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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4일 10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7일 09시 45분 KST

[허핑턴인터뷰] 무적핑크가 묻는다 '애국이 뭔가요?'

무적핑크는 웹툰 '조선왕조실톡'의 작가로, 서울대 미대 8학년으로,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하다. 그녀의 스펙에 사람들은 '엄친아'라며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몇 번 만나보니 무적핑크 님의 가장 큰 매력은 '공부벌레'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조선왕조실톡의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그녀는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다양한 역사서와 논문을 폭넓게 읽는다. 요새 방송가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무적핑크와 개포동 떡볶이 거리에서 만났다.

LG 트윈스의 팬인 무적핑크가 직접 그린 '무적핑크볼'.

그러고 보니 가족관계가 어떻게 돼요?

=부모님이랑 여동생 하나. 아 그리고 17살짜리 아래 막냇동생이 있어요. 우리 강아지요.

개가 17살이라고요? 사람으로 따지면 100살 정도 된 거 아닌가요?

=그렇죠. 이쯤 되니까 우리 개가 이제 제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느낌이에요. 강아지가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해요.

이름이 뭔가요?

=밤비라고 불러요. 17살이 사실 정확한 나이는 아니에요. 두 살인지 세 살인지 모르던 시점에 시설에서 입양했거든요. 사실 엄마가 입양을 신청했던 유기견은 다른 아이였는데, 막상 데리러 가보니 직원이 '얘는 밤비라고 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파양 당했어요. 신청하신 강아지랑 많이 닮았는데, 이제 안락사시켜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하더래요. 근데 엄마가 밤비의 눈을 보니까 반짝반짝 슬퍼 보여서 데리고 오지 않을 수가 없었대요.

아름다운 개념입양이었군요.

=아마 그 단체가 지금 카라의 전신이었을 거예요.

밤비는 누구를 제일 좋아해요?

=엄마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잘 때는 저한테 와서 자요. 아침에 일어나면 강아지 엉덩이가 눈앞에 있어요. '야 저리 치워' 그러면서 일어나죠.

나이가 많아지니까 헤어질 게 걱정이겠어요. 보통 20대에 반려견과의 이별을 겪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아이들 좀 키워놓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보통 강아지를 입양하니까 20대가 되면 그 강아지들이 열다섯에서 스무 살쯤 되더군요.

=그러니까요. 정말이지 밤비가 서른 살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새는 조금 편견이 생겼는데, 작은 동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치와와를 키우는 연쇄 살인마는 못 본 것 같아서, 처음 만난 사람이 작은 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하면 호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반대로 동물 안 키운다고 나쁜 사람으로 보지는 않지만요.

참고로 저는 본가에선 고양이를 키웠었습니다. 지금 허핑턴 포스트에서도 비공식적으로 고양이 동영상 담당이고요. 요새는 조금 주춤해졌지만 얼마 전까지 인터넷 트래픽 세계에선 고양이와 강아지가 주인공이었죠.

=저도 반려견에 대해 기사 참 많이 봤어요. 반려견이 병 냄새를 맡는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강아지 건강 말고 다른 고민이 또 있나요?

=제 건강이랑 연재에 대한 부담이 제일 걱정이죠. 어떤 작가님들은 성실하셔서 한 달 치를 미리 그려두신다고 하는데 저는 세이브를 못 쌓아서 당일 치기로 하며 살거든요. 수요일이랑 일요일에 연재하니까 원고 마감을 하려면 월요일과 목요일이 사라지고, 수요일과 금요일은 오늘과 같은 인터뷰나 방송을 하는 걸로 일정을 조정해요. 주말은 어떻게든지 막아보려고 하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그녀의 이런 여고생 같은 엉뚱함이 무척 귀엽다.

휴가는 어떻게 가나요?

=6개월 동안 연재하면서 한 번도 못 갔어요. 6개월 동안 세이브 하는 데 실패했으니 앞으로도 실패하겠죠? 휴재를 한다고 해서 세이브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소재를 찾고 조사를 하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려요.

실록만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흠, 실톡 에피소드를 짜려면 실록은 물론이고 다른 역사서도 봐야 하더라고요. 실록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약식만 나와 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조금이라도 잡아 보려면, 이순신은 '난중일기'와 '징비록'을 봐야 하고 정조나 사도세자를 다루려면 '한중록'이나 '일성록', '승정원일기'까지 들춰봐야 해요.

조선은 꽉 잡았겠어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누가 물어보면 어떻게든 대답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큰 줄기가 잡히지는 않아요.

