 매운맛으로 포인트를 주기 때문에 먹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간을 '약하게' 인지한다고 한다. 매운맛에 혀가 얼얼한 상태에선 짠 음식을 싱겁게 인식하니 간을 맞추다 보면 소금을 더 먹을 수밖에.

마지막 소금 섭취의 주범은 뜨거운 음식이다. 뜨거운 음식일수록 짜게 먹게 된다. 이건 매번 하는 말이지만 정말 좋은 국물 요릿집은 절대 국물을 팔팔 끓여내지 않는다. 하동관, 굴다리, 영춘옥, 영동 설렁탕 등의 국물 요리 좀 한다는 집들은 '미지근한 국물'을 서빙 한다. 황교익 칼럼니스트 역시 GQ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은 국물을 먹어도 팔팔 끓는 상태에서 입안에 넣으려 한다'며 '혀를 델 정도의 온도에서 음식을 먹겠다는 것은 그 음식에 포함된 다양한 맛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썼다.

그런데, 다 써놓고 보니까 뜨겁고 짜고 매운 라면이 먹고 싶다. 그리고 난 먹을 거다. 왜? 어차피 WHO의 소금 권고 기준을 지키는 나라도 187개국 중에 6개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