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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8일 15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9월 09일 11시 26분 KST

[허핑턴 인터뷰] 블랙 메디신, '우리 무서운 사람들 아니에요'

한 음악 평론가는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2015년 한국에서 이런 '둠 메탈' 밴드가 제대로 된 앨범을 발매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정상급 수준이다. 팔에는 무서운 타투를 하고 덩치는 산만하지만 알고 보면 상냥한 블랙 메디신의 보컬 '김창유'와 기타리스트 '이명희'를 만나 결성 10년 만에 발표한 첫 앨범 <이리버서블>(Irreversible)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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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관계자들이 이번 앨범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더라.

이명희(블랙 메디신 기타리스트, 이하 '명희')잘 나간다고는 하는데, 인터뷰가 몇 개 들어온 거 말고는 크게 체감하지는 못한다.

김창유(블랙 메디신 보컬, 이하 '창유') 향 음악사 앨범 차트에서 계속 1위를 하다가 갤럭시 익스프레스랑 서태지한테 밀렸다.

향음악사의 앨범 순위가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인디 뮤지션들에게는 중요하더라.

명희 그러게 말이다. 신경 안 쓴다고는 하지만 확인은 하게 된다(웃음)

창유형은 이렇게 안경 쓰고 나오니 꽤 지적으로 보인다.

창유 메탈밴드 보컬은 지적이면 안 되나?

명희 얘가 원래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정말 다양하게 듣고, 우리 중 가장 지적이다.

이번에 블랙 메디신 뿐 아니라 인천이라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스컨드렐이나 사두, 아웃사이더, 사하라 같은 팀들 말이다. 80~90년대 우리나라 록 신의 전설은 전부 인천에서 시작됐다.

명희 인천은 굉장히 특이한 도시다. 대학교 그룹사운드들이 많았고 '현대 음악학원'과 '휠 음악학원' 등을 중심으로 록이나 메탈 뮤지션들의 산실이 됐다. 당시 인천 1세대라고 하면 아웃사이더스, 제삼세대의 꿈, 금시조, 사하라 이렇게 4팀인데, 그 팀들을 중심으로 뭐 '동인천파', '가좌동 파'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창유 그니까, 이게 뭐 백두산 활동하던 시절 얘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지트처럼 현대음악학원이 있었던 거다.

미국의 90년대 힙합 문화처럼 이스트/웨스트가 나뉘어있었다는 건가?

명희 그렇다. 아예 애들은 밴드형들 계보를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당시 인천은 규율도 심해서 가끔 '빠따'도 맞고 그랬다.

그런데 사하라 아웃사이더는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 느낌이었고명희 형이 했던 스컨드렐, 사두 같은 밴드랑은 전혀 다른 음악 아닌가?

명희 인천이 영미권 음악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좇아가면서 발전했다고 보면 된다. 딥 퍼플이랑 레드 제플린 좋아하던 형들이 사하라를 한 거고, 데스메탈을 들은 세대는 스컨드렐을 한 거다.

그럼 둘은 몇 세대쯤 되나?

명희 나는 한 2~3세대쯤 되는 것 같고 창유는 4세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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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메디신의 데뷔 앨범 <이리버서블>.

인천이 한국 헤비니스 음악의 버밍행(헤비메탈의 원산지)이나 시카고(그런지의 원산지)라 해도 되겠다. 그걸 제대로 느낀 게 창유 형(얼마 전에 결혼) 결혼식에 갔을 때다. 80년대로 돌아간 줄 알았다. 다들 긴 머리에 수염 기르고 타투한 형들이 잔뜩 있더라.

창유 그렇다. 그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거의 마지막 밴드다. 내가 1978년생인데 막내다. (웃음)

명희 옛날에는 현대음악학원이 있던 지역(동인천)과 후에 관교동 일대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헤비메탈 마을이라고 해야 하나?

하필 인천에서 헤비한 음악들이 탄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창유 헤비한 음악들이 대체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감성을 표현하는데, 그래서 산업단지가 있는 쪽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다. 버밍햄만 봐도 그렇지 않나. 인천도 마찬가지다. 항구가 있고 공장이 많고, 특히 청소년들이 약물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울한 정서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약물은 당시엔 아마 부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대마초뿐 아니라 소위 필로폰을 하는 선배 뮤지션도 있었던 걸로 안다.

이명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데스메탈 밴들인 '스컨드렐'의 기타리스트였으며 스컨드렐이 해체한 뒤 '사두'에 들어갔다. 김창유 역시 데스메탈 밴드 시드와 둠메탈 밴드 투견에서 활동해온 베테랑. 각자 다른 밴드에서 뼈가 굵었던 이들이 '둠 메탈 또는 슬럿지 메탈'을 하고 싶어 만든 밴드가 바로 '블랙 메디신'이다. 이명희와 김창유는 한국 헤비니스 음악계에서 얼리어답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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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게 드럼 사운드다. 드럼이 소위 말하는 '떡 드럼' 사운드가 아니라 뭔가 통통거리고 빈티지 한 게 묘하더라.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블랙 사바스의 첫 앨범 'Black Sabbath'의 '위키드 송'드럼 소리랑 똑같더라.

명희 맞다. 드럼은 그 앨범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드럼 뿐 아니라 전체적인 사운드도 그 앨범의 느낌으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요새는 잘 안 쓰는 드럼 소리라 우리 엔지니어(석기시대 레코드의 허정욱 엔지니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런데, 분위기만 예스럽고 전체 사운드는 빵빵해서 요새 앨범 티가 나더라.