잘못된 민족적인 사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런 분들을 전설의 '환빠'라고 하죠. '환단고기'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죠. 그분들은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이 중국 대륙을 넘어 페르시아에까지 용맹을 떨쳤다는 등의 얘기를 주로 해요. 고등학교 선생님 중에는 저희 때만 해도 세계의 반이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하거나 스페인어의 어원이 한국어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죠. 문제는 이런 사관을 가진 분들은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다'고 역정을 낸다는 거예요. 무조건 우리 역사에서 좋은 점만 찾다보면 존경심은 생기겠죠. 하지만 전 옛분들을 사랑하고 싶고, 그러려면 그 분들의 공은 물론 잘못과 실수도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거니까요.

조선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정조 '빠순이'(열광적인 팬을 일컫는 속어)라서 인가요? 고등학교 때 정조 팬클럽도 만들었었다면서요.

=제가 워낙 얼굴을 중요시해서, 정조가 미남이었거든요. 그 외에도 조선의 미남 왕족으로는 영조와 문종이 있습니다.

지금 하는 건 에피소드 중심의 기획이지만, 조선의 역사에서 보이는 커다란 흐름 같은 게 있나요? 지금의 상황과 견주어 봐도 좋고요.

=말하기 굉장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요새 우리나라의 상황이 조선 말기와 꽤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의식 없는 관료들, 백성들의 체념, 행정적인 실수에 어쩔 수 없이 너그러워 져야 하는 상황 등이 비슷해요. 아, 국제정세에 둔감하게 반응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지나치게 안으로만 파고든다고 할까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경술국치 때, 의식 있는 지식인들은 소리를 높이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국민은 별로 신경도 안 썼었거든요. 왜냐하면, 일본 미국 등이 그보다 오래전부터 이미 조금씩 불평등 조약을 맺어가며 슬슬 들어와 있었던 후였거든요. 한반도 주변에서 일본이 군사행동을 해도 된다는 조약을 맺고, 철도를 건설할 수 있게 하는 약조를 슬쩍하고, 을사늑약 때 외교권을 건드리고, 그 후에 재산권을 건드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미 탈력하고 절망한 상태라, 반향이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크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오래전부터 이런 세상이었잖아'라고 생각했던 거죠. 500년의 왕조가 사라지는 과정이 이런 식이었다는 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 점이 비슷한가요?

=모든 악재가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게 비슷해요. 찌를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요? 임진왜란의 경우 일본군을 이기면 해결되는 문제였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뭘 찔러야 할까요? 뭘 찔러야 경제난, 성별 간의 혹은 세대 간의 갈등, 젊은 세대의 패배감이 없어질까요? 이 문제가 흔히들 얘기하듯 경제문제에서 시작된 건지 아니면 의식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건지, 한 사람의 잘못인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보스몹이 하나 있으면 이기겠는데, 뭔가 해일이 몰려오는 느낌이에요. RPG 게임에서 걸을 때마다 체력이 1씩 깎이는 독안개의 숲 같은 게 제일 짜증 나잖아요. 제 생각엔 싸워서 이겨야 할 보스몹이 보이질 않으니 주변에 보이는 노년층을 불행의 씨앗이라고 의심한다거나, 일하는 업장의 사장을 의심한다거나, 나보다 잘된 친구를 의심한다거나 모든 사람과 적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적대적인 피해의식이나 나이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는 피어 스트레스가 보스몹이 없어서 생기는 거군요.

=그냥 다들 힘들어지는 거죠.

성형외과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입증해주는 어린 시절의 사진.

아직 어린 우리 둘이 이런 얘길 하는 게 재밌네요.

=그렇죠. 전 아직 20대인데요.

최근 국제 정세 중에는 가장 놀랐던 건 뭔가요?

=역시나 IS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IS가 탄생할 수는 있다고 봐요. 그런데 어떻게 저런 집단이 굳건하게 존립할 수 있는지가 이해가 안 돼요. 말로는 종교적인 원리주의라고 하지만 보기에는 혐오 범죄랑 더 비슷한 것 같아요. 교조화된 야만이죠.

러셀이 그런 말을 했었죠. 무엇이든 교조화가 문제라고.

=그렇죠. 그런 식이 되면 '다른' 것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게 되는데, 요새는 IS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혐오가 보이니까. 빙산의 일각 같아서 더 무서워요. 그런데 그렇다고 '얘들은 사상이 교조화되어서 그래'라며 동정할 순 없잖아요. 술 마시고 성폭행을 한다고 해서 봐줘야 하는 게 아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고 해서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이제는 우리의 정책이 선량한 사람들을 그런 혐오범죄자들로부터 보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우리는 죄지은 사람을 벌하는 것만 해봤지 죄지을 사람으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벌을 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재범이 되지 않도록 교도까지 확실하게 시키는 게 선량한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겠죠.

