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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1일 13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1일 14시 12분 KST

너희도 뜨고 싶지 않냐고? 홍대씬을 알려주마

나는 최근에 좀 기분 나쁜 피드백도 몇 번 받았는데. 솔직히 상관없고 신경 별로 안 쓰임. 근데 딱 하나, 니가 그렇게 잘하면 진작에 떠서 메이저로 가서 돈 벌었을 거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 인디씬을 아직 못 뜬 애들이 모인 동네처럼 얘기하는 거에는 내가 너무 빡이 쳐서 진짜... 장하다 너. 성감대 잘 건드렸어. 그리고 곧 있으면 단물 빠질 거니까 물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훈수도 막 주시고. 오케이. 대체 뭐가 단물이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처럼 인디음악 모르는 분들이랑 페친도 먹고 한 김에 나 이런 글 쓸 자격 없다고 생각하지만 궁서체로 노 한 번 저어볼게요. 긴 글인데요. 한번 힘 실어주고 싶다고 하셨던 분들 그냥 이거 읽어 주는 걸로 퉁치세요. 이번엔 욕도 거의 안 넣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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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제8극장 페이스북

일단 우리가 공연하는 클럽을 여자 꼬시고 춤추는 클럽이랑 헷갈려 하시는 분들 가끔 있는데 우리가 공연 하는 곳은 '라이브 클럽'이다. 이거 그냥 '클럽'이라고 짧게 부르다 보니 헷갈리나 보다. 이성만남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냥 작은 공연장이라고 보면 되고 보통은 백명 이백명 사이로 들어갈 수 있다. 작은 곳은 50명 정도? 근데 작은 곳은 또 작은 맛이 있다. 나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롸일락 같은 작은 클럽도 좋아한다. 진짜 멋진 곳이지만 내년 3월달에 문을 닫는다. 라이브 클럽엔 나이 많다고 못 들어오고 옷 못 입었다고 못 들어오는 거 없으니 맘 편하게 와서 공연 보면 된다. 카페 병행하는 곳도 있고, 술집 병행하는 곳도 있다. 더 큰 규모의 공연장도 있는데 뒤에 '홀' 머 이런 거 들어가면 보통 그런 곳임. 여기서 단독공연하면 간지인거고 밴드 좀 흥하는 거임. 각각 클럽들이 다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씩 다녀보는 재미도 완전 쏠쏠함. 괜히 홍대가 서브컬처 메카겠습니까?

근데 홍대씬이라는 게 클럽 있고 밴드 있고 땡이 아니다.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한국 최고의 밴드 사운드를 만들고 있다. 이 인간들 진짜 무시무시한 괴물들인게 가요는 엠알시디 틀어주면 되지만 우리는 악기 소리들을 다 잡아줘야 된다. 근데 하루에 4팀 5팀이 30분씩 연주하고 교체되는데 그때마다 매번 사용하는 악기가 싹 바뀌고 연주하는 장르도 바뀐다. 이거를 보통 한명의 엔지니어와 스탭 몇 명이 다 소화해냄. 더 미친 건 이 인간들은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달 내내 해내고 있다는 거. 밴드들은 깐깐하기 그지 없고 관객들은 오늘 여기 공연장 사운드가 어쨌네 저쨌네 하며 바로 인터넷에 피드백을 올린다. 이들을 수년간 만족시켜온 실력자들이 수두룩함.

근데 이 씬을 한층 더 재밌게 만드는 건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기획자들이다. 나는 지난 주말에 라이브 클럽데이에(이하 라클데) 참여했는데 이건 뭐냐하면 매 달 마지막주 금요일에 열리는 일종의 페스티벌이다. 티켓 한 장으로 여러 클럽들을 돌아다니면서 40여팀의 공연을 볼 수 있음. 월말마다 축제인 거다.

