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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9일 0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0일 14시 12분 KST

네가 나를 떠나면

곧 8살이 되는 나의 반려묘, 묘 선생님(실명 정먼지, 페르시안 친칠라, 수컷)은 매우 점잖고 멋진 고양이다. 내겐 아름다운 피조물로 보이지만 객관적으로 귀여운 고양이는 아니다. 묘 선생님의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면 다들 인상파라거나 근엄하다고 댓글을 단다. 그 누구도 귀엽다거나 장모종 특유의 우아함을 갖추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는 사람들 말대로 퉁명스러운 외모의 '묘저씨'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같이 사는 인간들에게 상냥하지도 않다. 딸이 다가가면 가차 없이 '하악질' 하며 꾸짖고 솜방망이 펀치를 날리기도 한다. 그의 총애를 받는 내가 '어린 인간에게 잘 해줘라' 간식 주며 청탁해도 그는 사무적인 야옹 몇 마디를 던지고 사라질 뿐이다. 참으로 야속한 고양이라는 것이 우리 가족 내의 평가이다. 작고 귀엽지도 않은데다 싹싹하지도 않고 긴 털을 여기저기 흩날리며 가족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고양이를 사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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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거나 자는 척하며 나의 삶을 오래 관찰해왔다. 기막힌 보디랭귀지로 내게 조언도 하고 가끔은 농담도 한다. 만사태평 뒹굴뒹굴하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똥 누는 내게 화장실 문을 개방하라 요구하며 "기쁨은 나누어야 두 배!" 검은 옷에 흰 털을 잔뜩 묻히고는 "나는 흔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그의 기세 좋은 뻔뻔함과 퉁명스러움에 홀딱 반했다. 아무도 없는 집, 고독함이 느껴질 즘이면 살짝 내 곁에 다가와 얼굴을 비비기도 한다. 나만 아는 친밀함, 운수 대통한 날의 교감은 제법 끈끈하다. 임신과 이혼, 헤어질 뻔한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누구 줘라' 무책임한 유기, 파양을 강요받아도 나는 우리 관계를 버릴 수 없었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그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중년의 털북숭이를 버리라니, 어디로, 그리고 누구에게? 그는 내가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닌 가족이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친구가 아닌가.

묘 선생님이 그렇게 각별한 존재이다 보니 나는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괜한 슬픔에 휩싸인다. "내 나이보다 네 나이가 안 믿겨. 나는 인중이 길어 장수할 것 같은데 너는 어때?" 알 수 없는 묘상을 살피며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린다. 고양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인간보다 짧다는 것 깨달을 때마다 가슴이 조여온다. 세계 최장수 고양이를 검색하며 비결이 뭔가 고민한다. 그러다 가만히 내 고양이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떠나면 나는 예전 같지 않을 거야."

오 년 전 북새통 문고에 갔다가 '혼자 가야 해'(조원희 글·그림)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점에 서서 엉엉 울었다. 쓸쓸한 제목, 죽은 개를 껴안은 여자가 그려진 표지는 '이 책은 슬퍼요' 암시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감아요." 담담하게 시작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맑고 향기로운 영혼이 된 강아지다. "슬퍼하지 마, 난 그냥 강을 건너가는 거야." 함께했던 인간에게 전하는 마지막 위로의 말. 투명한 색조의 삽화들, 차분한 어조의 문장이 흐르는 그림책은 진한 울림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내 고양이가 떠난다면... 혼자처럼 느껴지는 것은 누구일까. 어제 그 책을 다시 펼쳐보고는 묘 선생님을 불러 쓰다듬은 뒤 꼭 끌어안았다. "8살 되어도 넌 아직 젊지. 우리 헤어지지 말자, 진짜 오래 살아야 해."

2016년 기네스 월드 레코드 위원회가 발표한 세계 최장수 고양이의 이름은 '스쿠터'. 나이는 '30세'라고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