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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4일 11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5일 14시 12분 KST

"농업 탓은 이제 그만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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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논두렁공동체에서 앉은뱅이밀 농사짓는 양현숙·우동완 씨

"언론에서 배춧값이나 쌀값 때문에 전체 물가가 상승한다고 하면 마음이 아파요. 공산품 가격은 아무리 올라도 떠들지 않으면서, 농사는 날씨가 안 좋아서 수량이 적어 가격이 올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까요.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막아 줘야 하는데 오히려 뭐든지 농업 탓으로 돌려요."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일도 자연스럽게 돼

지난 3월 중순 경남 진주를 거쳐 고성 영현면을 찾아갔다. 가늘게 내리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 오후에 양현숙·우동완 부부와 아들 창호 씨를 만났다. "계절 농사하니까 비 오면 그냥 쉰다"는 양현숙 씨의 말을 듣고,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너른 들판에 연두색 밀 싹이 내리는 비를 자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부부는 언제부터 어떻게 저기 밀처럼 자연에 맞추어 살게 됐을까.

우동완 씨는 일 년 간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논 0.13ha(400평)밖에 없었지만 '고성 농업의 선구자'라고 자부할 만큼 농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산골짜기에서 1981년부터 비닐하우스를 해서 하우스 붐을 일으켰어요. 고성군에서 제일 먼저 멀칭재배 시범포도 했고요."

1983년에는 유달영 박사에게 유기농업을 배워 비닐하우스에서 유기농으로 채소를 길렀을 정도다. 그러면서 부부는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2007년도에 고성군에서 생명환경농업을 시작했어요. 충북 괴산 자연농업생활학교의 조한규 씨한테 유기농업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을 받지 않은 농민들한테는 보조금 등 모든 혜택을 후순위로 주겠다고 할 정도였죠."

그러나 "당시 정부에서 유기농업을 특별히 대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으면서도 반신반의했다"는 게 우동완 씨의 말이다. 군 주도로 진행된 사업의 한계일까? "첫해에는 고성군에서만 900ha에 친환경 농사를 지었지만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490ha 규모"라고 한다.

그러던 중 같은 지역 공룡나라공동체의 김찬모 현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회장으로부터 무농약 재배한 밀을 공급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단다. 그렇게 부부는 2010년 밀 생산자로 한살림에 들어왔고, 2012년 논두렁공동체로 분화했다. 논두렁공동체는 현재 총 일곱 농가,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부가 제일 젊은 축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그래도 공동체가 있어 든든하다.

"우리 공동체에서 농업기술적인 문제는 내가 다 해결하고, 모든 작업은 공동으로 해요. 공동체 식구들이 산에 가서 약재를 채취해 오면 내가 그걸로 병충해 방제하는 친환경 약제나 비료를 만들지요. 우리 안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자연스럽게 돼요."

우동완 씨가 은근히 공동체 자랑을 한다.

논두렁공동체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월례회를 철저히 한다는 것. 예비 생산자로 처음 월례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하필 한창 농번기인 10월이라 다 바쁘다 해서 우동완 씨 혼자 갔단다.

"그때 김찬모 회장이 예비 생산자 다 취소한다 해서 내가 우리 공동체 회원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다 오라고 전화했어요. 그러자 회의장소가 우리 동네에서 40분 거리인데 회원들이 50분 만에 다 왔어요. 그러고는 그 다음 달 월례회부터 100% 참석하지요."

그때 '한살림 정신'을 제대로 배워 아직까지도 논두렁공동체의 월례회는 한 사람도 빠진 적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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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숙 씨는 마을 이장을 하던 아버지와 농촌 청소년 운동을 하던 언니들을 보고 "농업에 로망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농업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이유도 다 마음속에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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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밀은 이렇게 생겼다. 조경밀, 금강밀, 고소밀 등 일반적으로 많이 재배되는 다른 품종에 비해 면적당 생산량이 66~77% 정도 적어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세 번 땅 갈고 볏짚 썰어 넣고

부부는 현재 논 약 13ha(4만 평)에 벼농사를 짓고, 그중 약 10ha(3만 평)에 밀을 심는다. 모두 유기농이다. 볍씨를 뿌리거나 모판을 논에 옮기는 등 일이 몰릴 때는 공동체 식구들이나 이웃들과 함께 일하지만 그 외에는 부부와 창호 씨가 농사일을 나누어 한다.

