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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6일 10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6일 10시 17분 KST

'퍽유 머니'와 '시발 비용'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fuck you

최근 미국에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길거리 경제학 용어가 있다. 적절히 번역할 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상스러운 단어를 사용하는 데 사과를 표하고 그대로 쓰겠다. 그 단어는 바로 '퍽유 머니'(Fuck you money)다. 누군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기 싫은 걸 자꾸 시킬 때, 거기다 대고 '꺼지라'고 외치는데 드는 비용. 그게 바로 퍽유 머니다.

이 단어의 용례를 가장 적절히 보여주는 장면을 하나 소개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미국 드라마 '빌리언스'에서 헤지펀드 회사의 사장이자 억만장자인 '바비 액셀로드'(데미안 루이스 분)는 850억 원쯤 하는 해변의 대저택이 사고 싶었다. 문제는 이렇게 비싼 대저택을 구매하면 언론은 물론 미 국세청과 증권거래위원회의 주목을 받게 된다는 사실. 한편 액셀로드를 내부자 정보 거래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뉴욕의 미연방 검사 '척 로즈'(폴 지아마티 분)는 자신의 사냥감이 언론이나 다른 기관의 주목을 받는 게 싫었다. 이를 막기 위해 액셀로드에게 직접 수갑 차기 싫으면 그 저택을 사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이때 액셀로드가 이렇게 말한다.

"'퍽유'(Fuck you)라고 말하지 않을 거면, 그 많은 퍽유 머니를 가진 게 무슨 소용인가?"

액셀로드의 '퍽유 머니'는 저택을 사는 데 드는 850억 원이 아니라 사들이고 나서 언론 기사를 막고, 수사를 뿌리치기 위해 공작원을 고용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드는 비용일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건 결국 '직장을 관두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다 써놓은 보고서에 상사가 자기 이름을 슬쩍 올려 제출했을 때 분노하며 회사를 때려 칠 수 있는 비용. 부장의 다른 이름은 '전무님 댁 집사'라는 걸 깨달았을 때 골프채를 집어 던지며 회사를 떠날 수 있는 비용 말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노후자금이다.

이건 뭐 만국 공통의 질문이라 직장을 관두고 여생을 풍요롭게 보내기 위한 자산 규모를 산출해주는 계산기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타임지에 따르면 40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 해에 약 3000만 원씩 써가며 90세까지 살려면 약 9억8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방금 이 글을 읽고 인생의 목표를 수정한 사람,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물로 이 단어가 최근에 등장한 건 아니다. 타임지의 분석에 따르면 대략 1960년대부터 여러 책에 '퍽유 머니'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 이 단어가 책에 등장한 빈도수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주가 지표인 'S&P500'이 무척이나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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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어는 미국 증시가 호황이던 1980년대에 갑작스레 많이 쓰였고, 1990년대부터 그 빈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니 2002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2007년에 21세기의 바닥을 찍었다. 참고로 2002년은 정보기술(IT) 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한 해였고, 2007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해다. 너무 단순한 통계들이라 이를 근거로 명제를 도출하긴 어렵겠지만, 내심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역시 사람은 먹고 살게 되면 자유를 찾는구나!' 타임지 역시 '퍽유 머니'를 과거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열망, '아메리칸 드림'의 최신 버전이라 설명하며 '아메리칸 프리덤'이 극단화 한 욕구라 분석했다.

한편 한국에선 최근 '시발 비용'이라는 단어가 새로 생겼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시발 비용은 비속어 '시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고 한다. 이 '시발 비용'은 말이 저속해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익숙한 돈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우리 회사는 인적 스트레스가 극히 드문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들어온 외고를 마감하거나 잦은 당직에 시달리게 되면 일을 얼른 다 끝내버리고 싱글몰트 위스키나 와인 바를 찾아 벌컥벌컥 마시고는 호기롭게 카카오 블랙을 불러 타고 귀가한다.

원고료와 야근비를 합치면 대략 그날의 술값과 택시비라는 건 개인적인 슬픔일 뿐. 시발 비용은 결국 다르게 말하면,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시스템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다. 퍽유 머니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비용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시발 비용'은 소심한 사람의 퍽유 머니나 다름없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시발 비용에 대해 "지속된 경기불황과 불안정한 시국으로 개인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서 소소한 소비문화 확산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퍽유 머니에 대한 타임지의 해석과 시발비용에 대한 이 교수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경기가 호황일 때 우리는 퍽유 머니를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경기가 불황일 때는 시발 비용을 지출해가며 스트레스와 싸운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찌든 사람에겐 호황과 불황, 퍽유와 시발의 사이에서 탈출할 방법은 딱 하나다. 홀짝홀짝 위스키를 마시고 택시비를 도로에 뿌리며 9억 8000만 원을 모으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화이팅!

*이 글은 매거진 D에 기고한 글을 편집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