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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0일 0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1일 14시 12분 KST

알파고와 오르가슴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떠올리며

바둑은 모양을 중시한다. 오청원 9단은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調和)라고 했다. 바둑은 형세가 집(家)이 되고 집이 많으면 이긴다. 이런 바둑이라는 게임을 단순히 초반 포석, 중반 전투, 마지막 끝내기 등의 의미로만 분해하는 것은 아주 어색하다. 그래서, 바둑 분야의 컴퓨터 대결은 '모양'(image) - 혹은 패턴(pattern) - 에 관한 형세 판단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제1국을 보고, 알파고의 '패턴 분석'에 깜짝 놀랐다. 기계는 '두터움'을 모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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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AlphaGo)와 오르가슴(orgasme)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떠올리며

유명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뇌'(원제 :최후 비밀, L'ultime Secret)에는, 다들 기억하다시피, 인간 체스챔피언이 인공지능 딥블루와 대결을 하여 패한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아주 오래 전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그저 아련하고 몽환적이어서 흐릿하게만 여겨지는 쑥스러운 성행위(sex)를 호르몬의 움직임 등 생리학적 관점에서 담백하게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과 관련하여 나는 이 작품이 떠올랐었다.

(전략) ~ 그의 뇌 속에서, 극도로 흥분한 뇌하수체가 차고 넘칠 만큼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내보낸다. 이 호르몬의 자극을 받은 심장은 몸의 요소요소에 더 빠르게 피를 보낸다. 그녀의 뇌 속에서, 시상 하부가 차고 넘치도록 많은 황체 호르몬을 방출한다. 이 호르몬은 젖분비 호르몬의 분출을 유도하고, 이 젖분비 호르몬은 그녀의 배와 젖꼭지에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 (중략) ~ 룰리베린과 황체 호르몬과 테스토스테론이 혈관 속에 흘러 들어 한데 뒤섞인다. 이 호르몬들은 연어가 힘차게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동맥과 정맥과 소정맥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들어간다. ~ (중략) ~ 피부 밑의 근육들이 더 힘을 내기 위해 당분과 산소를 요구한다. 그들의 뇌 속에서는 시상이 세포들의 활동을 통괄하려고 애쓴다. 시상 하부가 이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있다. 마침내 그들의 대뇌 피질에 생각이 형성된다. ~ (중략) ~ 그러자 심장이 8헤르츠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뇌도 마침내 8헤르츠의 파동에 스스로를 맞춘다. 이로써 뇌와 심장과 성기가 하나로 연결된다. 그들의 송과체가 활기를 띠면서 앤도르핀과 코르티손과 멜라토닌을 방출하고, 이어서 천연의 디엠티를 내보낸다. ~ (후략)

구글의 '이미지 검색'은 놀랍다. 검색 창에 '이미지 파일'을 던져 넣으면 결과를 보여준다. '무궁화' 사진 하나를 검색 창에 넣으면, 무궁화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한 듯 검색 결과가 나온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미지를 판독하여 그에 매칭되는 텍스트를 찾아내어 다시 텍스트 검색을 하는 셈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분석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해내는 컴퓨터의 능력에 대하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고양이 사진 하나를 점으로 선으로 나누어 분석하여 이 피사체가 동물인지, 고양이인지, 개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구글 포토스'라는 무료 무제한 사진 저장 서비스로 모이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이 판단을 위한 리소스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의 표현에서도 나타나듯, 성행위라는 것도 결국은 '호르몬'이라는 관점에서 분해가능하다. 그렇다면, 바둑이라는 게임도 분해 가능할까. 바둑은 모양을 중시한다. 오청원 9단은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調和)라고 했다. 바둑은 형세가 집(家)이 되고 집이 많으면 이긴다. 이런 바둑이라는 게임을 단순히 초반 포석, 중반 전투, 마지막 끝내기 등의 의미로만 분해하는 것은 아주 어색하다. 그래서, 바둑 분야의 컴퓨터 대결은 '모양'(image) - 혹은 패턴(pattern) - 에 관한 형세 판단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제1국을 보고, 알파고의 '패턴 분석'에 깜짝 놀랐다. 기계는 '두터움'을 모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양, 형세 등의 단어는 이해는 되지만 설명하기 쉽지 않은 단어다. 서양 사람에게 동양의 '기(氣)'라는 단어를 설명하려면 영화 스타워즈에서의 '포스'(force)라는 단어로 굳이 설명할 수는 있다. 바둑에서도 기세(氣勢)가 존재한다. 판 외에서의 상대 전적 때문에 대국 전부터 주눅들 수도 있다. 판 내에서도 팻감 부족으로 패 싸움에서 진 흥분은 실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게 바둑의 묘미다. "이 수(手)는 '맛'이 나쁜데요"라는 바둑 해설이 가능한 이유도 그래서다. 그 맥락에서 보자면, 호르몬으로 설명한 섹스는 가슴 콩닥거림이 없다. 섹스는 호르몬 분비 행위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컴퓨터가 두는 바둑은 덜 설렌다. 바둑은 패턴 분석 행위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이세돌 9단이 패배한 오늘, 여러 이유로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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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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