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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26일 0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28일 14시 12분 KST

박정희가 그리운 이유

지난 주말, 청계 8가의 도깨비 시장을 오랜만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한 골동품 가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3공화국 시절의 빈티지 사진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량 생산해서 한 장에 3천 원에 판매하는 신품이었다. 주인 아주머님에게 많이 팔리느냐고 물었다. "많이 팔리지.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잘 아니까. 이분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애썼고, 이분 덕에 우리가 다 잘살게 된 걸 아니까."

Huffingtonpost Korea/Park Se Hoi

지난 주말, 청계 8가의 도깨비 시장을 오랜만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한 골동품 가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3공화국 시절의 빈티지 사진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량 생산해서 한 장에 3천 원에 판매하는 신품이었다. 주인 아주머님에게 많이 팔리느냐고 물었다.

"많이 팔리지.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잘 아니까. 이분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애썼고, 이분 덕에 우리가 다 잘살게 된 걸 아니까."

park

시장을 돌아다니며 좀 더 살펴봤더니 여기저기, 박정희가 유신의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놀라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2009년 11월 4일, 중국의 작가 쉬즈위안도 내가 겪은 것과 매우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폴란드의 한 호텔에서 <데일리 텔레그라프>를 읽다가 그 신문의 한 면에 놀라운 기사를 읽었다. '중국 창사에 100피트 높이 마오쩌둥 조각상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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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일가는 도깨비 시장의 록 스타다.

모든 독재는 트라우마를 낳는다. 독재시대가 지난 후 독재자의 유령이 시장을 떠도는 것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을 학살한 사람 중 하나인 스탈린의 대형 사진을 든 사람들이 바로 지난해까지 거리를 활보했고, 쉬즈위안이 썼다시피 중국에서는 홍위병으로 자신의 만년을 보위했던 마오쩌둥의 유령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스페인(프랑코)과 루마니아(차우세스쿠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외치는 말은 똑같다. "그분들이 통치하던 그때가 좋았다."

그들은 왜 독재를 그리워하는가? 그 첫 해답은 경제 양극화가 불러온 상대적 박탈감일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쉬즈위안은 <독재의 유혹>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회 형태의 전환 과정이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압제로 가득했던 그 시대를 미화하여 지금보다 더 안정적이며 사회적으로 더 많은 보장을 받았던 시대라고 공언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딱 그런 상황이 아닌가. 1960년대보다 좋은 밥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지만, 도깨비 시장에서 3천원짜리 청바지를 사면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롯데 캐슬'을 바라보자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가 그들을 독재의 망령에 안내해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라는 체제가 반드시 품을 수밖에 없는 국가주의가 뇌관처럼 작동했다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있다. 박정희는 재임 시절 수많은 연설문과 자신의 책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통해서 개인과 국가가 대립할 때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민족적 양심'이라며 애국의 뇌관을 심어 놨다. '구두 닦기도 근검절약해서 저축하면 은행이나 정부가 그 돈을 산업자금이나 국가의 경제 개발에 쓰기 때문에 훌륭한 애국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다'(박정희, 1973)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대기업에만 들어가려고 하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애국은커녕 애도 안 낳으려는 지금의 세대가 못마땅할 수밖에. 독재의 유령이 되살아나 혼꾸멍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 지금 정부는 뇌관이 터질 때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관공서의 국기게양을 추진 중이다. 행정부의 수반이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 배례를 하고. 그렇게 우리가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얘기한 게 심정적 발단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가는데 애국심만은 고취해야겠다는 것. 어르신들은 그런 딸을 보면서 그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면이 있었던 그 아빠가 그리운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