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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3일 07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3일 14시 12분 KST

16조달러, 사상 최대 상속전쟁이 시작된다

빌 게이츠 같은 통 큰 기부는 앞으로 점점 구경하기 어려울 듯하다. 일단 1세대 슈퍼부자들의 올해 기부 규모는 전년과 거의 변함이 없거나(75%) 늘어날 것(22%)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자녀들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세대보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55%). 자녀들은 아버지세대보다 명품 구입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66%). 세계 어디서나 재벌2세들의 행태는 비슷한 모양이다.

Shutterstock / aslysun

런던 최고급 주택가 가운데 하나인 켄싱턴 지역. 위키피디아

순자산 3000만달러 이상 슈퍼부자 17만2850명

세계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는 빈곤구제 활동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자선사업에 수백억달러를 기꺼이 내놓았다. 가치투자의 대부 노릇을 하고 있는 워렌 버핏 등 일부 갑부들은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외쳐댄다. 하지만 부자들의 그런 모습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포장술이나 홍보용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1%에 대한 99%의 시기와 질투 때문일까? 기부 천사보다 더 자주 악덕 부자들의 소식을 접하는 현실에서 이런 대접은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부자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 부자들의 실체를 일부 들여다 볼 수 있는 보고서가 최근 잇따라 나왔다. 하나는 영국의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가 발표한 '2015 부 보고서'(Wealth Report 2015)이다. 컨설팅업체 웰스인사이트의 통계 자료와 전 세계 500여명의 은행가, 자산관리 전문가들에 대한 설문을 기초로 만들었다. 한 사람당 평균 34억달러(약 4조원)의 재산을 관리하는 최상류층 전문 관리자들이 전해주는 그들의 실상이다. 다른 하나는 미 보험사 NFP와 자산컨설팅업체 웰스엑스(Wealth-X)가 함께 발표한 '웰스 엑스-NFP 가족 자산 이전 보고서'이다.

두 보고서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부자들은, 3000만달러(약 330억원)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보고서는 이들에 대해 '초고액 순자산가'(UHNWI=ultra-high-net-worth individuals)라는 이름을 붙였다(여기서는 이들을 그냥 일반적인 지칭으로 슈퍼부자라고 부른다).

2014년 현재 세계 지역별 슈퍼부자 현황.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전체 합치면 20조달러가 훌쩍...하루에 15명씩 증가

이 기준에 따른 세계 최고 슈퍼부자는 2014년말 현재 17만2850명이다(웰스엑스 보고서는 이보다 훨씬 많게 보지만, 여기선 조사 경험이 더 풍부한 나이트 프랭크 통계를 기준으로 함). 상위 1%의 부자들도 넘보지 못할 0.002%의 최상층이다. 이들의 재산을 전부 합치면 20조8천억달러로 추정된다. 미국과 독일의 GDP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1년 사이에 약 5300명이 새롭게 슈퍼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루에 15명꼴로 새로운 슈퍼부자가 탄생하는 셈이다. 웰스엑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슈퍼부자의 64%는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시대를 연 자수성가형이다. 순전히 상속으로 부를 일군 사람은 17%에 불과하다.

80대 슈퍼부자들의 평균 재산은 3억달러다. 40대 이하 부호들의 5배다. 웰스엑스 보고서.

요즘 미국을 제외한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죽을 쑤고 있지만,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80%는 세계 경제와 상관없이 이들의 재산은 올해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자산 증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최고 상류층의 자산 증가는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잠자리에 드는 현실에 비춰볼 때 '부도덕'(moral outrage)한 것이라고 질타한다. 보고서를 토대로 그들이 누구인지 하나씩 뜯어보자.

향후 세계 슈퍼부자들의 상속 재산 규모 전망. 웰스엑스 보고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상속...향후 30년간 16조달러 향방이 정해진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전하는 슈퍼부자들의 가장 큰 현안은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문제(85%)이다. 이어 부유세 증대(81%), 늘어나는 정부 감시(80%)가 그 뒤를 잇는다.

상속이 첫손으로 꼽힌 건 창업 1세대의 다수가 이제 노령화했기 때문이다. 웰스엑스 보고서에 따르면 슈퍼부자들의 평균 나이는 59세이다. 60대가 25%, 70대가 13%, 80대가 6%다. 60대 이상 노인층이 절반에 가깝다. 한국의 삼성, 현대차가 요즘 상속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상속은 당장의 현안이다.

