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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4일 10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16일 14시 12분 KST

사랑한다고?

요즘 리얼 다큐라나 뭐라나 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괜히 어르신들을 붙들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종용을 한다. 당사자는 좀 우물쭈물하다가 터무니없이 큰소리로 "마누라 사랑혀!" 이런 식이다. 보고 있는 내가 진땀이 다 난다. 왜 저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가족 간에 사랑한다는 말이 난무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한집에서 일상적으로 부대끼고 살 동안에 사랑한다는 말을 할 시츄에이션이 얼마나 될까?

Shutterstock / Irina Mozharova

우리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가면서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 습관이 들지를 않아서 아침밥을 먹고 나면 보자기에다 교과서와 공책을 몇 권 싸가지고 슬그머니 학교로 가버렸다. 어머니는 나 외에도 돌봐야 하는 어린 자식들이 많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아이를 지켜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를 들어 보면 내 또래의 아이가 등장하는 경우엔 반드시 학교 갈 때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어머니가 "오냐 잘 다녀오너라" 하는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부터 나는 이것을 실천에 옮겨 보려고 해 봤지만 쑥스러워서 절대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라. 그래서 아마도 상급학교에 갈 때까지 아무런 멘트 없이 각자 알아서 학교로 가곤 했었다. 이때의 사람들은 투박하고 요즘 눈으로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어서 이런 인사를 하는 것이 어쩐지 간살스럽게 느껴졌다 할까? 집에 돌아왔을 때도 그냥 열려있는 대문으로 쓱 들어와서 대청마루에 책보따리를 턱 내려 놓으면 그만이다. 마침 어머니가 대청마루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하면 "학교 갔다 오나?" "예" 이 정도로 끝난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마련해 놓은 고구마나 감자 아니면 옥수수 따위의 간식을 좀 먹고 동네로 나가서 아이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엄마들이 "ㅇㅇ야 밥 먹으러 오너라" 하고 소리치면 한두 명씩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같은 놀이를 하던 친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시절에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나 안 하나 같은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뭔가를 잘못해서 혼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어떨 때는 우리 어머니가 계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형제가 많다 보니 서로 싸우기라도 하면 어머니가 빗자루를 거꾸로 쥐고 우리에게 쫓아 오셨고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아나야 했다. 붙잡혔다가는 한 대라도 맞게 될 테니까.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나이 차가 20살밖에 안 나니까 내가 열 살 때 어머니는 서른 살이었다. 서른 살의 어머니는 이제 갓 낳은 동생까지 해서 여섯 명의 자녀를 둔 것이다. 그러니 일상이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젊은 혈기는 있고 해결해야 할 일들은 지천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누구에게 살갑게 굴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랐어도 우리는 누구도 어긋나거나 어머니의 사랑이 모자라서 어쨌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다 잘살아 왔다.

요즘 리얼 다큐라나 뭐라나 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괜히 어르신들을 붙들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종용을 한다. 당사자는 좀 우물쭈물하다가 터무니없이 큰소리로 "마누라 사랑혀!" 이런 식이다. 보고 있는 내가 진땀이 다 난다. 왜 저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가족 간에 사랑한다는 말이 난무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한집에서 일상적으로 부대끼고 살 동안에 사랑한다는 말을 할 시츄에이션이 얼마나 될까? 군에 간 아들이나 공부하러 멀리간 자식이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럴듯한 일이고 흐뭇할 것 같기도 한데, 그 외에는 비일상적이고 남녀 간의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나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TV 에 나와서 닭살 행각을 벌이던 연예인 부부가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했을 때 배신감을 느끼듯이, 주로 미국 영화들을 보면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고 사는 것 같은데 이혼은 더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나? 더군다나 자식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와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이제 툭하면 "사랑해"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 모양이다.

하트가 뿅뿅 찍힌 문자를 보내고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사랑해 딸, 사랑해 아들, 사랑합니다 고갱님! 까지. 이제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면 어째 뭐가 빠진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 점점 "사랑해"는 그 본질보다는 하트 문양 정도로만 남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을 해본다.

옛날 어른들은 자식을 사랑하더라도 그걸 밖으로 내품을 하면 못쓴다고 하셨다. 자식은 좀 엄하게 키워야 반듯하게 자라는 거라고 생각하셨고 또 그렇게 키우셨다. 부모가 만만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기실은 기 싸움인 경우도 생기는데 아이들이 부모의 내심을 다 파악하면 무슨 수로 통제를 하겠는가.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경향이고 다른 부모들에 좀 미치지 못했다 싶으면 죄책감을 갖는 것 같다. 그 동안 보고 들은 경험에 의하면 너무 얼러 키운 자식은 부모에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당연히 자기에게 잘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바만 많은 것이다. 농담이지만 인터넷에서 "내 꿈은 재벌 2세인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라는 글을 보고 뿜었다는 거 아니냐.

어제 무슨 프로그램에서인가 MC가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보신 적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질문 받은 사람이 우물쭈물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표정으로 "아직... "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살고 있다가 별 이유도 없이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일이 그렇게 자주 발생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말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아버지가 "그래 고맙구나 아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기보단 헉, 내가 곧 죽을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의심이 들 것 같단 말이지.

별 이유는 없지만,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