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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2일 12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12일 05시 33분 KST

양성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지난 6월 자신의 동성 친구 알리샤 카질과 키스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다. 영국 최고의 섹시남 로버트 패틴슨을 두고 영화감독인 루퍼트 샌더스와 불륜으로 구설에 오르더니, 이제 와서 여자랑 사귄다고? 마일리 사이러스도 같은 달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남자랑 데이트한 적도 있고 여자랑 데이트한 적도 있다"고. 매체들은 앞다투어 마일리 사이러스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사실상 양성애자'라는 기사를 쐈다. 엄밀하게 말하면 둘은 자신의 성적 지향에 이름표를 붙이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바이 섹슈얼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기에는 충분했다.

miley cyrus

마일리 사이러스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카라 델레바인과의 키스 장면.

"과연 바이 섹슈얼이 존재할까?"

이제 막 게이 커뮤니티를 환영하기 시작한 대다수 이성애자들에게 양성애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전이다. 일단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을 '바이'로 정의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눈에 띄게 늘어나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래스젠더) 인구를 생각하면 사분면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바이 섹슈얼은 눈에 띄게 적다. 얼마나 그 수가 적으면, 실제로 바이 섹슈얼 커뮤니티에서는 자신들을 일컬어 '환수'라고 칭하기도 한다. 히말라야의 설인이나 네스 호의 네시 같은 환상 속의 동물 말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해태나 청룡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왜? 일단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레즈비언/게이 이거나 다정다감한 이성애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양성애자 입니다 자기 입으로 커밍아웃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는다. 카라 델러바인이 그 좋은 예다. 카라가 지난 7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요새는 여자 친구와 행복하다'라고 했더니 여기다 인터뷰한 편집자가 '카라의 양성애를 (성적 지향을 찾는) 단계로 바라보는 카라 부모님의 시선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

Cara Delevingne(@caradelevingne)님이 게시한 사진님,

카라 델레바인의 인스타그램.

화가 난 카라는 곧바로 뉴욕 타임즈를 통해 '나의 양성애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바이포비아'(양성애 혐오)도 한몫을 한다. 뉴욕 타임즈의 2014년 리포트에 따르면 바이가 게이들 사이에서 '난 양성애자야'라고 밝히면 보통 이런 반응이라고 한다. '아니, 양성애는 존재하지 않아' 또는 '그래? 난 양성애자와는 안 만나'. 간혹 일부 게이들 사이에서 바이는 '변절자' 내지는 '박쥐'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양성애자들을 '소수 중의 소수'(Minority of Minorities)라고 부른다.

어떤 게 닭이고 달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요인들이 뒤섞여 양성애자들을 '환상 속의 종'으로 만든다. 아마도 '양성애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래, 아마 지금은 양성애지만 조금 있으면 아마 멋진 레즈비언으로 성장하게 될 거야'라고 말할 거로 생각하고 애초에 '저는 레즈비언(또는 이성애자)입니다'라고 밝히게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억압과 오해 때문에 양성애자는 평생에 걸쳐 커밍아웃할 확률이 매우 낮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젠더 학자들은 이를 '양성애의 비가시성'(bisexual invisibility)이라 부른다. 해태니 청룡이니 하는 게 완전 농담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바이 섹슈얼 '남성'은 약자 중에서도 약자다. 여러 실험을 통해 존재가 입증된 여성 양성애자와는 달리, 오랜 시간 '남성 양성애자는 없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결정적 한 방은 2005년 노스웨스턴대학이 실시한 '양성애 검증 연구'였다. 연구진은 자신을 양성애자라고 밝힌 남자 33명을 모아 남성만 등장하는 에로틱한 영상과 여성만 등장하는 에로틱한 영상을 보여주고 발기가 되는지를 모니터링 했다. 그 결과 4분의 3은 게이처럼 남성 영화에만 반응했고 4분의 1은 이성애자처럼 여성 영화에만 반응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남녀 모두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남자 양성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성애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게이거나 스트레이트거나 거짓말쟁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과는 이후 6년 동안 수도 없이 인용되며 남성 양성애자들을 괴롭혔다.

재밌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한 양성애자 인권 단체는 2005년 연구를 주관했던 주요 연구진인 마이클 베일리(Michael Bailey)를 만나 해당 연구에 맹점이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당시 그들은 대안 언론이나 성 소수자 잡지를 통해 대상을 모집했는데, 이 선정 과정에는 '실질적인 양성 성관계'의 여부가 빠져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뉴욕 타임즈는 이 양성애 단체를 인터뷰해 일련의 스토리를꽤 자세히 소개한 바 있는데, 이 단체의 이사인 '존 실라'(JohnSylla)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이크와 좀 더 나은 실험을 설계해보고 싶었어요."

굳이 적과 손을 잡는 정공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피실험자의선택을 좀 더 엄격하게 제한했다. 이번에는 양성애로 자신을 정의할 뿐 아니라 최소 2명의 남녀와 섹스를 한 경험이 있고, 적어도 남녀 각 한 명 이상과 3개월 이상 진지한 연애를 해본 남성으로 실험대상을 필터링했다. 결과는? 양성애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성애 영상 모두에 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자, 그럼 바이 섹슈얼은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자신을 '게이'로 정의하는 뉴욕 타임스의 필자인 'Benoit Denizet-Lewis'는 2011년 과학자들이 실험에서 '성적 흥분'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기꺼이 코넬과 노스웨스턴대학교를 찾아 다양한 종류의 포르노를 보며 흥분의 정도를 측정 당했다. 코넬에서는 '동공의 팽창'으로 노스웨스턴에서는 '성기의 직경'으로 측정했다. 결과는 그는 코넬에서는 '꽤 게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지만, 코넬에서는 '바이 섹슈얼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호모섹슈얼'을 결정짓는 것이 유전적 요소인지 환경적 요인인지를 두고 상당수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쌍둥이의 성 정체성 연구를 두고 과학자들은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한쪽은 '유전이 성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다른 쪽은 '어렸을 때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성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해석한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단 하나의 '언제나 참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아직 과학은 성적 지향과 생물학적, 사회적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정할 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하나의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대체 왜 성 정체성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입증까지 받아야 할까? 남의 성기에 모니터링 장치까지 끼워가며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안 보이는 양성애자들이 존재하는 건 물론이고 설문조사를 하면 LGBT 중 최다수를 차지한다. 2011년 윌리엄스 인스티튜트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인구 중 LGBT는 3.8%를 차지했는데 이중 바이 섹슈얼이 1.8%로 성 소수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게이/레즈비언의 비율은 1.7%였다. 그래서 '양성애자'의 또 다른 별명은 '보이지 않는 다수'(Invisible Majority)다.

* 본 블로그는 여성 패션 매거진 그라치아에 최초로 기고한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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