팬들은 매달 라클데 라인업이 발표 되길 기다리고 라인업이 나오면 어떻게 돌아다니면서 어떤 공연장에서 누굴 볼지 계획한다. 중간에 딱히 보고 싶은 팀 없는 시간에는 근처에서 밥 먹어도 된다. 마침 여기 홍대라 맛집도 많다. 근데 밥먹고 나오다가 방금아까 공연 봤던 밴드가 악기 들고 지나가는 걸 볼 수도 있다. 밴드맨 입장에서 이럴 때 아까 공연 너무 잘봤다고 인사해주면 엄청 반갑고 고맙다.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줄 수 있다. 나처럼 막 페북에 팬들이랑 댓글놀이도 하고 그런다.

1년에 한번 잔다리페스타라는 것도 있는데 이건 홍대 밴드들만 참여 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의 인디밴드들이 홍대로 몰려와서 함께 하는 것. 올해 우리는 클럽 타에서 공연했는데 앞팀은 프랑스사람들이 만든 3인조 밴드였고 엄청 하드한 락음악이었는데 일렉기타 대신 전통 중국 현악기를 사용했다. 이런 구경을 솔직히 어디가서 하겠나. 그 외에 기발하고 재밌는 소규모 기획들도 많고 클럽들은 매주 자체적으로 공연 기획을 한다. 요즘은 그냥 네이버 메인에도 소개가 많이 되고 그러니까 이 글 읽고나면 이제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올거다.

밴드맨으로서 정말 재밌는 공연 많다고 자부한다. 팬도 기획자들 덕분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많이 느끼겠지만 밴드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홍대씬이 그냥 클럽과 거기서 공연하는 밴드만 있는 세계인 거보다 훨씬 재밌다. 레벨업 하는 맛도 있고. 라클데나 잔다리 때 우리 공연을 보던 관객 중에는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애들도 있어서 오오 나도 언젠가 라클데를.. 이러면서 괜히 설레고 흥분되고 그랬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와 같은 소속사의 보이즈 인 더 키친은 활동을 시작하고 첫 일년 동안은 주말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지금은 공연 때마다 팬들이 와서 대표곡들을 따라부른다. 나는 올해 잔다리 페스타에서도 연주하고 여러 차례의 라클데에서도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아, 이거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어서 내가 더 놀랐는데 우리 소속사도 있다. 난 트리퍼사운드라는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는데 작은 회사지만 큰돈을 쓸 일도 없고 손해 볼 부담도 적어서 유연하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실험해 볼 수 있다. 나한테 꼭 잘되셔서 메이저기획사 들어가게 되실 거에요 라고 해주신 분도 계셨는데 전국민이 제8극장의 팬이 되어도 나는 트리퍼사운드와 함께 일할 거다. 내가 메이저 기획사에 안 들어가는게 아직 못 떠서가 절대 아닌 것. 음악 스타일과 활동방식, 음악에 대한 애티튜드에서 나와 맞는 회사랑 일을 하는 게 거대 자본의 지원을 받는 것 보다 중요하기 때문. 한마디로 큰 회사가 팍팍 밀어주는 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내 꼴리는 방식으로 하는 게 넘나 중요해서다.

근데 이거 아마 홍대 뮤지션들은 뭘 또.. 하고 새삼스러워 할 거다. 너무 당연한 거라서. 그냥 우리한테는 이게 너무 당연한 거다. 그런 애들이라 메이저 음악판에 안 가고 여기 있는 거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리고 우리도 다 뜨는 거 좋아한다. 돈 좋아하고. 고고하게 우린 돈과 명예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거 아님. 야망 있음. 근데 그게 우선순위 맨 꼭대기가 아닌 거다. 그래서 애티튜드도 다 다르고, 음악 스타일도 다르고. 음악에서는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런 철학도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그 와중에 좀 더 비슷한 애들끼리 모이게 되고 홍대씬 안에도 또 몇 개의 씬으로 나뉜다. 이건 뭐 딱 칼같이 나뉘는 건 아니고 부르는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암튼 어느 정도 구분이 있다. 자주 공연하는 클럽도 서로 좀 다르다. 다른씬에 있는 팀하고는 서로 잘 모르고 마주칠 일이 생각보다 없다. 나는 김사월x김해원 음악을 좋게 들었지만 그 분들이랑 한번도 못 마주쳤다.

