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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31일 06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31일 07시 04분 KST

결혼이라는 이름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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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상상'이라는 단어를 잘 쓴다. 대중적으로 옛날부터 있어온 것처럼 알려진 수많은 근대적 개념·제도들은, 사실 근대인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다. 가장 흔한 사례라면 '상상의 공동체'로 명명되는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이다. 아득한 고대부터 있어온 집단적 소속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조선시대 사대부와 노비들이 서로를 같은 민족에 속한 동등한 구성원이라고 정말로 여겼을까? 사실 조선인에 의해서 '민족'이라는 네이션(nation)의 일본식 번역어가 최초로 쓰인 것도 1898년, 즉 불과 120년 전의 일이다. '민족'뿐만 아니고 '가족'·'사회' 등도 마찬가지다.

'민족'·'사회'와 함께 근대의 도래를 상징했던 또 하나의 신조어는 '연애' 내지 '자유연애'였다. 부모나 문중이 자녀의 혼약을 맺어주었던 전통사회 상류층의 관습과 달리 젊은 남녀들이 배우자를 스스로 찾고, 얼마간의 교제 기간을 거쳐 자유롭게 혼인을 맺을 수 있다는 상상은 매력적이며 요즘 말로는 '쿨'했다.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할 줄 아는 독립적인 개인이 결국 독립 국가, 강한 민족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다소 민족주의적, 자강론적 상상도 거기에 깃들어 있었다. 문제는 딱 하나였다.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포함돼 있을 것 같은 '민족'도 알고 보면 적대적인 모순 관계의 지주와 소작농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듯이, '자유'연애도 전혀 사회경제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미 192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흔히 지적했듯이 말이 '자유연애'지 실제로는 유산·유식층이 유유상종하여 끼리끼리 사귀는 게 일반적이었다. '자유연애'는 계급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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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뿐인가? 어느 사회에서나 결혼·동거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예컨대 미국에서 결혼율이 지난 반세기 동안 거의 2배 가까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는, 평균 남성 소득에 비해 여성의 소득이 대폭 상승하여 지금 약 93% 정도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만큼 "꼭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도 바뀐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하층에서 결혼이 아닌 사실혼이 더 흔한 이유도, 중산층의 평균 결혼 연령이 20대 후반으로 늦어진 것도 경제적 문제와 직결된다. 남자가 실직당하거나 감옥에 갈 경우 결혼이 아닌 동거를 청산하여 다른 파트너를 찾는 것이 여성들한테는 더 쉬운 선택이며,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되면 중산층이 이미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첫 직장을 얻은 뒤이기에 직장과 소득이 확실한 파트너를 선택하는 게 이 나이 때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달콤한 '자유연애' 밑바닥에 각종의 매우 현실적인 고려들이 깔려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로서는 불가피한 사정일 뿐이다.

'결혼시장' 같은 용어는 사회학자들이 사회 분석의 차원에서 흔히 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이 상품화되듯이, 남녀의 결혼이 흔히 내포하는 경제적 부양과 가사노동의 교환도 엄격히 이야기하면 '거래' 관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으로 바라본 현실은 그렇다 하더라도, 정작 다수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결혼 내지 동거 관계의 당사자들은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사랑' 같은 개인적 감정을 공동생활의 전제조건으로 보려고 한다. 상품 거래 위주의 무정한 세계에서는 그래도 가족이라도 좀 달랐으면 하는 희망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극히 개인적인 내밀한 감정이 없는 경우에는 인생의 각종 난관들을 같이 통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인 남녀가 사적인 공간을 같이 쓰면서 함께 지내는 것은 실은 ―서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는 이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제적으로 여성에게 독립성이 모자라고 사회가 '이혼녀'를 심히 차별했던 옛날에야 서로 같이 있기가 싫어져도 억지로라도 같이 살았지만, 여성의 학력과 직업능력이 이제 남성과 다를 게 없는 오늘날에는 러시아같이 비교적 보수적인 사회에서도 평균 혼인 지속 기간은 약 10년에 불과하다. 한국의 평균 혼인 지속 기간은 14년이 되지만, 그만큼 사교육을 포함해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두 성인의 공동생활이 쉽지 않다는 건, 러시아든 한국이든 마찬가지다. 한데 사랑을 강하게 느끼지 않는 이상 '지옥의 문'이 될 수 있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가면 갈수록 '자유연애'보다 '자유구매'를 더 방불케 된다.

