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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1일 06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31일 14시 12분 KST

'무임승차'하는 '불법' 시민?┃이주민 혐오

연합뉴스

[팟캐스트] '무임승차'하는 '불법' 시민? ━ 이주민 혐오

이달 초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초코바를 먹고 있는 모습이 한 언론사에 의해 포착됐다. 이날은 여야 지도부의 새해 예산안과 관련한 쟁점 합의가 늦어지며 9시간이나 개회가 지연됐다. 이 의원의 행동은 그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맥락이 제거된 채 포착된 이 의원의 모습에 무차별적인 비난이 곧바로 쏟아졌다. 댓글들의 내용은 엇비슷했다. '법'도 못 지키는 이 의원은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지다.

그리고 2주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 역시 화제가 됐다.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하며 함께한 아프리카계 유학생에게 "연탄 색과 얼굴색이 똑같다"며 농담을 던진 것이다. 헌정 최초로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해 낸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부적절했다. 김 대표는 곧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친근함을 표한다는 것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다문화 사회'라는 단어가 익숙한 때다. 그러나 이주민에 대한 배타적 시선은 이처럼 쉽게 발견된다. '혐오'를 주제로 시리즈 제작을 해온 팟캐스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는 '노조 혐오'와 '여성 혐오'에 이어 '이주민 혐오'를 마지막 주제로 다루기로 했다. 물론 이주민에 대한 배타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에게도 나름의 근거는 있을 터다. '불법 시민', '범죄 시민', '무임승차 시민' 등.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회 제도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는, 특정 이주민 집단만의 도덕적 문제일까.

사실 한국에서 이주민의 등장은 정부의 제도적 유입과 함께 시작됐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이주민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산업연수생' 제도는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주도한 이주 장려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주민에 대한 담론에서 제도는 종종 지워진다. 그리고 이주민이라는 개인화된 대상만 남는다. 이번 화에서는 한국 내 이주민의 역사를 되돌아봤다.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가 출연자로 나섰다. 박 교수는 <소수자와 한국사회>, <인권과 소수자 이야기> 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한국 사회 내 인종주의와 이주민 문제에 대해 학술연구를 활발히 해왔다.

박 교수는 이주민, 그중에서도 노동자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때를 91년도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제도'(이하 해투 연수생)로 꼽는다. 1980~90년대 초반은 한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다. 일은 넘쳐나는데 일손은 부족했다. 이 제도는 해외에 공장을 가진 한국 기업이 외국 인력을 국내에서 훈련시킨 뒤 다시 해외 공장에 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훈련 기간에는 국내에서 외국 인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은 단순기능직에 종사하지 못했다.

이후 1994년에는 '산업연수생제도'가 본격적으로 정착됐다. 개발도상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그들의 노동력과 우리의 기술을 공유하겠다는 명목이었다. 박 교수는 "해투 연수생 제도 이후 작은 기업도 해외 노동력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도입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문제는 산업연수생이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노동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했고, 일하다 사고를 당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산업연수생은 저임금을 비롯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일터로 도망갔다. 미등록 노동자, 즉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방관하고 묵인했다. 그사이에 미등록 노동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결국, 정부는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해외 인력을 연수생이 아니라 노동자로 도입하는 제도였다. 그로부터 3년 뒤 2007년, 산업연수생제도는 자연스레 폐지되지만, 국내 체류 외국인은 이미 100만을 넘어섰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이주 노동자는 불법체류와 합법체류를 합쳐 39만 명이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누가 와서 일해도 문제가 없던 시절은 끝났다. 자연스레 이주 노동자는 국내 노동자의 경쟁자가 돼버렸다.

그 사이에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적 시선은 더 깊어졌다. 첫 번째는 '세금은 안내면서 복지혜택만 받는다'는 이른바 '무임승차론'이다. 그러나 그들도 세금을 낸다. 심지어 이주 노동자가 내는 소득세는 점점 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인이 신고한 근로소득세는 2007년 2조 23억 원에서 2013년 4조 6926억 원으로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과세 대상도 1만 1,965명에서 4만 970명으로 크게 늘었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옷을 사 입는다. 이때 붙는 10%의 부가세 역시 그들이 내는 세금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모두 기업체에서 부과한다.

박 교수는 이주민에게 화살을 돌리며 반(反)이주민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부를 향해 화살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주 노동자는 함께 싸워야 할 파트너라 하며 미국의 사례를 든다. 미국은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로 제조업이 튼튼한 국가다. 한때는 산업 국가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였고 노동 운동도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10%대에 불과하다. 왜 이런 단절이 벌어진 것일까. 노조가 백인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흑인들은 조합원으로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노조가 임금협상을 한다고 하자. 파업의 목적은 고용주에게 '나의 노동의 가치를 알아달라'는 것인데, 백인이 작업장에서 사라지니 여성과 흑인이 그 자리를 메웠다. 고용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노조 입장에서는 여성도 흑인도 모두 노조에 가입시키는 것이 고용주를 압박하는 더 효과적인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노조를 약화시켰다. 흑인으로서는 자신을 적대하는, 백인 중심의 노조를 좋아할 리 없었다.

박 교수는 "독일이 통일됐을 때, 서독의 노동자들이 동독의 노동자들에게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지급하라 외친 것은 서독 노동자들이 착해서도, 동독 출신의 노동자들이 예뻐서도 아니었다"며 "그들은 동독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 서독 노동자들이 설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즉, 이주민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악화되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도 함께 나빠진다. 노동 시장에서 둘이 경쟁하면 임금은 낮아지고, 근로 환경도 열악해지는 셈이다.

특히나 국내의 박 교수는 한국의 이주민 혐오가 미국의 인종 차별과 다른 점으로 '경제적 차별'을 들었다. 단순히 인종적인 차별로 국내의 이주민 혐오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국내 이주 노동자의 출신 국가는 대체로 아시아에 한정된다.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인종이 아닌 셈이다. 예를 들어 몽골인의 경우에는 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없을 때도 많다. 결국 이주민에 대한 괄시는 이주민이 살던 국가의 경제적 수준에 대한 괄시와도 연결돼 있다.

굳이 타 인종이 아니더라도 빈곤층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분양세대가 임대세대의 아이들이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아 논란이 일었다('임대세대 어린이는 놀이터 사용 금지' 논란, SBS, 2014.10.28). 이주민 혐오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가 인종 개념과 접합된 결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이토록 복잡한 이주민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http://www.podbbang.com/ch/9418)

글 | 정치발전소 방송팀 이우연, 조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