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6년 04월 21일 10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2일 14시 12분 KST

'스칼렛 요한슨 로봇'이 던진 화두

2016-04-21-1461214413-9609351-146120412416_20160422.JPG

홍콩의 한 아마추어 로봇전문가가 만든 여성 로봇. 유튜브 갈무리

2016-04-21-1461214457-5310958-146120412429_20160422.JPG

할리우드에서 가장 섹시한 스타 중 하나로 꼽히는 스칼렛 요한슨. 리키 마가 만든 로봇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 스칼렛 요한슨 공식페이스북

사람을 닮은 로봇...호감인가 불쾌감인가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불쾌한 골짜기) 현상이라는 게 있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주장한 이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기계 뭉치에 불과했던 로봇의 모습이 점차 사람과 비슷해지면서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어느 단계부터는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뀐다. 그러다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다시 호감도가 높아진다. 이때 '비슷한 로봇'과 '똑같은 로봇' 사이에서 거부감이 존재하는 단계를 '언캐니 밸리'라고 부른다.

2016-04-21-1461214512-9744649-146120412443_20160422.JPG

일본 모리 박사의 '언캐니 밸리' 그래프. 위키피디아

아마추어가 만든 스칼렛 요한슨 로봇

 홍콩의 한 아마추어 로봇 애호가가 '언캐니 밸리' 현상을 연상시킬 수도 있는 로봇을 만들어 최근 선보였다. 그는 특정인을 거명하지 않은 채 할리우드 스타를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지만, 외신들은 그가 만든 로봇이 할리우드의 대표적 섹시 스타로 통하는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의 얼굴을 닮았다고 일제히 전했다. 리키 마(Ricky Ma)라는 42살 남성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과 로봇에 푹 빠져 지내면서 언젠간 자신이 직접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드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가 만든 여성 로봇은 안드로이드 로봇의 권위자인 일본 이시구로 히로시 같은 프로 전문가들이 제작한 것에 비하면 물론 거칠다. 하지만 제법 다양한 표정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웃을 줄도 알고 윙크도 할 줄 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할 줄도 안다. 팔과 다리도 움직인다. "아름답다"(뷰티풀)는 칭찬을 받으면 "고맙다"(땡큐)고 대꾸할 줄도 안다.

2016-04-21-1461214573-3521790-146120412453_20160422.JPG

로봇 제작자 리키 마가 로봇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독학으로 제작 기술 터득...기술의 민주화?

 그가 만든 여성 로봇은 크게 두 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첫째는 로봇 기술의 대중화 또는 민주화다. 이번 사례는 전문 교육기관에서 장기간에 걸친 학습과 교육 지도를 받아야만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로봇 제작기술이 어느새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다가왔음을 시사해준다. 카네기멜론대의 크리스 앳키슨(Chris Atkeson)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옷 같은 걸 만들 때 사용하는 기술을 이용해 로봇을 만들 수 있다면, 누구나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금속이나 단단한 플라스틱을 다루는 기술에서 섬유, 직물을 다루는 기술로 넘어가는 건 엄청난 변화다. 기술 민주화라는 혁명이 진행중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2016-04-21-1461214602-2610751-146120412466_20160422.JPG

로봇 신체의 70%는 3D 프린팅을 이용해 제작했다.

  마는 오로지 독학으로 로봇 제작에 필요한 로봇공학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했다. 제작도 손수했다. 갈비뼈와 골반을 비롯한 로봇 신체의 70%는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피부는 실리콘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DIY 로봇이다. 이런 식으로 로봇을 만드는 데 든 돈은 5만달러(6천만원). 제작기간은 1년 반이 걸렸다. 대형 승용차 구입에 맞먹는 비용을 지출하고 제작 기간도 오래 걸렸지만, 제작 경험이 쌓여 매뉴얼이 만들어진다면 비용과 제작기간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겨냥한 듯, 그는 로봇 애호가들을 위해 자신의 로봇 제작 경험을 담은 책을 쓸 예정이다.

원하는 여성을 직접 만든다...인격체의 대상화?

 두 번째는 인격체의 대상화 또는 객체화다. 그는 이 로봇에 '마크원'(Mark 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로봇의 외모는 단박에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유명인을 연상시킨다. 이 여성 로봇은 그가 심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을 하고 표정을 짓고 말을 한다. 이는 여성의 눈에 들기 위해 거액의 선물이나 데이트 비용을 지출하는 대신, 그 돈으로 오로지 자신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도록 프로그래밍된 여성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에게 퇴짜를 놓은 여성을 닮은 로봇을 직접 만들어 대리만족을 하며 놀 수도 있다.

 물론 특정인의 외모를 닮은 인형은 지금도 얼마든지 주문제작이 가능하다. 미국의 유명 인형 브랜드 '아메리칸 걸'에서는 자녀들의 실제모습을 빼닮은 복제 인형을 부모들에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마가 만든 로봇은 돌부처 같은 인형이 아니라, 실제처럼 움직이고 웃고 간단한 말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를 닮은 로봇을 만들어 갖고 노는 행위는 괜찮은 걸까? 마는 이 로봇을 자신의 집에서 제작했다. 개인의 전유 공간 내에서 일을 벌인 것이다. 사생활 영역에 사회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로봇이 사적인 공간을 벗어나 공개석상에서 상업적으로 이용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초상권 침해가 문제가 된다. 로봇을 어떻게 프로그래밍했느냐에 따라선 모욕죄가 성립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6-04-21-1461214663-1923525-146120412477_20160422.JPG

1988년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미국의 스타 방송인 바나 화이트를 연상시키는 로봇이 포함돼 피소를 당한 삼성의 광고. 스미소니언닷컴.

 IT 전문매체 <와이어드>에 따르면 유명인사를 닮은 로봇을 등장시켰다가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들이 여럿 있다. 예컨대 삼성은 1990년대 초반에 미국의 스타 방송인 바나 화이트(Vanna White)를 연상시키는 로봇을 등장시킨 광고를 내보냈다가 소송을 당해 패소한 적이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마는 더 많은 로봇을 제작하기 위해 투자자에게 이 시제품을 팔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요한슨이 법적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요한슨은 그동안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숱한 남성들한테 시달리는 유명세를 치렀다. 그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누드사진을 훔쳐간 사이버스토커는 2012년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2016-04-21-1461214691-6356921-146120412492_20160422.JPG

성의 상품화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인격체의 대상화 논란을 일으킨다.

 마가 만든 마크원은 '인격체' 요한슨을 '객체'로 바꿔놓았다. 이는 성의 상품화와는 또다른 차원의 음울하고 비틀어진 미래의 인간관계, 남녀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3D 프린팅 기술 발전으로 요한슨 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에게도 원치 않는 그들의 '소유자'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논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업화하려는 유혹은 결국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리키 마 역시 자신의 경험을 사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킥스타터나 인디고고 등을 통한 펀딩에 나설 생각을 하고 있다.

*곽노필의 미래창을 방문하시면 흥미로운 미래 정보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