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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1일 06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1일 07시 06분 KST

레즈비언이냐고요? 아니면 트랜스젠더냐고요?

복잡한 정체성을 외워주는 일(봉레오)

대개 사람들은 모든 인간은 남자 아니면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으면 혼란스러워 한다. 트랜스젠더던 비트랜스젠더던 2개의 성중 하나를 양자택일 해야 비로소 '이해'를 한다. 허나 나는 여성과 남성, 두 가지 젠더로 정체화하는 바이젠더다. 그리고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낄 수 있는 팬로맨틱이고,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섹슈얼이다. 이 세 가지 정체성을 깨닫고,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복잡했지만, 이를 어머니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에 비할 바는 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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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연애는 여자로 보이는 사람들하고 해 왔고, 앞으로도 할 텐데,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안 돼?"

어머니의 말씀은 솔깃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넘어갈까, 고민한 적이 수십 번이었고, 수백 번이었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이해해 줄지도 불투명한데, 이해하기도 어려운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시작도 전에 지치는 일이었고, 반복하다 보면 의문과 자괴감만 늘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번거로운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내가 하는 이 고민을 두고, 그래도 어머니께서 성소수자인 것 자체는 인정해 주시니 배부른 고민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인정했지만, 완벽하게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내 정체성을 다른 것으로 돌려서 이해하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내 정체성을 받아들여 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우리 어머니처럼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지만, 내가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는 미약하게나마 거부 반응을 보이시는 경우라면. 더더욱.

나는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부터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것과, 유별나게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렵 내 세상에 성소수자란 (미디어의 영향으로 그나마)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전부였다.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한다거나, 남자와 여자 둘 다라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간혹 내가 여성인가?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동안 나는 나를 남성으로 여겼다. 물론,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혼나거나, 혹은 나를 키워 주고 계셨던 외할머니께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께는 말씀 드렸다. 그때쯤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사이에 비밀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적어도 나 혼자만이라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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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서 말했듯, 어머니가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완전히 순탄하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가슴 절제 수술을 원한다든지, 여성과 연애하는 걸 밝혔을 때 보인 반응은 부정, 혹은 무시였다. 어머니는 분명 껄끄러움을 내비치셨고, 그건 무시당하고, 부정당한 나만 기억하는 상처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종종, 자주, 물어뜯고 죽일 듯이 싸우더라도, 결국은 영원한 내 편이고, 내가 영원히 편이 되어 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인 어머니가 나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불성실했던 수업 태도도, 까칠한 성격도, 고등학교 자퇴도 받아들여 준 어머니가,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다른 것과 달리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 요소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면, 너무 서러울 것 같았다. 내가 세상에 홀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낀다면, 아마 이 일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기왕 효자(혹은 효녀)가 못 될 것이라면, 내 속이라도 제대로 채우는 불효자식이 되자.

이기적으로 굴자는 선택을 하고, 첫 번째로 결정한 것은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내 정체성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성별정체성과 성적 끌림, 로맨틱 끌림, 세상의 수많은 젠더에 대해 내가 아는 선에서나마 설명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번거로워했고, 피곤해했고, 간혹 짜증을 내기도 하고, 가끔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가끔 등장하는 질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게 관심을 가져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날, 어머니께서 내 정체성에 대해 소개할 일이 있었다.

"저희 아이는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이에요."

그 순간,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이해가지 않는다고 해도, 텍스트로나마 나를 외워 주었다.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내게 들여 주었고, 그 글자들이 들어갈 만큼, 마음을 열어 주었다. 아직 싸울 일이 한참이었지만, 그리고 내 성소수자성과 별개로 우리에게는 걱정할 일이 한아름이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자신감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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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10년 전 중학교 시절에 꺼냈다가 거절당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가슴 절제 수술과 자궁 적출 수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때와 지금, 어머니의 반응은 달랐다. 어머니는 "비용을 물어보고는, 필요하다면 해야지." 라고 대답하셨다. 다 나중에 갚으라는 웃음기 어린 농담(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과 함께. 어머니는 내가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여성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셨고, 어째서 그 수술이 필요한지도 조금은 알게 되셨다. 인정하기 싫지만,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은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며칠 전, 수술 부위를 감고 있는 압박 붕대를 푼 모습을 어머니께서 처음 보셨다.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만족하냐."

"응."

대화는 간결했다. 나는 이 간결한 대화에서 속도 없이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몸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왜 그 몸을 원하는지 어머니가 알고 있었고, 또한 받아들여 주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내 정체성을 인정해 주고 나면 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매일 틈만 나면, 생각만 나면 울음이 난다.

수술을 받은 당일에도 그랬다. 마취 덜 풀려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입으로, 나는 발음을 쥐어 짜내듯 말했다. 고마워, 엄마. 딱히 그 순간만의 마음은 아니다. 예전부터 늘 고마울 수밖에 없던 사람이,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 준다는 건 내게 꿈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꿈 같은 이야기가 실현되었으니, 틈만 나면 눈물이 나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고마울 수밖에.

나도 내가 뭐 그렇게 쑥쓰럽고,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신경쓰여서 고맙다는 말도 울 때나 간신히 하는 걸까 싶지만, 이런 데서 솔직하지 못하니 불효자식 타이틀을 떼지 못하나 보다. 그래도 고맙고, 또 고맙다. 나를 받아들여 주고, 길고 긴 내 다른 이름을 외워 준 어머니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