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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2일 05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12일 14시 12분 KST

못 만들어서 더 무섭게 웃긴다

얼마 전 포털 사이트의 '개봉 예정 영화' 목록에 희한한 포스터가 떴다. 경악하는 표정으로 추정되는 한 중년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가운데 도무지 21세기의 어느날 만들어진 포스터라고 보기는 어려운 글씨체로 제목이 '그려져' 있었다. 띄어쓰기조차 되지 않은 '무서운집'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예고편이 등장하자 더욱 큰 화제가 됐다. 1980년대 비디오용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질과 형편없는 녹음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네킹 귀신'이라는 시대착오적 아이템과 그 짧은 예고편에서조차 '발연기'라는 것이 드러나는 주연 배우의 연기 실력 때문이었다. 이 예고편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불가사의할 정도로 못 찍은 영화가 등장했다'고 외쳤다. 그렇게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일부 영화에 관심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영화 <무서운집>은 지난 7월30일 서울의 한 단관 극장에서 개봉됐다. 아이피티브이 직행용 영화들이 그렇듯이 단 1회 상영만이 예정돼 있었다. 첫 상영 때 27명밖에 되지 않았던 유료 관객들은 호러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박장대소를 하며 이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극장에서 나와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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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서운집>

물론 이 영화가 '알고 보니 잘 찍은 영화'라는 찬사는 아니었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연기'를 하는 주연 배우가 진짜로 책을 소리내 읽는 장면이 나온다던가, 샌드위치를 먹거나 잠을 자거나 혹은 귀신에 놀라 기절해 누워 있는 장면을 커트하지 않고 괜히 롱테이크로 보여준다거나 하는, 수많은 기묘한 부분들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초반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괴작 에로 영화를 감독한 바 있는 노령의 연출자 양병간 감독이 촬영과 조명, 편집은 물론 미술과 광고디자인까지 모두 혼자 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199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그 이전 세대의 감독이 현재의 영화계에 살아남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화의 제작과 촬영의 구조 그 자체가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인데, 이 노장 감독은 그것을 혈혈단신으로 극복해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독립영화'라는 명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결국 입소문 덕분에 재상영을 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까지 전국 관객은 총 169명이다. 훌륭한 영화만 재상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더 룸> 같은 경우는 처참할 정도로 떨어지는 완성도 때문에 화제가 되어 미국 심야 재상영 영화관의 단골 작품이 된 바 있다. 잘 만든 영화는 언제나 존경심과 애정을 동시에 받는다. 못 만든 영화가 존경받는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애정을 모으는 경우는 있다. 할리우드 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힌 에드 우드의 전기 영화를 팀 버튼이 만든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영화는 모여서 봐야 훨씬 더 재미있다. 앞으로 엉뚱하고 어이없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 때문이라도 당분간 재상영이 되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