이들이 앞으로 자녀들에게 상속하게 될 재산은 향후 30년간 무려 16조달러에 이른다. 대상자가 9만9000명이나 된다. 보고서는 "여기엔 기부도 포함될 것이며, 그 규모는 3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향후 10년 안에 상속해야 할 자산만도 4조달러를 웃돈다. 1만5800명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이다. 보고서는 "지구촌 사상 최대의 상속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증세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상속을 하려니 세금 부담이 만만찮다. 미리 대비를 해놓지 않으면 재산의 절반은 상속세로 내야 한다. 원리원칙대로 하다간 자신이 쌓아놓은 재산의 기둥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다. 가능한 한 세금을 많이 거둬내려는 당국과 적게 내려는 슈퍼부자들 사이에 치열한 머리 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 같은 통 큰 기부는 앞으로 점점 구경하기 어려울 듯하다. 일단 1세대 슈퍼부자들의 올해 기부 규모는 전년과 거의 변함이 없거나(75%) 늘어날 것(22%)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자녀들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세대보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55%). 자녀들은 아버지세대보다 명품 구입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66%). 세계 어디서나 재벌2세들의 행태는 비슷한 모양이다.

해외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슈퍼부자들의 비율.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해외 이주를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 '세금'

슈퍼부자들은 한 곳에 붙박혀 있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자신에게 더 적합한 조건을 갖춘 곳을 찾는다. 현재 이들의 움직임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러시아와 아시아를 떠나 북미와 유럽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슈퍼부자 10명 중 1명(12%)은 올해 거주지를 옮길 것을 고려하고 있다. 거처를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77%) 문제이다. 역시 부자들에겐 돈을 지키는 게 급선무다. 이어 건강(63%), 사업적 이유(54%), 자녀교육(49%), 안전(47%), 정치적 현안(40%) 순으로 거주지를 옮기려는 이유로 꼽혔다.

러시아 슈퍼부자들이 가장 들썩거리고 있는 중이다. 거주지를 옮기려는 비율이 33%에 이른다. 전체 평균의 약 3배다. 61%는 자식을 해외에 유학 보내려 하고 있다. 이 역시 세계 평균 27%의 2배를 훨씬 웃돈다.

나이트 프랭크의 리암 베일리(Liam Bailey) 글로벌리서치담당 책임자는 "이들은 지난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세금을 둘러싼 논란이 격해지고 있는 것에 크게 민감해졌다"고 말한다. 덧붙여 중국에선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운동이 부자들을 바깥으로 눈 돌리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 부자들에겐 자신의 신변 안전이 해외이주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반면 슈퍼부자들 중에서 지금의 삶에 가장 만족해 하는 그룹은 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뉴기니를 포함한 남태평양제도) 부자들이다. 단지 4%만이 거주지를 옮기고 싶어했다. 이들은 자식을 해외 유학 보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슈퍼부자들의 도시별 분포. citylab.com

런던, 뉴욕 제치고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도시로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지만, 슈퍼부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 런던이다. 전 세계 슈퍼부자의 2.5%인 4364명이 런던에 거처를 두고 있다. 그 다음은 도쿄(3575명), 싱가포르(3227명), 뉴욕(3008명), 홍콩(2690명) 차례다. 서울은 전체의 0.8%인 1356명으로 스위스 취리히(1362명)에 이어 11위이다. 뉴욕은 2013년 조사에선 1위였으나, 이번에 4위로 밀려났다. 불과 2년 사이에 사정이 많이 달라진 셈이다. 4위였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싱가포르는 톱10에 진입하면서 단숨에 '넘버 3'로 올라섰고, 홍콩은 세 단계를 뛰어올랐다. 유럽에선 프랑크푸르트와 파리가 새로이 톱10에 합류했다. 대신 오사카, 베이징, 취리히가 톱10에서 떨어져 나갔다.

