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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0일 10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0일 14시 12분 KST

라이브 포토와 예술 법원

ASSOCIATED PRESS

라이브 포토(live photo)와 예술 법원(Art & Court)

1.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은 그녀의 책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1977)에서, 동영상(video)과 구별되는 정지(停止)된 화면, 즉 이른바 스틸 이미지(still image)로서의 사진을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오는 것과 책의 한 구절을 따오는 것은 전혀 같지 않다. 어떤 책을 읽는 시간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시간은 영화제작자가 결정하고, 영상도 어떻게 편집됐느냐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인식될 뿐이다. 따라서 어떤 한 순간을 마음만 내키면 오랫동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스틸 사진은 영화와는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다. 삶이나 사회의 특정한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사진이 일련의 과정, 예컨대 시간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삶이나 사회와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사진에 찍힌 세계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스틸 사진이 영화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듯이, 현실세계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거나,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

맞는 말이다.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 곰곰이 들여다 본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사진 속의 피사체에 스토리를 입힐 수 있다. 보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반쯤 열린 문 앞에 한 명의 신사가 서 있는 사진이 있다고 해 보자. 이 신사가 문을 열고 나가는 중인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인지, 사진만으로는 확실하지 않다. 보는 이의 심상(心象)이 투영된 해석이 비로소 숨 쉴 여지가 생긴다.

이를 두고 수전 손택은 위 책에서, "사진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사진에 포착된] 어떤 한 순간, 그것도 시간의 정상적 흐름이 곧 제자리에 돌려놓을 순간을 마음껏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시간의 고정(사진이 만들어 놓은 무례하고도 신랄한 정체 상태)은 새롭고도 훨씬 포괄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창출해 왔다."고 말한다.

2.

신선하고 획기적인 시도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선사해준다. 페이스북(Facebook)에 인수된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Instagram)이 정체성으로 여겨 고집했던 정방형 비율의 사진이 그랬고(아쉽게도, 지금은 정방형 사진만 고집하던 정책이 바뀌어, 보통의 사진과 같은 가로 세로 비율이 적용된다), 트위터(Twitter)가 선보인 동영상 생중계 앱(App.)인 페리스코프(Periscope)의 세로 화면 동영상 촬영이 그랬다. 삼성이 2011년 갤럭시 노트 시리즈에서 첫 선보인 스타일러스 펜(Stylus pen, S펜) 역시 결국 애플 펜슬(Apple pencil)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폰이 일깨워준 터치(touch)라는 손 감각이 스마트폰 세상을 휩쓸고 있던 2010년 초반경, 터치에 깊이(depth)를 더한 입력방식을 삼성이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이미 들은 바 있다. 일반인들이 터치(touch)에 환호하고 열광할 때, 전문가들은 이미 푸쉬(push)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발매된 아이폰 6S의 여러 기능 중 '쓰리디 터치(3D Touch)'는 별로 신선하지 않았다. 나는 '라이브 포토(live photo)'라는 신선하고도 획기적인 시도에 끌렸다.

'라이브 포토' 기능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으면, 한 번의 촬영으로 12메가 픽셀의 JPEG 이미지 파일 하나와 3초 분량의 MOV 동영상 파일 하나가 동시에 생성된다. 아이폰 6S와 OS X 엘 캐피탄이 장착된 맥(Mac)끼리는 라이브 포토를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기기 간에는 파일을 전송해 주어도, 그저 정지된 사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촬영 이후에 보관함에서 살펴보면, 그저 한 장의 사진처럼 보이지만, 슬쩍 누르면 3초 가량의 동영상이 재생된다. 앞서의 예에서, 한 명의 신사가 문을 열고 나가는 중인지 들어오는 중인지 사진으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라이브 포토'로는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나무 위로 재빨리 올라가는 귀여운 청설모 두 마리를 '라이브 포토' 기능을 켠 채 찰칵 사진 찍으니, 꼬리를 흔들며 후다닥 움직이는 실감나는 짧은 영상이 즉시 만들어진다.

왜 애플은 이런 기능을 만들어 넣었을까. 최신 버전의 아이폰과 맥 오에스(OS)를 쓰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자극하고 유지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사진(photo)이라는 것을 새롭게 정의(定義)내리기 위해서였을까. 수전 손택이 《사진에 관하여》를 썼던 1970년대는 지금처럼 사진기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간편한 동영상 촬영 단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이었다. 사진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사고 현장에든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허가증'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간 사진은 시간의 정지된 한 단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파해 주었다. 굳이 셀피(Selfie)라는 신조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중화된 사진기와 대중화된 사진은 확실히 이전 세대에서 사진이 가지는 함의(含意) 이상을 지니게 되었다.

