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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7일 10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7일 14시 12분 KST

황정민의 패기 넘치던 시절 '로드무비' '바람난 가족'

<로드무비> 감독 김인식 | 출연 황정민, 정찬, 서린 | 2002

<바람난 가족> 감독 임상수 | 출연 문소리, 황정민, 윤여정, 김인문 | 2003

영화는 시작됐지만 아직 어두운 화면, 뜨거운 신음소리가 스피커를 울린다. 화면이 조금 밝아지면 어두운 방 안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단단한 근육질, 멋을 부렸다기 보다는 생활 속에서 햇빛을 받아 만들어진 듯한 선탠, 어둡지만 콘트라스트 강한 화면 속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격렬한 신음 소리 속에서 여자의 교성을 찾아보려 애써도 소용없다. 두 사람 모두 남자이기 때문이다.

2002년 개봉한 <로드무비>는 이렇게 과격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국 최초의 본격 동성 정사 신이다. 역시 동성 정사 신이 화제가 됐던 영화들, <쌍화점> 보다는 무려 6년이나 먼저 만들어졌고 <브로크백 마운틴> 보다도 3년이 빠른 작품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동성 정사 신의 주인공이 <국제시장>의 천만 배우 황정민이라는 점이다.

<로드무비>의 황정민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대식 역을 맡고 있다. 그 앞에 증권회사 직원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남자 석원(정찬)이 나타난다. 대식이 남자 화장실에서 벌이는 두 번째 정사는 더 과격하다. 변기를 도구삼아 체위를 바꿔가며 벌이는 정사가 점프 컷으로 묘사된다. 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상상만 하던 남성 간의 정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 이상의 충격을 던져준다. 

그 이전까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등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황정민은 이 쉽지 않은 역할을 잘 소화해내면서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주연 배우로 올라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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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연작에서 남성과의 베드신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황정민은 두 번째 주연작에서 여성을 만난다. 그것도 두 명이나 만난다. <바람난 가족>에서 황정민은 변호사로 출연해 무용가 출신의 아내(문소리)와 사진작가(백정림) 두 여자 사이를 오간다.

황정민이 이 '야한' 영화 속에서 보여준 베드신들은 한마디로 연기적 완성도가 대단하다. 자신과의 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와의 베드신은 무기력해 보인다. 조금 더 움직여줄 것을 애원하고 있는 아내의 반응을 무시하고 그저 일종의 생산적인 활동을 끝낸 것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잘 연기했다.

그러나 애인인 사진작가와의 정사신은 완전히 다르다. 침대가 아닌 온돌방의 두터운 포단 위에서 애인의 얼굴에 상대가 원하는 대로 침을 뱉어가며 정열적으로 벌이는 정사를 통해 외피와 내면이 다른 변호사 캐릭터를 선명하게 구현해냈다. 열린 미닫이문 너머로 훔쳐보는 듯 느껴지는 이 장면은 관객들의 관음증을 자극한다.

<로드무비>와 <바람난 가족>은 그렇게 <국제시장> 이후 국민배우가 되어 버린 황정민의 '파이팅' 넘치던 시절, 빛나는 연기들을 담아냈다.

* 이 글은 필자의 전자책 '한국영화 사상 가장 에로틱한 순간 51' (페이퍼크레인, 2015)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