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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0일 11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0일 14시 12분 KST

박찬욱의 막다른 길

<박쥐> 출연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 2009

<복수는 나의 것> 출연 송강호, 배두나, 신하균 | 2002

<올드보이> 출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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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에게 두 번째 칸 영화제 트로피를 안겨 준 <박쥐>는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박찬욱의 최고작으로 꼽는 <복수는 나의 것> 이후 7년 만에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흡혈귀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이나 해괴한 유머가 가득하다는 부분에서 이미 큰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이들이 관심을 지니고 있는 부분은 바로 송강호와 김옥빈이 벌이는 베드신에 있었다.

조실부모하고 세 들어 살던 집에 수양딸처럼 얹혀살던 한 소녀 태주(김옥빈)는 성장해 약간 모자라는 주인집 아들과 자연스럽게 결혼한다. 하지만 철모르고 능력 없는 남편과 자신을 인형 겸 몸종으로만 생각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태주는 자신의 집을 지옥처럼 느낀다. 그곳에 "500명 중에서 딱 한 명 살아남았다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제 상현(송강호)이 찾아온다.

사제는 흡혈귀, 그리고 이제 막 종교에서 벗어나 쾌락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스폰지와 같은 존재다. 사제복을 벗은 그와 태주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2층에서는 마작판이 벌어진 가운데 문 닫은 1층 한복집에서 태주와 상현은 정사를 나눈다.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라며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태주는 상의를 모두 벗어버리고 가슴을 가린 채 상현의 몸 위에 오른다. 그리고 가린 손을 치워버리며 둘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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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본격적인 베드신이 나오는 영화는 <박쥐> 이전에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 영화의 베드신 모두 여성 상위의 체위가 등장한다는 것과 이 모든 베드신이 영화 용어인 '포인트 오브 노 리턴'과 관련 있다는 점이다.

<박쥐>에서의 첫 베드신은 주인공인 사제 상현이 죄악의 세계로 빠져들어 더 이상 종교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과 배두나가 벌이는 베드신은 유괴한 아이가 잘못되면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이야기한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과 강혜정의 베드신은 최후의 반전을 충격적으로 만드는 힘을 지녔으며 역시 둘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박쥐>에서 3번 이상 등장하는 베드신들은 그런 '극적 기능' 외에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격정적이며 또한 실감나는 성적 묘사를 지니고 있다. 박찬욱 감독 본인은 '<쌍화점>이 나온 마당에 야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출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긴 했지만 <박쥐>의 베드신은 송강호와 김옥빈의 눈부신 연기와 박찬욱의 신선한 장면 구성 덕분에 한국 영화 성애 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냈다.

* 이 글은 필자의 전자책 '한국영화 사상 가장 에로틱한 순간 51' (페이퍼크레인, 2015)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