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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08일 14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9월 19일 07시 42분 KST

나는 어떻게 과학자이면서 종교인(특히 기독교인)일 수 있는가?

물리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얻어진 지구과학적의 지식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같은 물리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발견된 전자기장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전화 인터넷 등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으며 생물학의 근간인 진화를 무시하면서 같은 생물학적인 방법론으로 얻어진 현대의학을 누리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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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대학원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지원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학생의 손에는 성경 구절이 적혀있는 컵이 들려져 있었고 현재 기독교계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학교는 공립학교이고 공립학교의 교원은 종교에 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그저 과학자를 지망하는 학생이 독실한 기독교인도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호기심 정도를 가졌습니다. 왜 우리 과에 박사과정을 지원했느냐는 저의 질문에 이 학생은 서슴없이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과 그 신념이 어떻게 하나님이 지은 세계를 지켜나가는 관리자의 역할을 해야 할 사명감에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였습니다. 과학을 특히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는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은 흔히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고 저 역시 (적어도 직장에서는) 조용히 암약하고 있는 종교인(기독교인)으로서 참 용감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과연 이 친구는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환경변화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감히 인간이 망칠 수는 없다며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과학적인 증거를 부정해버리는 보수적인 (혹은 비이성적인) 기독교인들의 주장 (혹은 억지)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인간에 의한 환경변화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솔직히 저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고 기본적인 과학적인 발견들-진화, 우주의 나이, 심지어는 인간에 의한 전지구적인 환경변화-을 무시하는 일부 동료 기독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이 학생은 서슴없이 우리가 몸에 안 좋은 음식이나 마약, 술, 담배로 건강을 해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잊으면 언제든 지구환경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과학자의 집단인 National Academy of Science의 회원을 상대로 1998년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설문에 응답한 과학자 (약 50%) 중 오직 7% 만이 인격적인 신 (Personal belief in God)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는 1914년의 조사결과 (27.7%)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떨어진 수치이며 종교와 과학의 골이 점점 깊어져 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교 특히 기독교와 과학의 대립은 주로 생명과학의 문제-예를 들면 진화의 문제라든가 유전자 조작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흔히 생각하지만,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지구와 우주의 근원에 대한 문제 또한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이러한 대립이 최근의 일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직업적인 과학자라는 직종이 등장한 이후 (르네상스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진짜 그러한 발언이 있었는지 진위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 재판을 받고 나서 했다는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이미 1600년대 초반부터 과학과 종교 간의 깊은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관한 서적은 갈릴레오 사후 76년이 지난 1718년에야 교황청의 해금되었고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갈릴레이에 대한 교회의 탄압에 유감을 표시하게 됩니다. 지질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니콜라스 스테노 (Nicolas Steno, 1638-1686)는 관찰을 통한 새로운 발견을 중요시하면서 층서학, 고생물학, 광물학 등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연구 업적은 모든 지질학 개론책에 소개될 정도로 지질학 혹은 지구과학의 시발점이 된 기초연구를 한 사람입니다. 스테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일단 성경의 연대를 바탕으로 대략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 정도가 되는 것으로 산정하였습니다. 이 이후 바로 이 스테노의 신념인 "관찰을 통한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토대로 지질학의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이제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테노 이후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해의 발전을 송두리째 무시한 채 아직도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지지 않고 있으며 이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특히 창세기에 나온 성경 구절을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반이성적인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과학적인 발견들이 자신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를 하면서 어떻게 똑같은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얻은 문명의 이기들을 누리고 사는지 의아합니다. 물리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얻어진 지구과학적의 지식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같은 물리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발견된 전자기장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전화 인터넷 등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으며 생물학의 근간인 진화를 무시하면서 같은 생물학적인 방법론으로 얻어진 현대의학을 누리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제가 처음 던진 질문 나는 어떻게 과학자이면서 과학적인 발견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떳떳이 흘러나오는 교회에서 인격적인 신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해 보려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과학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려는 학문입니다. 현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자연의 법칙들(예를 들면 열역학의 법칙들)을 정의하고 이를 이용하여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자연법칙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설명을 할 수 있는 메커니즘도 과학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살면서 한번쯤은 가져보는 현상의 존재 이유 혹은 인생의 존재 이유를 종교로 설명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이러한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무신론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종교의 신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가지의 다른 영역에 대해 한 영역에 다른 영역의 설명 잣대를 들고 설쳐대는 아이러니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