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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3일 07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3일 14시 12분 KST

세상을 바꾸는 평범한 기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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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조명은 석유등불보다 훨씬 밝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기술혁신에는 많은 개발비가 들어가기 일쑤입니다. 첨단기술이 투입되는 만큼 제품을 만드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겠지요. 하지만 발상을 바꾸면 단순한 기술만으로도 얼마든지 첨단기술 못잖은 기능을 발휘하는 제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술은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개도국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목적이 인류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있다면 이는 그 목적에도 잘 부합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적정기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지난해 소개한 말라리아 감염 진단용 '종이현미경'도 그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개도국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단순하지만 착한 기술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전기시설 필요없는 중력조명

첫번째는 전기시설이 필요없는 '중력조명'(GravityLight) 기술입니다. 말 그대로 중력 에너지를 빛으로 바꿔주는 기술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0%에 가까운 13억명 이상이 전기시설이 없어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밤의 불빛을 석유등불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중력조명은 공중에 매달린 주머니가 중력의 힘에 의해 하강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빛으로 바꿔줍니다. 주머니는 모래나 물, 돌 같은 것들로 안을 채워 8~12.5㎏ 무게로 만듭니다. 주머니는 도르래 역할을 하는 발전장치와 로프로 연결돼 있습니다. 줄을 당겨 주머니를 꼭대기까지 올린 줄을 놓으면, 중력의 힘으로 주머니가 서서히 내려오면서 발전장치를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주머니가 한 번 내려올 때마다 약 30분 동안 전등을 켤 수 있다고 합니다. 조명의 밝기는 석유등불보다 밝고, 3단계로 조절도 가능하답니다.

이 간단하면서도 흥미로운 조명기술은 영국의 한 디자인업체 간부인 마틴 리디포드와 짐 리브스가 자선단체 솔리드에이드(SolarAid)의 저비용 LED 조명 개발 캠페인을 보고, 팀을 꾸려 고안해 낸 것입니다. 빌 게이츠도 당시 트위터를 통해 이들의 기술에 대해 "아주 멋진 혁신"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현재 데시와트(Desiwatt)라는 비영리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이 기술의 제품화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값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솔리드에이드의 캠페인 취지인 '5달러 이하'에 비춰볼 때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회사쪽은 초기 구입비가 들기는 하겠지만, 전기값이 전혀 들지 않고 석유구입비도 절약할 수 있으므로 몇주만 지나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담배냄새 못잖게 해롭다는 매캐한 석유냄새를 맡지 않아도 될 뿐더러 온실가스의 주범인 탄소배출도 않아 지구환경 보존에도 기여하니 금상첨화입니다. 현재 현장 시험중이며, 올 하반기에 상용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2013년 <타임>지로부터 '올해의 발명품 25가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전기를 만들어주는 축구공과 줄넘기 줄

두번째는 전기를 만드는 축구공 '소킷'(SOCCKET)입니다. 놀이를 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장치입니다. 소킷볼은 공 안에 발전기가 내장돼 있어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저장해 놓습니다. 공 표면에 플러그가 있어서 필요할 때 전등을 꽂아 쓰면 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애초 2008년 미 하버드대에 다니던 제시카 매튜스와 줄리아 실버맨이라는 2명의 여학생이 수업과제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2011년 이들은 사회적기업 '언차티드 플레이'(Uncharted Play)를 창업했습니다. 전등뿐 아니라 휴대폰이나 선풍기 등 집안 전기용품의 전원으로도 쓸 수 있으니 꽤 실용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오는 4월 매튜스 부모의 나라인 나이지리아에 5만개의 소킷볼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성능을 개선한 소킷2 버전은 1시간 놀이에 전등을 3시간 켤 수 있는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모국의 빈민촌 아이들에게 밝은 빛을 선물할 수 있으니 더욱 뿌듯할 것입니다.

매튜스는 소킷에 이어 전기를 만들어내는 줄넘기 줄 '펄스'(PULSE)도 개발했습니다. 풍차나 자전거 발전기처럼 회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장치입니다. 양쪽 손잡이 안에 모터와 리튬 전지가 있어, 줄넘기를 할 때마다 모터가 돌아가며 전기를 만들어 전지에 저장해놓습니다. 이 줄로 줄넘기를 15분 하면 전등을 2시간 켤 수 있는 전기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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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려서 운반하는 물통

세번째는 바퀴 모양의 물통 '큐드럼'(Q Drum)입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약 7억5천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왕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길어오는 일은 주로 여성들한테 주어집니다. 여성들이 물을 운반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은 머리에 양동이를 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거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가다보면 목과 척추가 다칠 위험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하면서도 쉽게 물을 운반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바퀴 모양의 큐드럼이 이 문제를 해결해줬습니다. 가운데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로프를 맨 뒤 물통을 끌면 쉽게 물을 운반할 수 있습니다. 또 종래 쓰던 양동이는 기껏해야 15리터밖에 담지 못하지만, 큐드럼은 한 번에 50리터까지 운반할 수 있습니다. 헌데 큐드럼은 한 개의 가격 약 8만원이나 되니, 개도국 빈민들이 이 물통을 이용하려면 아무래도 국제구호단체들의 물품 기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몇년 전에 나온 하마물통(Hippo Water Roller)도 있습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원통형 물통인데 양쪽에 손잡이를 달아 힘들이지 않고 물을 운반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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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나지 않는 화덕

네번째는 취사용 청정 화덕입니다. 개도국에서는 나무나 석탄, 동물들의 배설물 등을 연료로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일산화탄소 같은 유독 물질이 배출됩니다. 몸에 해로운 이런 물질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뿐 아니라, 때로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매년 400만명에 이른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유엔의 제안으로 출범한 '안전 취사용 스토브 보급을 위한 국제연맹'(Global Alliance for Clean Cookstoves)'과 협력기업들은 생명을 살리는 청정한 대안제품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기존 연료비 정도의 돈만 들이면 이 깨끗한 화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서 아프리카 클린 에너지에서 만든 '에이스 원'(ACE 1)이 인기도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델입니다. 이 화덕은 가스화 기술을 이용해 연기를 내지 않고 배설물을 연료로 쓸 수 있습니다. 화덕에 쓰이는 배터리는 태양광 패널로 충전합니다. 충전시간은 자연환경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1시간 충전하면 3시간 가량 쓸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여기 소개된 적정기술들은 단지 개도국 서민들에게만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중력조명이나 취사용 청정화덕, 전기를 만드는 축구공 같은 것들은 레저나 여행, 캠핑용으로도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아주 쓸모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활용도가 높고 쓰기도 간편한 '착한 기술'들이 하나둘씩 축적된다면, 환경파괴적 기술들로 채워져 있는 우리의 문명생활도 그만큼 더 깨끗하고 건강해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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