영국의 기숙형 귀족학교인 이튼 칼리지. 전세계 부호들이 자녀들을 이곳에 유학시키려 한다. 영국 기숙학교는 제국주의시절 식민지 관리와 상류층들이 자녀들에게 영국의 문화와 전통을 심어주기 위해 도입한 교육 방식이다. 이튼 칼리지 웹사이트.

'세계의 8학군' 런던 기숙학교

슈퍼부자들이 런던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다. 한국의 부자들이 강남 8학군을 형성했듯, 세계의 부자들 사이에선 런던이 8학군 노릇을 하고 있다. 런던의 대표적 귀족학교인 이튼 칼리지는 그 상징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소개된 영국 사립학교협의회 자료를 보면, 2104년말 현재 이튼 칼리지를 비롯한 런던 기숙학교 학생의 32%(6만8453명 중 2만1928명)가 외국유학생이다. 출신국을 보면 홍콩(4704명)이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중국인과 러시아인 학생이 급속히 늘고 있다. 2007년 2345명이었던 중국인 학생은 지난해 4381명으로, 같은 기간 러시아인 학생은 816명에서 2536명으로 급증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들어 런던에 유학 오는 자녀들의 나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보통 중등학교에 진학하는 13살 무렵에 유학을 왔으나, 지금은 7~8세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유학을 오는 아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당 기준으로 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 기준으로는 스위스의 제네바가 슈퍼부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1위다. 슈퍼부자가 10만명당 144명꼴로 있다. 2위도 스위스의 취리히다. 두 도시는 부자들의 사금고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들의 본산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휴양지 알프스를 지척에 두고 있다. 절대 숫자에서 1위를 차지한 런던은 인구당 기준으로는 8위에 그친다. 뉴욕, 파리, 도쿄는 각각 19위, 24위, 32위로 하락 폭이 더 크다. 한마디로 슈퍼부자들은 자녀를 위해선 런던을, 자신을 위해선 스위스 휴양도시를 선호하는 셈이다.

호주 동부 해안은 아시아 부자들이 선호하는 해외부동산 투자지역이다.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런던행 이삿짐을 싸는 중국과 러시아 부자들

런던의 인기에서 보듯, 영국은 지난 10년 동안 백만장자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나라이다. 지난 10년 동안 11만4000명이 영국에 정착했다. 이어 싱가포르(4만5000명), 미국(4만2000명), 호주(2만2000명) 차례였다. 최근 영국 이주민이 급증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지난해 1~9월 동안 티어1(Tier1) 투자비자(100만파운드 이상)를 신청한 703명 가운데 309명이 중국인, 162명이 러시아인이었다.

각 나라의 부자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곳은 조금씩 다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호주를 선호해 왔다. 2013년 500만호주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중요투자비자(SIV) 신청자의 90%가 중국인들이었다. 인도 백만장자들은 전통적으로 영국과 미국, 호주를 선호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부자들은 영국과 스위스를 선호한다. 러시아에선 7만3천명의 백만장자가 2013~2014년 외국여권을 받았는데, 영국과 미국이 가장 많았다.

세계 슈퍼부자들의 지역 판도는 어떻게 바뀔까? 2014년 현재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지난해 4만581명을 기록했다. 이어 일본(1만6703명), 독일(1만1679명) 순이다. 지난해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아시아의 슈퍼부자 증가 수가 북미를 앞질렀다는 것이다. 아시아 슈퍼부자는 지난해 1419명 늘었다. 자산 총액에서도 5조9천억달러로, 북미의 5조5천억달러를 앞섰다.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근대산업자본의 본산 유럽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모나코에는 왜 부자들이 몰릴까

지중해 연안의 모나코는 인구당 기준으로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인구당 숫자로 보면 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지중해의 작은 나라 모나코가 최고의 부자들 나라이다. 이 나라에선 10만명당 574명이 슈퍼부자다.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미국에선 10만명당 12.7명이다. 중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슈퍼부자가 늘고 있지만, 인구당 기준으로는 10만명당 0.6명선에 머물러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모나코의 갑부 증가율이다. 모나코의 슈퍼부자 수는 지난해에도 10%나 늘었다. 유럽의 증가율 3.2%를 세 배나 웃돈다. 보고서는 "아마도 조세가 없고 거주 자격 조건이 없는 모나코의 환경이 부와 자산에 대한 증세 논의를 우려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슈퍼부자 증가세는 조금씩 빨라질 전망이다. 10년 후인 2024년 세계 슈퍼부자 수는 지금보다 34% 늘어난 23만10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 해 전의 향후 10년 전망치 28%보다 높아졌다.