"셋이서 하다 보니까 다른 집보다 일이 훨씬 빠르죠."

부부가 기르는 밀은 모두 토박이씨앗인 앉은뱅이밀. 보통 1m까지 자라는 다른 밀에 비해 50~80㎝만 자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당도가 높고 구수하고 차지며, 병충해에 강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앉은뱅이밀만 농사지었어요. 처음에는 300평도 안되게 심었는데, 수확한 걸 우리가 다 먹을 수 없어서 빻아서 나눠 주고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밀가루가 맛있다고 보내 달라고 하면서 심는 양이 많아졌어요."

벼를 수확한 후 10월 말 밀을 심는다. 밀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겨울철 제초작업. 씨 뿌리기 전에 논을 두 번 갈고, 씨 뿌리고 나서 한 번 더 갈아 총 세 번 땅을 갈면 잡풀이 많이 없어진다.

"일모작만 하면 잡풀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2~3년에 한 번씩 돌려짓기해요. 또 경험이 있으니까 씨를 많이 뿌려 밀이 잡풀을 이기게 하지요."

수확은 6월 10~20일경에 한다. 부부는 지금도 농사법을 계속 바꾸어 가며 실험한다.

"볏짚을 썰어 넣은 땅과 볏짚을 다 거둬들인 땅에서 밀이 자라는 상황을 비교해 보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비가 와 수분을 머금은 땅에 볏짚을 썰어 넣으니 괜찮았어요. 볏짚이 수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듯해요. 올 6월에 수확해 봐야 검증되겠죠."

지난해 논두렁공동체에서 한살림에 공급한 앉은뱅이밀은 40t가량으로 그중 15t 정도는 이분도통밀쌀로, 나머지는 통밀가루로 나갔다. "수요의 20%도 채 안 되었을 것"이라며, 더 많은 지역에서 앉은뱅이밀이 재배되면 좋겠다. 지난해 논두렁공동체에서 다른 한살림 공동체로 나간 씨앗용 앉은뱅이밀이 1.2t정도. 부부가 일 년 농사에 쓰는 것과 같은 양으로, 제대로만 재배되면 2017년부터는 공급량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양현숙 씨는 앉은뱅이밀이 일반 밀과 맛에서 분명히 차이 난다고 한다. 찰기가 많아서 수제비·부침개·칼국수 등을 하면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가까운 먹을거리로 수입 밀에 비해 더 안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장점에도 우리밀이 소비가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수확량은 많이 적고 이삭 크기도 작아 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제분이 잘 되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앉은뱅이밀은 양이 적다 보니 작은 제분기로 제분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입자 크기나 색이 일정하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지금은 껍질이 있고 거친 통밀가루가 건강에 더 좋다면서 찾는 사람이 늘었지만 큰 제분공장에서 일정하게 생산되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앉은뱅이밀은 수량이 적어서 그것만 따로 제분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수매만 잘된다면 제분공장까지 만들어서 조합원들에게 앉은뱅이밀을 안정되게 공급하고 싶다"는 게 부부의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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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맏아들이자 든든한 후계자인 창호 씨와 밀밭에 섰다. 창호 씨는 한살림 청년생산자 연수에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농사짓기 잘했다"고 느낀단다. 아무리 농업 기계화가 된다 해도 사람 손이 가야 하는 부분이 있고, 앞으로 이는 젊은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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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생선 뼈를 식초에 담가 질소 비료를 만드는 등 천연재료를 이용해 유기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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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계피·당귀 등 한약재와 마늘·때죽 등으로 작물에 주는 한방 영양제와 친환경 약제를 만들어 쓴다. 이렇게 전시해 놓으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쉽다.

