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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4일 11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4일 14시 12분 KST

대학의 죽음과 절망사회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를 옹호하는 기관이라면, 이 땅에서 대학은 죽었다. 진리는 실용에 자리를 빼앗겼고, 정의는 실리에 무릎을 꿇었다.

부산대 고현철 교수의 비극적인 죽음은 한국 대학의 죽음을 대유(代喩)한다. 그는 시인의 품성, 순수한 영혼을 지녔기에 세상의 풍파에 무뎌진 가슴과 흐려진 눈을 가진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을 보았다. "대학은 죽었다"는 진실 말이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가 시장터의 군중에게 "신의 죽음"을 고지했듯이, 고 교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몽매한 우리에게 대학이 죽었음을 깨우쳐주었다.

대학을 죽인 것은 이 땅의 권력이다. 그들은 진리와 정의를 존재 이유로 삼는 대학을 두려워했기에 줄곧 대학을 억눌러왔고, 마침내 대학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특히 역사적·정치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보수 세력은 언제나 대학을 눈엣가시로, 탄압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 것은 탄압의 방식뿐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고문, 폭행, 감시, 투옥, 파면 등 노골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자행했다면, '민주화'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재정지원, 행정지도 등을 무기로 부드러운 '제도적 폭력'을 행사해왔다. 거기에 자본권력은 수월성, 경쟁력, 효율성, 소비자주의 등 기업논리를 앞세워 대학의 이념을 무력화시켰다. 국립대의 경우는 주로 국가권력이 행정적·재정적 수단을 동원해서, 사립대의 경우는 자본권력이 돈의 위력을 무기로 대학을 지배해온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대학은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완전히 포획되어 자신의 이념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사회 비판적인 학문은 고사당하고, 진보적인 담론은 사라져가고 있다. 마케팅 용어와 시장논리가 대학담론을 지배하는 가운데 진리, 정의, 자유, 평등, 연대 등 대학의 이념은 숨을 거두고 있다.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이 대학의 숨통을 죄는 의도는 명백하다. 보수의 영구적 집권과 자본의 총체적 지배를 위해 이들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인 대학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한국 민주주의의 선봉장 구실을 해온 대학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대학은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늘 선두에 섰고, 노동운동을 이론화, 조직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탁하여 대학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지속적인 탄압의 결과 지금 한국 대학은 사회의 여러 조직 중에서 가장 후진적인 조직으로 전락했다. 초등학교 반장도 선거로 뽑는 시대에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총장 하나 민주적으로 선출할 수 없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이었던 대학이 이제 민주주의의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기적과 정치기적을 동시에 이룬 나라지만 우리 국민은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그 절망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절망사회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권력의 부정과 횡포,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싸워온 대학이 무너졌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대학의 폐허에서 절망의 연기가 번져가고 있다.

절망을 절망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대학은 비판을 통해 절망의 원인을 인식시킴으로써 희망을 일깨우는 곳이다. 한국 사회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학이 부활해야 한다. 대학이 진리와 정의의 수호자로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총장 직선제를 통한 대학 자치의 실현은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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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산대에서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교수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