여기 이렇게 생각보다 거대하고 재밌는 세계다. 이게 다 음악팬들이 그만큼 있는 덕분이다. 내 주변엔 한 명도 없는 거 같아도 서브컬처에 목 매고 사는 사람들 생각보다 진짜 많다. 그리고 이런 문화에 빠진 팬들은 메이저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다. 노잼이라서. 솔직히 우리 쪽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신곡을 기다리고 공연을 보러다니고 하는 거. 서울 살면서 할 만한 문화생활이다. 우리 수준도 높다.

이런 실력 있는 사람들이랑 동료로 일 할 수 있고 이런 음악팬들 앞에서 연주 할 수 있다는 게 이미 영광이고 자랑스럽다. 근데 막 락페도 나가고 앨범도 내고 단독공연도 하고 레이블 콘서트도 하고 솔직히 이번 인생 그냥 재밌고 개짱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밴드 하겠다고 그러면 너무 재앙이 일어난 거처럼 마음 아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차피 요즘 뭐해도 먹고 살기 힘든 거 매한가진데. 재밌게라도 살면 좋잖아요.

한국의 음악 시장이 크지 않아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채널이 부족해서, 그리고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즐기기엔 사람들의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고 그렇게 일하는데도 삶이 빡빡해서. 다른 나라 같으면 당연히 메이저시장에 있어야 할 법한 음악들이 홍대씬에 머물러 있다. 메이저 록씬이라는 게 없는 나라이다보니 그냥 홍대씬이 곧 한국의 록씬이 되어버리는 식. 그 바람에 여긴 무시무시한 실력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돼버렸다. 누구도 쉽게 여기를 씹어먹는다 어쩐다 하기 힘들 거다. 유명세만이 우릴 씹어먹을 수 있고 유명세 없이는 fun. 같은 애들은 목요일 에프에프 무대도 감지덕지 해야 할 거다. 이런 문화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거 서울사람들은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사실 이런 게 대도시마다 있으면 우리 나라 진짜 개짱인 나라일거다. 한국 정도 경제규모에 그렇지 않은 게 더 이상한 거다. 근데 어쩌다 수준 높은 씬이 서울에 하나 있는 거다. 여기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는데 다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선배들의 열정으로 이렇게까지 대단해진 거다. 이제는 해외에 소개되고 외국 유명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팀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러다 보면 여기서 비틀즈도 나오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여기 이제 심각하게 점점 유지가 힘들어지고 있다. 땅값이 너무 올라서.

진짜 대안은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서로 많이들 얘기했으면 좋겠고 난 그냥 인디밴드가 못 떴고 돈 없고 불쌍한 애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빨리 너도 혁오처럼 되서 무도나가고 해야지' 이런류의 얘기 안 들어본 홍대 뮤지션 몇명 없을 거다. 혁오자리에 다른 이름 넣어도 되고. 어차피 홍대밴드 전체가 다 뜰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는 홍대 클럽에 남아 '빨리 너도 제8극장처럼 되야지' 이런 소리 들어야 하는 건 매한가지임. 근데 다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팬도 있고 자기음악 멋있게 잘 하는 사람들임. 그 자체로도 멋있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됨.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전부 고맙고 제가 사랑하고 다 이쁘고 잘생기고 개짱 멋있는 사람들이고 이번주에 좋은일 많이 생기실 거고 암튼 다 복받으실 슈퍼짱인 분들임. 그리고 재미도 없고 너무 길다면서 중간에 접은 사람들보다 끈기도 있어서 하시는 일마다 잘 되실거임. 락앤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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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극장 | 서상욱(보컬, 기타, 베이스, 리더), 임슬기찬(기타, 코러스), 함민휘(키보드, 기타, 베이스, 클라리넷, 코러스), 김태현(드럼)

사진 출처 | 어쿠조아Rock의 페이스북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