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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3일 10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3일 14시 12분 KST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해방자인가 독재자인가?

ASSOCIATED PRESS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그리스의 편집인 파블로스 치마스의 블로그를 번역한 것입니다.

2002년 11월에 나는 며칠 동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첫 선거 캠페인을 지켜 볼 기회가 있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그와 같은 버스에 탔다. 어디에 가든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 사람들 전체가 광장에 모였다. 가난한 사람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여성들이 모여 관중이 잔뜩 모였다. 어디에 가든 똑같은 열정, 눈물, 같은 압도적인 감정이 보였다. 에르도안은 가장 작은 마을에서 1974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아리스토텔루스 광장에서의 카라만리스, 1981년 신타그마 광장에서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이후 나로선 본 적이 없었던 대단한 열기를 이끌었다(주: 두 사람 모두 그리스 전 총리. 글쓴이는 그리스인임). 굉장히 종교적이고 가난했던 터키는, 아직도 머뭇거리고 겁에 질려 있던 터키는 그를 해방자로 환영했다. 1950년대에 야당 출신 최초로 총리가 된 아드난 멘데레스를 환영했던 것처럼 말이다. 멘데레스는 무려 57%의 지지율로 세 번이나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권력을 잃고 교수형 당했다.

이스탄불의 진보적인 사람들, 지식인들, 나이든 좌파들, 쿠데타 때의 수감자들은 조금 더 우려하는 자세로 에르도안을 대했다. 일부는 그의 진보적 성향 뒤에 터키를 보수적인 수니파 토후국으로 바꿀 이슬람주의적 의도가 숨어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일부는 그의 얼굴에서 딥 스테이트(주: 터키 정계와 군부의 반민주주의 성향이 짙은 영향력이 큰 조직)를 꺾고 마침내 터키를 정상적인 민주 국가로 만들 마지막 기회를 보았다.

에르도안이 선거에서 승리한 뒤, 나는 그가 그때도 살고 있던 오래된 집에서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카라치 동해안의 가난한 지역의 집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만데레스의 운명을 따라가지 않을까 두렵지 않습니까?"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멘데레스는 총리가 된 다음에 감옥에 갔지만, 나는 먼저 감옥에 간 다음 총리가 됐어요."

그 이후, 선출된 총리와 딥 스테이트 간의 전쟁이 커져갔고, 내 진보적인 친구들은 의심을 버렸다. 이제 그들은 공개적으로 에르도안을 지지했다. 그의 지지율이 34%에서 47%로 올랐던 2007년 선거에서는 그들 다수가 그에게 투표하기까지 했다. 에르도안은 내 진보적인 친구들에게도 마침내 장군들을 병영에 가둬놓고, 길었던 군부의 영향력을 마칠 수 있는 해방자로 보였다. 한 유명한 교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삶은 당신들이 그리스에서 1974년에 살아냈던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정치적 전환을 경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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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스캔들, 보스포러스의 궁궐들, 반대자들의 기소, 탁심 광장과 젊은 시위자들과의 폭력적 대립, 언론인 수백 명의 투옥, 자신을 모욕하는 자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 페이스북에 감히 신성모독적이거나 자극적인 포스트를 올리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사냥하고 경찰을 보내는 인터넷 알바들. 그가 해방자라고 믿었던 사람들 일부는 그를 이제 독재자로 보고 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이제 터키의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은 6월 선거에서 자신의 소속당이 3분의 2를 득표해야 헌법을 바꾸고 자신이 권력을 전부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유권자들은 그에게 정부를 구성할 다수표조차 주지 않았다.

11월 1일에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에르도안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해방자로서 거둔 승리가 아니다. 그는 필요악에 더 가깝다.

어제 이스탄불의 현명한 친구가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늘 그를 지지할 것이다. 그게 최소 40%다. 제1야당인 케말리스트 CHP는 25%까지가 한계다. 나머지는 CHP를 싫어하고, CHP 자체는 변화할 능력이 없다. 쿠르드 HDP는 의회 재진입에 성공했다. 터키가 지난 몇 달 간 겪었던 폭력과 테러를 생각하면 이건 성공적인 거지만, 세력은 줄어들었다. 에르도안의 AKP가 다수표를 얻은 이유는 국수주의적 MHP 회색 늑대들의 상당한 표를 너희들은 감당할 수 없다며 겁을 주어 쫓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래봤자 쿠르드족이 힘든 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원하던 것, 즉 권력을 얻었다. 그러나 한때 그를 따라다니던 신뢰와 희망은 이제 없다."

그리고 그리스는? 이런 전개가 그리스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2002년 11월, 얄로바에서 선거 전 유세를 한 뒤 우리는 배를 타고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나는 그와 10분 동안 짧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무슨 질문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고려한 적 없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당신은 당선되면 키프로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2년 전인 2000년에 에제비트 총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키프로스 문제란 건 없다. 1974년에 해결되었다!"(주: 키프로스는 1960년에 독립했다.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갈등을 겪다가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1964년에 U.N.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다. 1974년에 그리스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터키 군이 개입했다. 1983년 북키프로스는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터키가 인정하였으나 U.N.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남키프로스만을 대표국으로 인정한다. 현재 분단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총리 후보인 에르도안에게서 어떤 답변을 기대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답에 놀랐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키프로스 문제에 있어 벨기에 모델에 기반한 해결책을 지지한다." 에르도안이 터키의 해방자였던, 에게해의 평화와 키프로스 문제 해결을 지지하고 유럽 통합을 위해 싸우던 그의 첫 임기 때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나는 13년이 지난 2015년에, 선거에 또 한 번 승리한 그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나는 너무 낙관적이다...

허핑턴포스트GR의 Erdoğan: Liberator or Dictato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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