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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4일 11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14일 14시 12분 KST

손에 잡히는 미래의 홀로그램

연구진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하트, 별 등과 함께 피터팬 동화 속의 작은 요정 팅커벨을 닮은 입체 이미지도 등장합니다. 아주 작은 이미지여서 확대해서 봐야만 모양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틀림없는 팅커벨 모습입니다. 팅커벨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더 밝은 빛을 냅니다. 사용자가 플라스마를 터치하면 플라스마에서는 충격파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손에 닿으면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손에 압력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영상이 촉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로 만든 팅커벨 입체 영상. digitalnature 연구실.

실체가 없는 홀로그램, 홀로렌즈와는 다르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 중에 스크린이 따로 없는 공중 입체 영상이 있습니다. 실물과 똑같은 입체 영상을 허공에 띄워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SF영화의 새 장을 연 1977년작 <스타워즈>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요. 로봇 R2-D2가 피랍된 레이아 공주의 모습을 3차원 영상으로 띄워 구조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입니다. 2008년 1편이 나온 이후 연작이 이어지고 있는 <아이언맨>에선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허공에 로봇 수트 입체영상을 띄워 놓고 마치 실제 수트와 똑같이 이리저리 확인하고 조작해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스타 트렉>에선 홀로그램들이 아예 사람의 아바타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실제 현실에서 그런 기술을 실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2015년의 생활상을 그려 올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고 있는 1989년작 SF 코믹영화 <백 투 더 퓨처 2>의 한 장면을 볼까요. 2015년 미래에 도착한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상어 홀로그램이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하지만 2015년 세상은 아직 그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 죠스 홀로그램을 보고 화들짝 놀란 마티 맥플라이. 유튜브 화면 갈무리.

현재로선 홀로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3차원 홀로그램이 이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공연 등에 활용되는 홀로그램은 빔 프로젝트에서 쏜 빛을 거울로 반사시켜 45도 각도의 투명 스크린에 투과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홀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착시 현상일 뿐,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홀로그램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입체감을 표현해 줄 수 있는 특정 각도를 유지해줘야 합니다.

소녀시대 공연 홀로그램 동영상

최근에 나온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같은 증강현실 시스템도 SF영화 속의 장면에 가까운 기술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고글 같은 특수한 장치를 통해 들여다 봐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시연 장면. 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영화에서처럼 맨눈으로 어디에서 보든 완벽한 입체 영상을 구현해줄 수 있는 기술은 없을까요? 이런 기술을 구현하는 원리 자체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적외선 레이저로 공기 분자를 이온화해 플라스마(이온화한 기체) 상태를 만든 뒤, 이 플라스마가 빛을 내뿜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플라스마가 공중에서 입체 이미지를 만들어내지요. 문제는 플라스마를 만들어 내려면 기체보다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플라스마가 안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플라스마에 사람 피부가 닿을 경우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개발된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들은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진행자가 안전을 위해 가림막 뒤에서 플라스마 디스플레이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져도 안전한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다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에서는 공기 분자가 3차원 픽셀(화소) 역할을 합니다. 이를 복셀(voxel)이라 부릅니다. 이 복셀은 적외선 레이저를 통해 공기 분자를 이온화한 것으로 푸른빛이 도는 흰색 입자입니다. 그런데 플라스마는 그 성질상 순식간에 반짝하고 사라집니다. 따라서 연속적인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레이저 빔을 아주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쏴주어야 합니다. 움직이는 이미지 효과를 만들어내려면 초당 수만 또는 수십만번씩 빛을 쏘아줘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방출되는 플라스마에는 여전히 많은 에너지가 들어 있습니다. 만약 이런 디스플레이를 휴대하고 다닌다면 화상을 입을 것이 틀림없겠지요? 그런데 최근 일본 연구진이 손으로 만져도 안전한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주인공은 일본 쓰쿠바대학 오치아이 요이치 조교수(응용컴퓨터과학)가 이끄는 디지털 네이처 연구실과 우쓰노미야대학, 나고야기술연구소, 도쿄대 연구진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레이저 펄스(파형)의 폭을 나노초(10억분의 1초) 단위에서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단위로 대폭 줄였습니다. 펨토초 단위의 펄스가 만들어내는 개별 복셀은 피부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져도 안전한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만지면 반응한다, 영상이 촉감을 갖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30~100펨토초 단위의 펄스 폭을 가진 레이저로, 만져도 탈이 없는 입체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하트, 별 등과 함께 피터팬 동화 속의 작은 요정 팅커벨을 닮은 입체 이미지도 등장합니다. 아주 작은 이미지여서 확대해서 봐야만 모양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틀림없는 팅커벨 모습입니다. 팅커벨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더 밝은 빛을 냅니다. 사용자가 플라스마를 터치하면 플라스마에서는 충격파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손에 닿으면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손에 압력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영상이 촉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로 만든 하트 모양. digitalnature 연구실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는 초당 최대 20만 복셀로 매우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직 크기가 매우 작은 게 흠입니다. 이번에 구현한 것은 크기가 최대 1세제곱센티미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듯 이걸 구현하는 데만도 상당히 덩치 큰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SF영화에서 보아왔던 정도의 공중 입체 영상을 실현해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기본 해법을 알아냈으니 성능을 개선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한 공중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장치. digitalnature 연구실.

이 기술을 더욱 다듬으면, SF영화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공중 입체 프로젝터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공중에 떠 있는 이미지를 사용자가 손으로 만지면서 여러가지 조작을 할 수 있는 '3차원 터치 인터페이스'도 가능할 것입니다. 동영상에서도, 손가락을 대면 입체 이미지가 반응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머지 않아 스마트폰이나 손목시계에 쓰일 수 있는 공중 디스플레이 장치를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쓰쿠바대학 디지털 네이처 연구실은 '컴퓨터 장'(computeational field)이라는 알쏭달쏭한 테마를 주요 연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원자와 비트, 실체와 가상의 데이터라는 이분법에 따라 진행해온 지난 20여년의 인터페이스 연구를 벗어나, 물리적 실체와 데이터의 중간물로서 '장'(field)이란 새로운 개념을 세워 이를 정보과학 입장에서 규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군요. 이번 연구도 이런 테마 아래 수행해온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오는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국제 컴퓨터그래픽 전시회 '시그라프 2015'(Siggraph 2015 exhibition)에서도 공개 시연될 예정입니다.

*곽노필의 미래창을 방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