평상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참 놀라워요. 오늘 제가 물어봐서 즉흥적으로 대답하는 건 아닐 거란 말이죠.

=저희 부모님 영향일까요? 어머니는 30년 동안 미술 교사와 문화관광부 직원으로 계셨고 아버지도 공무원이셔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은 거죠. 공무원이 많은 집안입니다. 저야 뭐 바다에서 헤엄치는 한 마리 전갱이일 뿐이라 잘 모릅니다만.

빙산의 일각이라는 얘기가 기억에 남아요. 직업이 에디터다 보니 인터넷 서핑을 많이 하는 편인데, 각종 게시판에 혐오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문제거든요. 그런데 핑크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빙산의 일각이란 생각이 드네요.

=지금 지역 차별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이 논의 중이라면서요? 그 법이 빨리 발효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드네요. 그런 발언들이 빙산의 일각이라면, 사실 정책적으로 언어를 바꿔 보려고 해도 의식이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요?

=물론 부적 강화정적 처벌(처벌로 죄를 줄이는 것)로는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뿐이고, 정적 강화(상으로 선행을 장려하는 것)를 정책으로 삼는 게 좋겠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트렌드를 읽기 위해 신어들을 빨리 받아들이면서도 혐오의 어감이 들어간 언어는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왕들이 최신 단어들은 쓴다는 게 조선왕조실톡의 매력 중 하나기도 하죠.

=일상어를 쓴 건 일종의 치트키(게임에서 진행을 쉽게 하는 숨겨진 키)죠. 일상어를 써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건 사실 일차적인 노림수고, 역사란 게 워낙 민감한 문제니까 날 세우는 사람이 없게 하려고 했어요. '어쨌노라 저쨌노라 정색을 했으면 공격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맘에 안 드는 말을 상대방이 해도 유머러스하면 넘어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패러디 작업을 하다 보니까 느낀 게 있어요. 유머를 던지려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조선왕조실톡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려운 단어를 쓰고, 혹시 모를 공격에 대한 변명을 작품에서 해왔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계속해서 암시를 걸어요. '이 웹툰을 보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변명하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고 말이죠. 이렇게 쉽게 접근하는 건 저도 처음 해보는 거예요.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어요'라는 마음이면 재밌게 읽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콘텐츠 만드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느끼는 최근의 트렌드가 있나요?

=큰 변화가 있어요. 예전보다 대사를 굉장히 짧게 칩니다.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는 두괄식으로 주제를 앞에 놓고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요새는 독자들이 긴 글을 힘들어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간결하게 표현하다 보니 '반어'나 '역설'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현저하게 말라버렸죠. 예를 들면 제가 좋아하는 만화의 한 장면인데, 주인공이 '사랑해'라면서 연인을 칼로 찌르는 장면이 있다고 하면, 사랑과 살인의 역설적인 관계에서 오는 깊은 슬픔을 느껴야 하잖아요? 근데 요새 그 만화가 웹툰으로 나왔다면 아마 사람들이 이해를 못 했을 거예요. '대사 잘못된 거 아닌가요? 수정해주세요. 작가님' 이런 댓글이 달렸을 거예요.

거미 휴대전화 케이스를 가지고 노는 무적 핑크.

악성 댓글을 만나 적은 있나요?

=있긴 할 텐데요. 네이버가 자정작용이 잘 되는 편이라, 'XX님 그런 말 하시면 안 되죠'라는 대 댓글은 있는데 정장 원 댓글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댓글은 그저 소소한 생각으로 다는 경우가 많아요. 진짜 심각하게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은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요. 예전에 태극기를 그렸는데 태극의 각도가 살짝 삐뚤어졌었나 봐요. 연장자분들께서 소속사에 어찌나 전화하셨는지, 심지어 회사 직원들 이름까지 외워가며 항의를 하시다가 결국엔 행정안전부에까지 민원을 넣으셔서 난리가 났었어요. 종친회도 몇 번 있었죠. 사육신을 죽이는 데 일조했던 XX의 후손분들이 전화해서 조상님 변명을 해주는 경우도 있었죠.

요새 애국의 물결이 거세죠. 본인은 애국자인가요?

=아뇨.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서는 애국자가 아니에요. 이 나라에서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제 애정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예를 들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편에 서긴 하겠지만 그게 국가를 사랑해서는 아니에요. 국가를 사랑한다는 게 뭔가요? 애초에 '국가라는 게 뭘까'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전 그저 나와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요새 사람들이 말하는 '애국자'의 의미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리퍼트 대사한테 칼질을 한 사람도 본인을 '애국자'라고 하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춘 사람들도 본인들이 '애국자'라고 생각할 텐데, 진짜 이 나라를 위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과연 '나는 애국잡니다'라고 말하고 싶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