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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8일 12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18일 14시 12분 KST

유기농산물로 음식 만들기 24년

유기농산물로 장을 본다고 하면, 여러 가지 편견들이 많다. 먼저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지 않느냐 묻는다. 대부분 주부들이 대형마트에서 대용량 포장 물품을 구입한다. 싸고 맛있는 것이 장보는 기준이다. 제철도 원산지도 무시하고, 재배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수확 후 농약처리를 했는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시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또 유기농산물로만 밥상을 차린다면 건강강박증이 있거나 까다롭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신경 쓰며 사냐고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오히려 내 장보기 방법이 더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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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생협 소비자로 '책임소비'하며 함께 살기

스물세 살 쌍둥이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유기농산물로 밥을 차렸으니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한 지 벌써 스물네 해째다. 지난 2014년에는 집에서 열심히 공급받아서 먹었다고 한살림고양파주생협에서 상까지 받았다. 한눈팔지 않고 늘 신뢰하는 마음으로 생협 물품으로 밥상을 차렸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또 유기농 땅 한 평이라도 더 살리고 농부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데 힘을 보탠 것 같아 뿌듯하다.

글 박연주(한살림 조합원)

못 먹을 것, 돈 주고 사 먹는다?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 건강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여 나누어 먹으려고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이웃을 알게 되어 한살림을 만났다. 당시 모두 13평 주공아파트에 사는 서민들이었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못해도, 비싼 옷을 사 입히지 못해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유기농산물을 먹었다.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 경제 수준이 문제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유기농산물을 만난 날이 기억난다. 늘 때깔 좋고 흠집 없고 크고 반듯한 채소와 과일을 고르던 습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작고 칙칙하고, 검은 반점이 있는 사과와 벌레 먹은 채소를 보고 "못 먹을 것을 돈 주고 사 먹는다"고 친정 엄마한테 혼난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 유기농업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당연하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여 품질도 좋은 유기농산물을 공급받는 호사를 누린다. 선배 조합원들이 유기농 농부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참고 기다리며 먹어 준 덕이기에 참으로 감사하다.

부자만 먹는다고? 유난을 떤다고?

유기농산물로 장을 본다고 하면, 여러 가지 편견들이 많다. 먼저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지 않느냐 묻는다. 대부분 주부들이 대형마트에서 대용량 포장 물품을 구입한다. 싸고 맛있는 것이 장보는 기준이다. 제철도 원산지도 무시하고, 재배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수확 후 농약처리를 했는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시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또 유기농산물로만 밥상을 차린다면 건강강박증이 있거나 까다롭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신경 쓰며 사냐고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오히려 내 장보기 방법이 더 단순하다. 중국산과 국산 구분법을 몰라도 되고, 농약을 얼마나 쳤는지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가격 비교하느라 예민할 필요도 없어 장보기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얼마나 편한지. 그저 유기농업 생산자를 믿고 지지하며 꾸준히 물품을 주문하면 된다. 하나라도 싸게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는 주부의 눈에는 비싸게 사 먹는 헤픈 주부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낄 곳과 아끼면 안 되는 곳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값 주고 농산물을 사면 바보?

생산지에 가서야 알았다. 직접 논에서 피를 뽑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밭에서 김매기를 해 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주말농장 5평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꽃밭과 잡초밭으로 만들고 나니 새삼 유기농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수와도 같은 유기농산물을 계속 먹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농촌이 고령화되고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하니 우리 아이들도 유기농 밥상을 차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농민들은 풍년이어도 흉년이어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원가도 건지지 못해 밭을 갈아엎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이 매년 들린다. 이럴 때면 농촌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가 제값에 계약하여, 농민의 생활도 책임지고 소비자의 생명도 책임지며,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한살림이 있어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사는 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잊을 만하면 식품 사고가 터지고 농약검출, 유전자조작, 환경호르몬 등 먹을거리 안전 관련 뉴스가 나온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하다. 가끔 TV에서 어떤 먹을거리가 효험이 있다고 하면 생협 매장이 붐비지만 잠시뿐이다. 시중 배춧값이 금값일 때 생협 배춧값은 여전하다. 한살림은 일 년 농사를 짓기 전, 미리 약정한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안심하고 유기농업에 전념하고 생활이 가능하도록 농사 원가를 보장하기 위해, 계획 생산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책이다.

아무 때나 어떤 식재료든 사시사철 제공하는 마트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생협이 불편하다. 특정 농산물이 나오는 시기가 있고, 집으로 배달받으려니 정해진 요일에 주문하고 받는 습관이 안 들어 금방 마트로 회귀한다. 알뜰하게 주문하는 법, 강렬한 양념을 안 쓰고 맛을 내는 법이 막막하다면 주위 조합원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활동하면서 좋은 이웃도 사귀고 농부를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도 얻는다. 마트에서 장보며 살았다면 경험할 수 없을 것들을 나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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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들은 몇 가정이 공동체를 구성해 유기농 물품을 함께 공급 받았다. 물품이 오면 한자리에 모여 나누면서 요리해 먹는 방법,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등도 나누었다. 1994년에 서울 방학3동우성2차 우리공동체(위), 화곡동 북어대가리공동체(아래) 등에서 공동체 공급을 받고 있는 사진이다.

흉년일 때도, 풍년일 때도 한결같아야!

점점 가공식품 소비가 늘어나지만 농산물 소비는 늘지 않아 유기농 농민들 생활이 생각만큼 나아지지 않았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가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유기농부들이 이제는 농촌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진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지금 유기농 생산자가 되고 싶어하는 농부들이 많다는데 생산된 걸 소비자들이 모두 다 책임지고 소비할 수 없어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예전보다 조합원이 많이 늘었다지만 더 늘어나야 한다. 물론 소비자의 권리만 주장하는 이가 아닌 책임소비를 할 줄 아는 조합원이 많아져야 한다.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유기농업을 하고 유기농 밥상을 차리는 목적은 아니다. 농촌이 재해를 입어 상태가 좋지 않거나, 또는 풍년이라 시중 가격이 헐값이라 유기농산물이 안 팔릴 때 한 개씩 더 사서 이웃과 나눠 먹거나 선물한다. 소비자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하는 것뿐인데 며칠 새에 완전 소비가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낸 저력에 감탄하곤 한다. 농민과 소비자가 가족이며 공동운명체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물론 여전히 유기농산물을 대할 때 흠집도 없고 크기도 크고 맛도 좋고 가격까지 싼 불가능한 조건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하느님과 동업한다"는 어느 농부의 말씀처럼 기후 영향을 받는 게 농사인데, 소비자는 비가 오건 가뭄이 들건 태풍이 불건 완벽한 유기농산물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공기와 물이 오염된 세상에서 완벽한 유기농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럴수록 유기농업을 살려야 공기와 물과 땅의 오염을 막아낼 수 있다. 유기농을 돈벌이로만 접근하는 농부와 유통 상인만 있고, 인증마크로만 유기농을 인식하고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다고 큰소리치는 소비자들만 있다면 유기농은 제 갈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디 생산자는 그저 유기농업을 하는 직업인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소비자는 '손님은 왕'이라는 자세로 내 돈 주고 품질 좋은 유기농 물품을 사 먹는다는 단순 소비자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