명희 요새 음악들은 사운드를 정말 빵빵하게 한다. 전 음역이 고르게 터진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빵빵하기만 한 사운드를 만드는 건 오히려 쉽다. 그런데 빵빵하면서도 우리 원하는 스케이프(블랙 사바스 앨범)를 구현해 내기란 정말 힘들더라. 게다가 너무 올드한음악처럼 들리면 안 되지 않아? 엔지니어가 그래서 죽어났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 좀 싫기도 했을 거다.

블랙 사바스가 블랙 메디신의 모태라고 봐도 되는 건가?

명희 그렇다. 100% 블랙 사바스다. 왜냐하면, 다 거기서 나왔으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헤비니스 음악이 참 많지만 결국 다 사바스에서 나온 거다.

이건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둘은 오지가 좋은가 디오가 좋은가? (둘은 블랙 사바스를 초기와 후기로 양분하는 보컬이다)

명희 난 오지 오스본이지. 노래는 못하지만 어울리잖아. 악마 같고.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앨범은 오지가 불렀으니까.

창유 난 디오. 가창력이 뭐.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보컬 스타일이야. 또 좋아하는 보컬을 꼽자면 세인트 바이터스(Saint Vitus)의 스콧 리거스(Scott Reagers).

기타 사운드는 딱 '카이어스'같은 밴드가 떠오르더라.

명희 대략 그 계열의 소리라고 보면 된다. 퍼지한 사운드니까.

퍼지한 사운드가 뭔지 설명 좀 해달라.

명희 둘 다 기타의 소리를 찌그러뜨리는 방법인데 원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디스토션 이펙터와는 달리 퍼즈 페달은 소리가 확 퍼진다. 이 두 이펙터의 제일 특징적인 차이는 뮤트 연주를 해보는 것이다. 퍼즈는 뮤트 피킹이 안 된다. 이 퍼즈라는 페달이 사용하기가 좀 까다로워서 많이 쓰지는 않는데, 우리 기타 사운드는 기본이 이 퍼즈 소리다.

'Arson Boy'도 그렇고 'Medicide'도 그렇고 가사에 줄거리가 있다. 누가 쓴 가사인가?

창유 '아슨 보이'같은 경우는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노래다. 하루는 친구네 오피스텔 카우치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둘 다 잠든 적이 있다. 그때 재떨이에서 불이 나면서 소파가 타들어 갔고 난리가 났다. 결국, 친구는 오피스텔에서 쫓겨나고. 그때 로마 시대의 네로가 떠오르더라. '메디사이드'는 의료 사고로 죽은 화자가 목소리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내게 좀 더 나은 결말을 약속했다'며 분노하는 내용이다.

블랙 메디신의 첫 트랙 '아슨 보이'.

데스메탈 밴드였던 '사두'에서 둠 메탈 밴드인 '블랙 메디신'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는 뭔가?

창유 열의와 열정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너무 패턴이 똑같고 무의미하고. 계속 소리를 지르다 보니 체력도 달렸고. 당시 세계의 헤비니스 신을 보니까 미국 애들도 이제는 데스메탈에 질려 하는 것 같았다. 데스메탈을 하면서도 사운드 가든, 소닉 유스, 마이 블러디발렌타인 등의 음악을 들으며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둠 메탈'이란 장르를 들었는데, 와, 이건 메탈의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음악적으로 훨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명희 블루스적인 리프도 들어가면서 옛날 음악인데 굉장히 현대적인 정서도 담고 있고, 슬럿지나 둠 메탈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거다. 아 그런데 우리도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솔직한 감상은 뭔가?

어, 인터뷰하면서 질문을 받는 경우는 좀 드문데, 기타의 퍼즈 사운드가 정말 좋았다. 이렇게 적절한 퍼즈 사운드를 한국에서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드럼 사운드는 아까 얘기했고. 제일 좋았던 건 김창유의 보컬이다. 노래를 녹음해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느낄 거다. 이건 오토튠을 하나도 쓰지 않은 생소리다. 이렇게 생소리만으로 녹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컴프레서도 많이 안 썼는지 시원시원하더라. 라이브가 좋은 밴드 중에 앨범을 듣고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블랙 메디신은 반대였다. 라이브도 잘하지만 앨범이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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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메디신은 2005년에 결성 석기시대 레코드와 만나기까지 10년여 동안 한 장의 앨범도 발매하지 못했다. 스컨드렐과 사두 출신의 베테랑 뮤지션은 이 동안 뭘 했던 걸까?

그나저나, 앨범이 나오는 데 10년이나 걸린 이유는 뭔가?

명희 여러 번 다른 회사들과 접촉도 했었고 EP를 내려고 녹음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앨범이 나오니 어떤 기분이 드나.

명희 솔직히 그동안 아는 음악인들 사이에서 우리 흉을 본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술을 참 좋아하는데, '저 새끼들은 음악 한다면서 맨날 술이나 마신다'고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했다. 이제 앨범이 나와서 잘 팔리고 평론가들 사이에서 반응도 좋다고 하니까 그때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준 것 같아서 속이 다 시원하다.

창유 그동안 음악을 하기 위해 정규직을 잡지 못하고 인테리어 일(막노동)을 했다.

정말 솔직히 물어보고 싶다. 그렇게 어렵게 앨범을 발매해도 돈을 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 않나?

창유 성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게 자신의 정신이 갖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내 정체성의 일부다. 누구에겐 너무 진지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블랙 메디신은 앨범이 나온 후 활발하게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9월 11일엔 'Electric Road Festival Vol.3'에 출연하고 12일엔 드림홀에서 공연한다. 자세한 정보는 밴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