"(키르기스스탄 여성들은) 중앙아시아 여성 중 가장 많이 몽골리안의 피가 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생김새가 한국 여성과 같은 사람도 많다. 60%는 완전 몽골리안이고, 20%는 백인과 몽골리안의 혼혈이다. 10%는 완전 러시아 백인이고 10%는 이슬람과 몽골리안의 혼혈이다. 학력 수준은 높은 편이며 영어는 다들 중간 정도의 수준이며 2세의 외모나 교육 때문에 국제결혼을 망설이는 분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사회규범은 남성지배적 사회이며 상호 의존적 대가족 제도이고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연장자나 성직자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 국민성은 보수적이며 수동적이고 야망이 적으며 자족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성격에다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고 항상 좋은 말씨로서 가능한 한 대결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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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19세기 초반 미국 남부 노예시장의 노예매매 광고문을 연상케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생산, 유통된 것이다. 한 국제결혼 중개 업체의 사이트에서 키르기스스탄 여성들의 '특징'을 고객인 한국인 남성들에게 설명(내지 광고)하는 문단이다. 이런 유의 텍스트들을 보면 보수적인 남성들의 욕망을 여실히 읽어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즉, 백인이 멋이 있으니까 약간의 백인 피가 섞여 있으면 좋긴 해도 아이 외모 때문에 골치 아플 수도 있어서 일단 주로 몽골리안 혈통에 속하는 게 맞는 것이고, 학력과 영어 구사력이 높을수록 좋긴 하지만 똑똑하면서도 남편과 시어머니, 웃어른들을 깍듯이 모시는 거야말로 부덕(婦德) 중 최고라는 말일 것이다.

지독한 가부장주의의 악취를 맡은 듯한 느낌이지만, 여기에서 이 가부장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혼을 '구매'로 여기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사고다. 부국 한국의 남성은 돈과 한국 여권을 얻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빈국 키르기스스탄 여성의 성과 출산능력, 그리고 가사노동에다가 '친절'과 같은 감정노동까지도 산다. '결혼시장'은 이제 사회학적인 추상적 개념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매매혼이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국제적 장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광고문들이 암시하는 남녀관계의 형태는, 상품으로 취급되는 여성에게 가정생활의 행복은커녕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해줄 수 있을까?

국제적 매매혼뿐인가? 내국인 사이의 결혼도 '자유연애'의 이상과 거의 무관한 경제적 거래로 이루어지는 것이 이제 다반사다. 한국에는 2500개 이상의 결혼정보업체들이 현재 성업 중이며, 한국만큼 결혼업체를 통해서 결혼이 많이 이루어지는 사회도 드물다. 업체에서 커플 매칭을 할 때 재력과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하는) 학력, 그리고 (부모와 자신의 재력과 학력이 얻어준) 직장 등은 남성의 주된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결국 결혼은 남자의 (광의의) 사회경제적 자본과 여성의 외모·상징자본 사이의 교환행위쯤 될 것이다.

이 교환행위 자체도 결코 싸지 않다. 주택자금을 포함해서 평균 결혼비용은 2억원을 넘는다.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돈' 위주로 이루어지는 결합은 행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행복지수가 세계적으로 하위권(143개국 중 118위)에 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내밀한 사생활까지 '돈'에 잠식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은 아닐까? 가정이 돈이 아닌 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야말로 사람 살 만한 세상일 것이다. '자유연애'는 근대적 환상이라 해도, '돈'을 넘어 '사랑'에 근거를 두는 더불어살이가 가능해질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