2014~2024년중 슈퍼부자 증가속도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들.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향후 슈퍼부자 증가율 1위인 나라는?

이 기간 중 슈퍼부자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날 나라들에서는 신흥국들이 앞선 순위를 차지했다. 맨 앞에는 베트남이 꼽혔다. 116명에서 300명으로 159%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경제 개혁, 개방 정책의 누적효과로 보인다. 이어 인도네시아(132%), 아이보리코스트(119%), 베네수엘라(115%, 카자흐스탄(114%), 몽고(110%) 등이 그 뒤를 이을 전망이다. 카자흐스탄의 증가율은 풍부한 광물자원 덕분이다. 인근 러시아는 부자들의 잇단 해외이주로 46%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차이나) 이후의 새로운 신흥국가군 '민트'(MINT)를 주목한다. '민트'는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회장이 작명한 용어이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터키 네 나라를 가리킨다. 민트 그룹의 다음 10년 슈퍼부자 예상 증가율은 76%로, 브릭스의 72%를 웃돈다.

그러나 절대적인 숫자에서는 미국이 25% 늘어난 5만1000명으로 10년 후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세계 백만장자(슈퍼부자가 아님)들의 유출입 상위 지역들.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한국의 슈퍼부자는 1622명, 10년 후엔 2184명?

'세계의 공장' 중국은 부자들이 가장 빨리 늘어난 나라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부자들이 가장 많이 떠난 나라이다. 지난 10년 사이 슈퍼부자가 1721명에서 8386명으로 약 5배가 늘어났다. 반면 2013년까지 10년 동안 백만장자 7만6200명이 해외로 이주하거나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했다. 지난해 9월 영국은행 바클레이스가 150만달러(16억원) 이상의 전세계 자산가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중국인 응답자 중 47%가 5년 이내 해외이주를 원한다고 답했다. 전세계 평균(29%)보다 크게 높았다.

그럼에도 10년 후 중국의 슈퍼부자는 87% 늘어난 1만5681명으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지난해엔 5위(8366명)였다.

2004년 946명이었던 한국의 슈퍼부자는 현재 1622명이다. 10년 동안 71%가 늘어났다. 10년 후엔 2184명으로 35% 늘어날 전망이다.

향후 10년간 슈퍼부자 숫자가 가장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세 도시.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스위스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싱가포르

런던은 10년 뒤에도 톱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부자군단이 이 기간 중 54% 늘어나면서 21% 증가에 그치는 런던과의 격차를 크게 좁힐 것이다. 각종 세금혜택을 제공하며 외국인투자 유치에 열심인 싱가포르는 최근 들어 조세피난처로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다. 스위스가 오는 2018년부터 은행 비밀계좌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반사이득을 얻고 있다.

세계 부자들의 피라미드 구조(2014년 기준).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글로벌 대도시들, 슈퍼부자들의 폐쇄된 성채가 될 것"

슈퍼부자들과 대도시의 결합은 지구촌 공동체사회의 미래에 또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대도시가 상류층의 전유공간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류층이 대도시에 머무는 이유는 사업 때문이 아니다. IT기술의 발전은 일하는 장소를 공간적 제약에서 해방시켰다. 이들을 대도시에 묶어놓고 있는 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대도시의 땅값과 집값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상류층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대도시는 상류층의 폐쇄적 공동체가 된다. 세계 도처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쿠퍼(Simon Kuper)는 지난 2013년 '파리에서 쫓겨나다(Priced out of Paris)'란 제목의 칼럼에서 "앞으로 글로벌 도시들은 최상위 1%가 자신을 재생산하는 엘리트들의 성채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들의 지금까지의 도시 성장은 '고급화'(gentrification)였지만 앞으로는 '금권화'(plutocratisation)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도시에서 중산층과 소기업은 '계층 청소'의 희생양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런 식의 도시 재생산 시스템은 이들 도시 내부의 격차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그동안의 도시 성장을 뒷받쳐준 창의성과 다양성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미국의 금융주간지 <배런스>는 슈퍼부자들의 성장을 '새로운 코스모폴리탄 엘리트 계층의 탄생'으로 표현했다. 이들에겐 자신의 커뮤니티 역할을 해주는 도시에 대한 정체성은 있지만 국적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 뉴욕에 사는 최상류층의 네트워크와 대안은 영국의 런던이지, 뉴욕에서 가까운 중소도시 버팔로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지구촌 공동체의 미래에 더 우울한 신호는, 대도시에 몰려 있는 1%도 안되는 상류층 네트워크가 단단해질수록 국가 정책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진다는 점이다. 부자들이 만들어가는 '그들만의 생태계'가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지구촌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이트 프랭크는는 2008년 이후 매년 세계 슈퍼부자 보고서를 발표해오고 있다. 이번이 8번째다. 이번엔 97개국 108개 도시의 부호들을 조사했다. 웰스 엑스는 5대륙 13곳의 현지 사무소가 보내온 자료 등을 토대로 이번에 처음으로 보고서를 냈다.

