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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1일 08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1일 14시 12분 KST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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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理想한 경제학]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제 딴에는 세상일을 내다보는 재주가 있다는 점쟁이는 장터에 자리잡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운세를 보아주었다. 오늘 장사는 어떨지 시시콜콜하게 얘기해주며 마치 그들의 운명이 자신의 손바닥에 달려 있는 양했다. 더러 솔깃한 사람도 있었지만, 점쟁이의 설레발을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점쟁이에게 알렸다. 그의 집 앞을 막 지나왔는데, 문은 사방으로 열려 있고 세간도 몽땅 사라졌다고 했다. 필시 도둑이 든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점쟁이는 화들짝 놀라 죽자 살자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집은 멀쩡했고, 점쟁이는 영문을 몰랐다. 그때 젊은이가 말했다. "이보시오, 자신의 일도 내다보지 못한 자가 어찌 남의 앞날을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짐짓 아는 체하며 권위를 누려온 그에게 주는 따가운 충고였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자가 점쟁이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불안 때문이다. '삶은 불확실하다'는 일반적인 명제는 숙명처럼 받아들이지만, 막상 그 불확실성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하나 얻을 양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운세를 찾아보게 된다. 대개는 그냥 심심풀이라고 하지만, 돈 몇 푼 주고 얻어낸 '운세'를 곱씹어보기 마련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주머니를 조금 더 털어서 새로운 운세라도 '구매'하려 한다.

소수점 한 자리, 몇 년 뒤까지 예측

그래서 듣고 싶은 얘기를 알아채고 들려주는 것이 어쩌면 점쟁이의 능력이겠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점쟁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얘기를 들려주지 않고 점쟁이의 신분을 넘어 훈계를 했기 때문에 장터에서 공분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로서도 할 말은 많겠다.

'미래'라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궁금증은 개별적인 삶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이 모여 있는 사회집단 전체에도 적용되고, 집단적인 살림 문제인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경제가 어찌 될지 알면 내 주머니 사정이 어떨지 짐작해볼 수 있다.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온다고 하면, 매주 금요일에 살뜰히 챙기던 '치맥'을 줄여볼 계획도 세우게 된다. 경제가 화창한 봄날 같을 것이라고 하면, 새해 명절마다 듣던 짠돌이라는 원성을 피할 여유를 갖는다.

조그만 가계도 이러한데,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이들에게 경제의 향방을 제대로 내다보는 것은 곧 공기와 물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봄날이 올 것이라고 경제 살림을 꾸렸는데 천둥·번개만 계속된다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에 바깥에는 온몸에 비 맞고 서 있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나라 살림을 꾸리는 자들의 책무다.

다행스럽게도 경제예측은 점쟁이와 다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최소한 점쟁이처럼 '기운'을 믿지 않는다. 치밀한 경제이론에 입각하여 수백 개의 방정식 체계가 정밀하게 짜이고, 이렇게 정밀한 방정식 체계는 오로지 컴퓨터만이 풀어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도저히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거대한 통계자료가 투입된다. 그래서 경제예측은 과학이고, 굳이 말하면 일기예보와 같다. 가끔 강우량이나 태풍 속도를 잘못 계산하는 '사소한' 실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준비하고 바람 많은 날에는 바다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에는 경제예측 보도가 넘친다. 소수점 한 자리까지 붙여서 딱 부러지게 '몇 퍼센트'라고 한다.

물론 수치에 대한 해석은 늘 비슷하다. 나빠지면 나빠지는 대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경제 날씨와 관계없이 늘 우산을 써야 한다. 또 하나, 경제예측 수치는 그야말로 요해 불가다.

일기예보는 고기압과 저기압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주니 학교 다닐 때 졸면서 배운 지식만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기상청이 틀리면 전화기를 잡고 항의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예측은 '상식' 바깥에 자리한 영역이다. 경제학자들이 담당하는 초전문적 영역이고, 그래서 토 달기가 힘들다. 틀렸다는 직감은 어디까지나 직감일 뿐이다. 경제예측이 틀렸다고 정부나 한국은행에 따지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일기예보는 길어야 일주일 뒤를 예상하는 것이지만, 경제예측은 몇 달뿐만 아니라 몇 년 뒤도 수월하게 내다본다. 과연 전능의 영역이다.

번번이 빗나가는 '초과학적' 경제모델

경제예측의 역사상 2007년은 치욕의 해였다. 이런저런 불길한 징조도 보이고 저기압 전선이 빠르게 움직이는 조짐도 보였지만, 경제예측 모델은 한결같이 가벼운 비구름 정도만 예상했다. 그런데 초대형 태풍이 와버렸고, 경제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20세기 초 세계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터진 것이다.

물론 '점쟁이 능력'을 가진 금융가의 현인 누리엘 루비니와 경제학 교수 로버트 실러와 같은 이들은 오랫동안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하지만 절대다수는 '대체로 맑음'이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나 각국 정부가 운영하는 경제예측 모델에는 파국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분일초의 숨 막히는 찰나의 거래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금융기관의 모델도 마찬가지였다. 로켓이나 위성을 발사할 때 쓰는 정밀한 프로그램까지 동원해서 한때 '초과학'의 경지를 구가하며 수많은 투자자에게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는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참담한 상황이 닥치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한마디 거들었다. 2008년 영국 정경대학을 방문한 그녀는 '존경받는' 경제학 교수들에게 물었다. 금융위기가 오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아무도 알지 못했느냐. 예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여왕의 지엄한 질문인지라, 영국학술원은 부랴부랴 포럼을 조직해서 의견을 모았고 2쪽이 약간 넘는 답장을 여왕에게 보냈다.