"농업으로 뭔가 해 보고 싶어요"

울산 울주 출신인 양현숙 씨와 고성이 고향인 우동완 씨는 '4-H' 활동을 하며 만났다. 4-H는 1914년 농업구조와 농촌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운동으로 명석한 머리[Head], 충성스런 마음[Heart], 부지런한 손[Hands] 및 건강한 몸[Health]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1947년 시작되어 작물 재배, 선진영농기술 교육, 생활환경 보전 등을 교육했다. 특히 다른 청소년운동과는 달리 농업, 환경,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고 농업과 농촌을 이끌 전문농업인의 자질을 배양하기 위한 청소년 교육 운동이다. 한국에서는 9~29살 청소년이 가입할 수 있으며, 학교와 지역 조직이 있다. 두 사람은 3년 정도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했는데, 당시 양현숙 씨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언젠가는 농촌에서 살겠다고 생각했다고.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건 농업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농업에 로망이 있었고, 농업으로 뭔가 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새로운 것 배우기를 좋아하는 게 부부의 공통점. 그래서 천연농약 전문가 교육도 같이 받았다. 농업기술은 혼자보다 두 사람이 같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부 중 혼자만 교육을 받으면 교육을 안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배우자가 '밖에 나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같이 배우면 각자 판단력이 생기고 공통점도 갖게 돼 무슨 문제든 해결하기 쉬워요."

우동완 씨의 말에 양현숙 씨가 덧붙인다.

"똑같은 걸 봐도 각자 시각이 다르잖아요? 같이 배우면 한 사람이 못 본 부분을 다른 사람이 보완해 줄 수 있어요."

양현숙 씨는 지역 농업 기술센터와 기술원에서 생활개선회·가공연구회 활동도 한다. 모여서 공부도 하고 강의도 듣고 봉사활동도 한단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나이가 들수록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정체되지 않을 수 있어요."

얼마 전에는 약초관련 공부도 시작했다.

"조합원이 방문하면 나물을 한 가지 해 먹어도 뭔가 설명을 해 주려고요. 또 사방에 널린 게 약재인데 몰라서 못 먹으면 안 되니까요."

이런저런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려면 집을 비울 때가 많을 터.

"전에는 남편이 자기가 나가는 일이 더 많으면서 내가 나가면 싫어하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세월도 흐르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서로 터치를 안 해요. 오히려 가야 되는데 안 가면 '왜 안 가나? 늦지 않나?' 하며 서로 챙겨 줘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필요했지요."

시간이 부부에게만 흐른 건 아니다. 부부의 삼형제 중 맏아들인 창호 씨는 어느덧 스물다섯 살 청년이 되어 부모와 함께 농사짓는다. 다른 친구들이 앞으로의 길을 찾는 때에 그는 이미 농업에서 길을 찾았단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농업의 명장이 되고, 외국의 선진 농업을 견학하며 부족한 부분을 더 배우는 것"이라고.

"부모님은 제가 궁금한 걸 가장 쉽고 빠르고 편하게 묻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배예요. 하지만 의견이 충돌할 때면 가장 나쁜 선배지요."

오랫동안 쌓아 온 경험으로 농사짓는 부모와 새로운 걸 도입해 보고 싶은 아들은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건강한 갈등'일 것이다.

양현숙 씨는 과거에 비해 한국 농업이 더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비관적인 면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막연하게 농업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전과는 달리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한다.

"언젠가는 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라이스파크'를 만들고 싶어요. 체험도 하고 밥도 먹고 숙박도 하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무엇을 할지 늘 구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와 있더라고요."

가끔씩 지칠 때마다 양현숙 씨는 자신이 기른 걸 믿고 먹어 주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그가 농사지을 맛이 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조합원들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껴요. 그래서 더 정성껏 농사를 짓지요.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게 해 주어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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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숙 씨는 수확할 때가, 우동완 씨는 씨앗을 뿌려서 새싹이 날 때 제일 재밌단다. "그래도 역시 수확할 때가 더 좋죠. 무른 바닥보다 마른 바닥에서 일하는 게 더 쉽기도 하고요." 왠지 양현숙 씨의 말에 더 일리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