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6월 13일 11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13일 11시 27분 KST

나의 '뇌'가 곧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나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던진다. 어젯밤 술에 취해 호쾌하게 카드를 꺼내 들던 '나'는 누구인가? 어젯밤의 그 '나'와 지금 카드사에서 온 결제 문자, 그리고 그 결제 문자 밑에 조그맣게 찍힌 조그만 월 잔여 한도액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나'는 과연 같은 존재일까? 알코올 따위에 이렇게 흔들려서야 과연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대체 '나'라는 건 뭘까? 가끔은 이런 사소한 자괴감이 거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일단 나는 '나'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눈' 뒤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다. 냄새도 코 뒤 어딘가에서 나는 것 같고 소리도 양 귀 사이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만 같으니까. 일단 지금 카페에 나오는 알라니스 모리셋의 노래(그나저나 이제 벌써 2015년인데 아직도)를 내가 손바닥이나 발바닥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좀 힘들다.

그래서 어쩐지 당장 오감이 느껴지는 위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뇌'의 근처인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의심도 든다. 이미 우리가 '뇌'가 사고와 감각의 최종 수용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그래서 집어들은 책인 '이런, 이게 바로 나야'라는 책이다. 물리학 박사 출신의 인지과학 교수이자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이 책의 편집자 더글러스 호프스태더드 말을 인용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만 해도 뇌를 그저 '피 온도를 떨어뜨려 주는 기관' 정도로만 여겼다고 한다. 뇌가 우리 의식의 창발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주 당연한 얘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니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에 등장하는 '졸라'박사를 비롯해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이 인간의 지능, 성격, 자의식, 또는 영혼을 포함한 모든 것이 '뇌'에 들어 있다는 걸 전제로 얘기를 시작한다. 자아의 거처라고 짐작하는 뇌만 떼어 다른 신체에 붙이거나, 뇌의 구조를 그대로 프로그래밍한 컴퓨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대부분의 설정이 그렇다. 그러나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가설은 단 한 번도 완벽하게 증명된 적이 없다. 팔을 다친 사람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한 적은 없지만, 머리를 다친 환자가 "여기가 어디요?"라고 묻는 경우는 흔하니까 그저 우리의 뇌 속에 자아 인식 또는 의식이 있겠거니 하고 매우 그럴듯한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이 질문에 아주 결정적인 대답을 던져줄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다.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블라디미르 시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발레리 스피리도노프라는 남자가 머리 이하의 전신을 이식받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근무력증을 앓고 있는데 "앉아서 죽을 날을 기다릴 수도 있지만, 과학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싶다"는 결심을 밝혔다. 집도의는? 얼마 전, 2년 안에 신체 이식 수술이 가능할 것이라며 '남은 문제는 의학 윤리적인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던 이탈리아의 신경외과의 '세르지오 카나베로'라고 한다. 농담 같은 얘기일 뿐이라고?

음, 완벽한 사기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쥐, 원숭이, 개에게 '뇌이식 수술'을 시행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실험은 1970년대 미국에서 로버트 화이트와 그의 팀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했던 뇌이식 수술이다. 당시 수술을 받은 원숭이는 결국 면역거부반응으로 죽긴 했지만 새로운 신체로부터 혈액을 공급받아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먹이를 먹으며 8~9일을 버텼다. 그러니 이번에 스피리도노프 씨의 수술이 성공한다면 새로 태어난 그에게 아마도 다음 몇 세기 동안의 패러다임을 지배할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원숭이에게는 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만약 타인의 신체를 이식받은 상태에서 그가 "스피리도노프잖아. 차트에 쓰여 있는 거 안 보여?"라고 역정을 내며 '자기인식'을 뽐낸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나'가 물리적으로 우리 머릿속에 있다는 개념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학은 쉬운 길만을 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많은 과학자는 충분히 복잡한 물리 체계가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과학적으로 '나'의 존재가 '뇌'로 환원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인공 지능'이 가능한지를 실험해보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앨런 튜링의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사고실험은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앨런 튜링이 고안한(그러나 그 이후 수많은 이들이 수정한) 이 '테스트'는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컴퓨터가 인간을 속일 수 있는지'를 검증하고 이게 가능하다면 컴퓨터가 '생각'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복잡성이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튜링의 실험이 영혼이 존재 없이 우리의 의식이 성립될 수 있는가에 대한 치환적인 질문이라고 본다. 만약 무기물인 실리콘과 철과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지고 전기로 작동하는 '컴퓨터'가 충분히 복잡해져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뉴런이 모인, 일종의 생물학적 하드웨어인 '뇌'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얼마 전에는 <어벤저스 : 울트론>을 봤고 그 더 전에는 에서 사만다의 목소리에 반했던 우리에게 이 논지는 매우 유혹적이다. 생각해보면 앨런 튜링이 2차 세계대전에 만들었던 거대한 계산기에 비하면 지금의 아이폰이 (아주 작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말귀를 잘 못 알아듣긴 하지만 어쨌든 시리(Siri)는 꽤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까지 하지 않는가? 이런 굳건한 믿음으로, HBP(Human Brain Project)를 진행 중인 헨리 마크램은 열심히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은 2035년이면 인간의 비 생물학적 사고를 클라우드에 업로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는 사람의 뇌와 비슷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일단 인간의 뇌는 아이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하고 뛰어나다. 노스웨스턴대학의 심리학 교수 폴 레버 박사를 인용하면 뇌의 저장 공간은 대략 2.5 페타바이트(2,560 테라바이트)로 대략 300만 시간의 TV쇼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런 거대한 용량을 가진 우리의 뇌가 왜 시험시간만 되면 하드디스크의 전원을 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 뇌에는 300년 어치의 동영상이 들어간다.

저장 공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뇌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2014년 일본과 스위스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하는 일상의 연산을 조금이나마 따라 해보기 위해 뇌의 연산 작용을 지구에서 4번째로 좋은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팅 한 바 있는데, 인간의 뇌가 1초 동안 처리하는 정보량의 고작 1%를 처리하는 데 40분이 걸렸다고 한다. 몇몇 과학자들은 '아날로그'로 작동하는 뇌의 정보처리 능력을 '이진법'의 컴퓨터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뇌과학은 뇌의 특정 부위들이 아날로그로 신호를 전달하는지 이진법으로 전달하는지조차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우리 뇌가 얼마만큼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지 조차 완벽하게 모르고 있는 셈이다.

시리가 사만다가 되는 날은 무척이나 소원해 보이지만 과학은 언제나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꽤 이른 시간에 이뤄냈기에 기대를 접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슈퍼컴퓨터가 충분히 발전해서 우리 뇌의 정보처리 능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기서 '자아 인식'이 생겨난다면, 레이 커즈와일의 말대로 우리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컴퓨터에 업로드 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나는 꼭 내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업로드 한 후에 역사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대체 어제 2차 계산은 왜 네가 한 거니?"

실없는 결론이지만 여기에는 재밌는 역설이 하나 숨어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의식이 '뇌'라는 하드웨어, 그 하드웨어를 이루고 있는 분자 하나하나로 환원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격이 된다. 뇌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 그 뇌가 결국 생각하는 기계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