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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2일 10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2일 14시 12분 KST

미래의 슈퍼마켓은 스토리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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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디지털 스크린이 진열대 위에 설치돼 있다. 미래식품관 페이스북에서 인용.

밀라노 엑스포에 등장한 '미래의 슈퍼마켓'

세계박람회(엑스포)는 세계 각국의 산물을 전시하고 새로운 산업기술을 겨루는, 오랜 전통의 국제 박람회다. 1851년 런던에서 맨 처음 열린 이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 아래 열리고 있다. 박람회는 처음엔 주최국의 앞선 기술력을 뽐내는 성격이 짙었다. 증기기관차, 전화기, 자동차, 비행기, 텔레비전, 엘리베이터, 나일론 등 현대 문명을 일군 숱한 발명품들이 이 박람회를 통해 세계에 선을 보였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도 사실은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다. 하지만 요즘엔 행사의 경제적 효과에 더 치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3년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한 대전엑스포, 2012년 바다와 연안을 주제로 한 여수엑스포 등 두 차례 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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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엑스포의 미래식품관 전경. 밀라노엑스포 웹사이트

올해는 패션산업 중심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지난 5월1일부터 '2015 밀라노 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올해는 5년마다 열리는 등록박람회여서 행사기간이 6개월로 긴 편이다. 10월까지 이어지는 밀라노 엑스포의 주제는 식품이다. '지구에 영양을, 생명에 에너지를'(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이란 구호 아래 145개국에서 내놓은 다양한 식품과 관련 기술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먹거리와 관련한 박람회인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볼거리와 체험행사도 많다. 그 가운데 미래식품관(Future Food District)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전시관이 있다. 어떤 곳일까? 미래의 슈퍼마켓을 미리 구경해 보려는 호기심 가득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라티(Carlo Ratti)가 이탈리아 최대 슈퍼마켓 체인 협동조합기업 쿱(COOP)과 공동으로 만든 이 슈퍼마켓은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식료품 소매 방식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엑스포 방문객들은 실제로 이 매장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식료품들을 직접 구입할 수 있다. 식품관을 만든 목적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식품 정보를 제공한다면 소비자들의 식품 구매 행태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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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 위에 로봇과 디지털 스크린이 보인다. 벽에는 큼지막한 쿱 로고도 있다. 엑스포 웹사이트

매장을 압도하는 디지털 스크린과 로봇팔

이 미래 슈퍼마켓의 첫 인상은 좀 낯설다. 우리 눈에 익숙한 식료품 매장과 달리, 대형 디지털 스크린과 로봇이 매장 전체를 압도한다. 유튜브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특히 식품 진열대 위에 설치돼 있는 디지털 스크린이 압권이다. 이 스크린은 바로 아래쪽 진열대에 있는 1500여개의 식료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장치이다. 진열대에 놓인 제품에는 가격표가 달려 있지 않다. 물건을 터치하면 진열대 위에 매달려 있는 스크린에 식품의 가격과 원산지, 영양 성분, 열량, 생산 과정 등에 대한 정보가 뜬다. 번거롭게 이 많은 걸 일일이 쳐다보며 살펴볼 생각이 들까? 일단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헌데 실제 그 내용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밀라노 엑스포를 다녀온 한 국내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제품을 구입할 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니 다 훑어보게 되더라고 전했다.

각각의 진열대 위에 설치된 로봇팔들의 현란한 움직임도 방문객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 만하다. 로봇팔은 빈 자리에 물건을 다시 채워넣거나 종이봉지에 물건을 담는 등의 기능을 척척 해낸다. 2개짜리 팔이 한 세트로 돼 있는 이 로봇은 산업용 로봇 전문업체 ABB의 로봇팔 '유미'(YuMi)다.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산다

미래 식품관의 핵심 컨셉트는 무엇일까? 첨단 기술을 이용한 편리성? 다양한 정보 제공? 자동화? 미 매서추세츠공대(MIT) 교수이이자 이 전시관의 설계자인 건축가 라티의 대답은 '스토리'다. 그는 "모든 식품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들은 이러한 정보들을 단편적으로만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소비자들은 진열대 위에 놓인 식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바로 그 자리에서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구체적 모습을 이 식품관에 구현해 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사과를 구입하고 싶다고 치자. 구입하고 싶은 사과를 만지면 사과 재배지, 사과 생산·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 재배 과정에서 사용한 약품, 그리고 슈퍼마켓에 오기까지의 과정 등을 바로 위에 있는 스크린을 통해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사과를 사는 행위는 단순히 맛있는 과일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과의 라이프 스토리를 사는 행위가 된다. 이런 일련의 식품 사슬 중심엔 사람이 있다. 그는 "엑스포 방문객들에게 사람과 식품의 새로운 소통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이 슈퍼마켓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소통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는 더 투명하고 정직해진다. 이는 미래의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이어지는 튼실한 토대이다.

그는 이 미래형 슈퍼마켓의 영감을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쿠바 출신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소설 <미스터 팔로마>(Mr. Palomar)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 책에서 주인공 팔로마는 파리 치즈가게 안에 있는 자신이 박물관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눈에는 각각의 치즈 뒤에 각기 다른 하늘 아래서 자란 목초지들이 펼쳐져 있다. 팔로마는 가게 안에 진열된 물건의 뒤에서 그것을 탄생시킨 문명의 존재를 보면서, 자신이 루브르박물관에서 느낀 것과 같은 느낌을 체험한다. 라티는 미래의 슈퍼마켓은 모든 제품에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도 팔로마처럼 생각하고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번 프로젝트 책임자인 안드레아 갈란티(ndrea Galanti)는 기술적 관점에서 이 슈퍼마켓을 설명했다. 구글 글래스 같은 성가신 장치 없이도 매끈한 증강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라는 것. 실제로 마켓 안의 스크린은 거울 역할을 겸하고 있어, 매장 풍경과 각종 데이터를 겹쳐서 보여준다. 그는 이 미래형 슈퍼마켓은 어떤 면에서는 전통 시장의 귀환이라고도 설명했다. 전통 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소통을 하면서 거래를 했는데, 미래의 슈퍼마켓이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어느 정도 이런 효과를 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미래형 슈퍼마켓은 언제쯤 우리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전시관 방문객들은 슈퍼마켓 매장을 나가기 직전, 벽에 쓰여 있는 문구에서 그 답을 읽을 수 있다. 거기엔 이런 구절이 쓰여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이 멋진 말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앨런 케이(alan kay)의 유명한 미래 경구이다. 라티 교수는 거기에 한 마디 말을 덧붙인다. "그런 노력은 협업 방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such endeavor should happen in a collaborative way.)라고. 미래의 슈퍼마켓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실현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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