답의 요지는 이랬다. 학계, 정책, 기업, 금융 등 각 분야에서 경제학자들이 모두 제 몫을 잘했고, 각자의 분야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징후를 포착해냈다. 하지만 이런 위기가 집단적이고 체계적으로 나타나는지를 책임지고 살피는 곳은 없었다. 각 분야에서 드러난 위기는 조그마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집단적으로 뭉쳐서 큰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알지 못했다. 궁극적으로는 '집단적 상상력' 부족이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집단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개별적 책임을 피하는 영민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각종 시장들이 서로 얽혀서 작동하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고, 좀더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부분균형이 아니라 일반균형을 보아야 한다고 늘 주장하고 훈계해왔던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해명치고는 치졸했다. 이솝우화의 점쟁이가 억울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집단적 문제 때문이었을까. 이런 난감한 상황은 경제위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IMF의 경제예측 모델을 예로 들어보자. 이 모델은 전세계 각국의 경제를 예측한다. 그만큼 복잡하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된 모델이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실패는 계속되었다.

경제위기가 터지자, 이 경제모델은 세계경제가 약간의 어려움을 겪겠지만 1년 뒤부터 회복기에 돌입한다고 했다. 물론 틀렸다. 2010년에 들어서는 기존 예측이 '낙관적 편향'이었음을 인정하고, 동시에 2011년부터는 경제가 반등한다고 예상했다. 다시 틀렸다. 그 뒤 몇 년 동안 계속 회복과 반등을 예측했으나 번번이 빗나갔다. 그동안 세계경제는 끊임없이 추락했다.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지난번 예측은 틀렸지만, 앞으로 6개월 이내 회복세를 보이다가 1년 뒤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7년 동안 경제예측 실패가 반복되는 동안, 선진국에만 국한되었던 경제위기는 서서히 개발도상국으로 번져갔다. 브라질이 흔들리고 이제 중국이 휘청거리고 있다. 하지만 올 1월 발표된 세계경제 예측은 여전히 '조만간 회복'이다(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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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왜 불필요한 고통을 겪었나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물론 미래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델 자체의 비현실성도 큰 몫을 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대니 로드릭은 최근에 낸 <경제학은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경제적 충격이 왔을 때 시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경제를 균형 있게 돌려놓는다는 믿음이 경제예측 모델에 짙게 깔려 있다고 보았다. 노동시장, 재화시장 그리고 자본시장은 모델이 가정하는 것처럼 완전무결하지 않다.

예컨대 경제위기로 실업이 생기면 임금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기업이 고용을 늘리면서 실업 문제는 해소된다고 본다. 금융시장은 이자율 하락에 발맞추어 투자처에 자본을 공급한다고 가정한다. 게다가 정교한 방정식 체계를 풀어내기 위해 결정적이고 비현실적인 가정을 도입하지만, 전문가조차 알아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로드릭은 이 모델에서 고용이나 물가, 그리고 성장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제위기를 예측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무리라는 얘기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제예측 모델은 시장의 힘을 여전히 믿는 셈이다.

경제예측 모델의 실패는 학구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시험문제 하나 틀린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진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IMF의 모델에 기초해서 혹독한 재정지출 축소를 감수해야 했다. 사회보장 지출이 줄어들면서 서민들의 삶이 고단해졌다. 각오는 했지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혹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가 회복되지도 않았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경제분석 모델이 재정지출 축소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과소평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IMF가 직접 내놓은 분석이다. 잘못된 분석으로 수십만 명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었다. 만시지탄이지만 딱히 호소할 곳도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세계경제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구조 개혁에 열을 올렸다. 곧 병상에서 일어날 것이니, 이제 다시 병원에 가지 않도록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특히 높았다. 해고도 쉽게 하고, 실업수당이나 연금도 줄이며, 임금도 '유연하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가뜩이나 가계소득이 위축되는 마당에 이런 유연화 대책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가계소득을 더욱 위협한다. 그러면 소비 수요가 줄어들고, 기업도 생산과 투자를 줄인다. 결과적으로 경기회복은 더 어려워진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한발 더 나아가 경제위기가 다시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가 나올 때마다 구조개혁론자들이 내세운 논리는 경제예측 모델에 기반한 '경기회복론'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말라는 것이다. 지난 1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IMF가 똑같은 경제예측을 내놓자, 참석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계속 예측이 틀릴 줄 알았다면, 정책 기조는 바뀌었을 것이라 한탄했다. 역시 만시지탄이었다. 그러는 동안 경제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하고, 최근에는 더 길고 짙어졌다.

경제예측에도 '낮은 지혜'가 필요해

이솝은 원래 '충격적일 정도로' 못생긴 노예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두터운 지식과 밝은 지혜로 신임을 얻어 자유를 얻었고, 마침내 왕의 조언자가 되었다. 비천한 출신 배경 때문에 그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경구는 피하고, 구체적인 일상에 뿌리내린 사례를 통해 지혜를 나누려 했을 것이다. 그가 어설픈 점쟁이를 경계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다. 틀렸으면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그 틀린 말이 내일은 옳을 것이라 몽니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오늘날 여전히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경제모델도 이솝의 '낮은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진실을 말할 때조차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솝이 남긴 지혜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