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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6일 05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7일 14시 12분 KST

광장의 촛불, 삶의 현장에서 타올라야

뉴스1

"유럽과 미국은 이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독일의 저명한 주간지 '디 차이트'는 최근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를 수입한 한국이 '원산지'보다 더 모범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아시아에 맞지 않는다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끝났다고도 했다. "평화롭고 질서정연하면서도 강력한"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가 "용기와 열정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방법"을 세상에 알려주었다고 격찬했다. 독일의 권위있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한국의 위대한 촛불축제"를 상세히 타전했다. '뉴욕 타임스' 등 영미 언론의 논조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가 이처럼 '1000만 촛불'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이 '촛불혁명'에 가장 놀란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 안에 이런 엄청난 선의와 용기, 우애와 연대의 정신이 숨어 있었다는 것에 서로 경탄하고, 숨막히는 경쟁과 극단적인 불평등,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이런 고귀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서로 경외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광장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 '동물의 왕국' 같은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 자신감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놀라게 한 '광장민주주의'의 저력을 삶의 현장으로 옮겨 '현장민주주의'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광장의 촛불은 이제 일상의 현장에서도 타올라야 한다.

1000만 촛불의 기적은 한국 민주주의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광장민주주의'가 아직 '현장민주주의'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을 처연하게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광장'에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었지만, 정작 실제 삶이 영위되는 '현장'에서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나 민주적인 제도와 문화가 실행되고 있는가. 광장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듯이, 삶의 현장에서 교장, 총장,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가. 광장민주주의와 현장민주주의는 여전히 비대칭적으로 괴리되어 있다.

광화문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광장민주주의가 현장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천하고, 실현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촛불이 타올라야 한다. 촛불이 나를 변화시키고, 일상을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마침내 국가를 변화시켜야 한다. '내 안의 최순실'을 불태우고, '내 안의 박근혜'를 몰아내야 한다.

우리는 광장에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들의 연합체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하시라도 권위주의와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것이 광장의 촛불이 내 마음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타올라야 하는 이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