애플이 사진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려는 의도를 가졌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겠지만, 아이폰의 '라이브 포토'는 올해 5월말 구글이 선보인 무제한 사진 저장 서비스인 '구글 포토스(Google Photos)'와 나란히 놓고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싶다. 클라우드에 저장하여 두고, 어느 기기에서든 사용할 수 있고 백업할 수 있으며 동기화할 수 있다. 아이폰의 클라우드 저장서비스인 '아이 클라우드(iCloud)'는 단번에 열등 서비스 신세가 되었다. 사용자들의 입장에서는 무제한 용량의 무료 서비스인 구글 포토스 앞에서 5기가바이트 이상은 유료인 아이클라우드가 성에 찰 리가 없다. 애플로서는 차별화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3.

애플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 - 모든 사람들, 그리고 모든 소비자들 - 에게 다른 사용자경험(UX)을 선사하고 있다. 회상을 도와주는 방법, 회고하는 방법, 보존하는 방법으로서의 사진을 다시 정의내리고 있다. 사진은 무엇이고 동영상은 무엇인가. 정지는 무엇이고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사진이되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되 멈춰있지만은 않다. 그리고 누구나 이것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은 판결이라는 이름의 결론을 내리는 곳이다. 수차례의 변론기일이 진행되는 동안의 희노애락은 판결선고일의 그 찰나적 선고시점에 이르러 드디어 매듭지워진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다. 선고 결과를 경청하며, 잠시 숨도 멎는다. 누군가는 그 이후 내내 숨이 턱턱 막힌다. 한편, 법원은 판결 이외에 조정이라는 이름의 결론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판결이 주는 일도양단의 단절적이고 정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중재와 조정은 합의에 이르는 연속적이고 동태적인 과정을 상징하게 된다. 판결을 중재나 조정으로 치환하고 보완하려는 시도는 그간 있었다.

창원지법에서 시작하여 시나브로 부산지법을 거쳐 이제 전국으로 전파되고 있는 '예술 법정'은 신선하고도 획기적인 시도다. 법원이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사법서비스에 대한 법원장의 평생의 법조철학을 담은 예술법정 프로젝트는 회화와 서예 작품을 아우르게 되었고, 법정을 벗어나 로비와 복도로 확산되었다. 법원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재판관할 내의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제 틀이 잡히고 또 널리 알려져, 바야흐로 '예술 법원'이라 부를 만해졌다. 공명정대, 파사현정 등등. 법원 로비에 걸린 여러 현판의 일필휘지들은 법원의 다짐이고 선언이다. 하지만, 예술법원의 법정과 복도 곳곳의 그림과 사진은 진화된 다짐이고 선언이다. 간접적이지만 더 강렬하고 효과적이다. 예술 법정이 예술법원으로 승화되고 있는 점은 너무도 바람직하다.

'라이브 포토'의 경우에 이입(移入)해 보자면, 판결이 '12메가 픽셀의 JPEG 이미지 파일 하나'라고 한다면, 법원의 곳곳에 걸린 예술 작품들은 이를 '3초 분량의 MOV 동영상 파일 하나'로 승화시켜 준다. 비록 선고 결과가 패소였다 하더라도, 재판을 위하여 법원을 오가는 변론 과정 내내 그/그녀는 치유될 수 있었고 누그러질 수 있었다.

수전 손택의 수명이 몇 년 더 길어서 스마트폰이 바꾼 현재의 세상을 보았다면, 재정의된 사진에 대한 통찰을 담아 그녀의 책 《사진에 관하여》의 전면개정판이 출판되었을 것이다. 최신 버전의 기기와 운영체제(OS)를 쓰는 사람에게만 '라이브 포토'가 보이듯, 그 철학과 여유를 아는 사람에게만 '예술 법원'은 읽히고 보인다. 사진이되 사진이 아니다. 동영상 같기도 하다. 사진이되 멈춰있지 만은 않다. 법원이되 법원이 아니다. 미술관 같기도 하다. 법원이되 결과만 중요하진 않다. 라이브 포토와 예술 법원은 그 점에서 닿아 있다. 라이브 포토는 사진을 재정의하려 하고 있다. 예술법원은 법원을 재정의하려 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