슈퍼부자들은 어디에 돈을 쓸까

자가용 제트기 수요는 중국인 부자들이 가장 많다.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

서양이든 동양이든 옛적부터 인간의 가장 주요한 투자처는 부동산이다. 세계의 슈퍼부자들은 평균 2.9채의 집을 갖고 있다. 중국과 홍콩 부자들이 집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각각 4.7채, 4.6채다. 자산관리자들은 자신들의 고객 4명 가운데 1명(26%)은 올해 안에 또 다른 저택을 구입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2%다. 자산관리자들은 이들 중 35%는 올해 부동산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전했다. 투자 대상으로는 주택(81%)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투자 지역은 전체적으로 국외(42%)보다 국내(58%)가 더 많았으나, 러시아 부자들은 해외 부동산 투자(89%)를 압도적으로 앞세웠다. 중동(77%), 중남미(57%)의 부자들도 해외부동산 투자를 더 선호했다.

슈퍼부자들이 집 외에 선호하는 부동산 투자 대상은 스키장(34%), 포도농장(25%), 승마장(17%) 순이다. 아시아의 부자들은 포도농장을, 아프리카와 중동 부자들은 승마장을, 유럽과 북미 부자들은 알프스와 록키산맥의 별장을 주로 사고 싶어 한다.

명품은 부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특별한 수단이다. 자산관리자 3명 중 1명은 슈퍼부자들이 지난해보다 올해 명품 구입에 더 많은 돈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적게 쓸 것으로 보는 사람은 8%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명품들 예술품과 시계, 와인, 클래식 카 등이다. 명품 시장에서는 중국 부자들이 단일 국가론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고객이다. Bain & Altagamma에 따르면, 세계 명품 시장의 29%가 중국인 부자들 덕분에 먹고산다. 특히 중국 슈퍼부자들의 경우, 자가용 제트기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다. 보고서는 중국의 자가용 제트기 수가 지금의 330대에서 2023년 1275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봄바디외 항공사의 예측을 증거로 제시했다. 중국 부자들의 주요 항로는 베이징과 홍콩이다.

지난해 3811만달러에 팔려, 클래식카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1962년형 페라리 250 GTO 베를리네타. Bonhams.

부자들의 명품 투자가 신상품에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중고 명품은 희소가치가 높아 신상품보다 훨씬 높게 책정된다. 프랑스 와인과 꼬냑 등의 증류주 수출은 최근 중국 정부의 강력한 뇌물 단속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위스키 판매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늘어났다.

무려 1000억원이 넘게 팔린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품 '청동마차'. 소더비.

여성용 시계도 붐이 일고 있다. 여성들의 구매력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주는 이제 더 이상 한물간 사치품이 아니다. 다이아몬드도 슈퍼부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핑크, 블루, 옐로, 다이아몬드가격은 2005년 이후 167% 올랐다. 크리스티의 보석컨설턴트 레이몬드 샌크로포트 베이커는 석유재벌들의 수요가 많다고 말한다.

미술품은 지난 몇년간의 침체를 겪다가 지난해 15% 성장했다.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 '청동마차'가 지난해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다. 지난해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1억100만달러(약 1100억원)로 새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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