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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06일 10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06일 14시 12분 KST

한 북한 건축가의 미래 상상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한 전문여행업체인 고려투어스(Koryo Tours)가 최근 한 젊은 북한 건축가와 함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북한 땅을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이 건축가에게 관광시설을 포함한 미래의 북한 건축 디자인을 주문한 것입니다. 북한의 대표적 설계연구기관인 백두산건축연구원 소속인 그에게 주어진 디자인 콘셉트는 지속가능성입니다. 서구사회의 지속가능한 디자인 개념이나 최신 기술 흐름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법한 그는 이 주문을 어떻게 소화해냈을까요.

태양 전지패널, 풍력 터빈, 수력을 동력원으로 쓰는 북한의 미래 잠업 협동농장. 우리 전통 물레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단지 내의 교통수단은 공중 모노레일이다. fastcoexist.com. koryo tours.

북한 사람들에게 미래 세상은 어떤 이미지로 있을까요? 남쪽과 사회체제도 다르고 국외 출입이나 외부세계 정보 접근에서도 통제를 받고 있으니 상상력의 토대는 아무래도 남한사람들과 사뭇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한 전문여행업체인 고려투어스(Koryo Tours)가 최근 한 젊은 북한 건축가와 함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북한 땅을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이 건축가에게 관광시설을 포함한 미래의 북한 건축 디자인을 주문한 것입니다.

북한의 대표적 설계연구기관인 백두산건축연구원 소속인 그에게 주어진 디자인 콘셉트는 지속가능성입니다. 서구사회의 지속가능한 디자인 개념이나 최신 기술 흐름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법한 그는 이 주문을 어떻게 소화해냈을까요.

여행객들을 위한 하늘을 나는 집. fastcoexist.com.

강에 둘러싸여 있는 원뿔형 숙박시설. 옥상엔 헬리콥터 착륙장이 있고, 곳곳에 태양전지패널이 보인다. 건물 외부에는 공중정원이 조성돼 있고, 건물과 건물은 파이프 통로로 연결돼 있다. fastcoexist.com.

단체여행객들을 위한 금강산 폭포 주변의 관광빌라 단지.

금강산 빌라의 내부. 개방된 테라스를 통해 투숙객들끼리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관련 지식과 상상력을 총동원해 호버크라프트(공중부양선)처럼 하늘을 나는 집, 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원뿔형 빌라 단지, 태양광 풍력 수력을 동력원으로 쓰는 잠업 협동농장, 전통 한옥건축 양식을 반영한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형식의 시설을 선보였습니다. 이 디자인을 설계한 북한 건축가는 건축 콘셉트와 관련해 "우리는 하나의 마을(공동체)에 살고 있으며, 모두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는군요. 실제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 모든 시설에서 개별성보다는 매우 강한 집단성이 느껴집니다. 또 각각의 공간 배치에서도 사적 공간의 보호보다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교류가 가능하도록 한 점이 눈에 띕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고려투어스의 니콜라스 보너 대표는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지만, 나무와 전통 건축양식, 자연냉각 등 자연자원을 재활용하는 데서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7월부터 열리고 있는 제14회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새집들을 층층이 엮어 놓은 듯한 게스트하우스.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따랐다.

북한 건축가의 디자인은 실제 건축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순전히 상상의 결과물입니다. 보너는 건축비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말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북한내 관광시설 건축에도 관심이 있다는 보너는 여러 디자인 중에서 "새집을 층층이 엮어놓듯, 숲쪽으로 세 방향의 테라스가 있는 강변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1962년에 방영된 <젯슨가족>의 한 장면. 100년 후인 2062년의 미래 생활을 상상해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미 ABC TV의 첫 컬러방송이었다.http://familyguy.wikia.com/wiki/The_Jetsons?file=Jetsons.png

북한 건축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보너에 따르면 "어떤 이들은 복고적이고 저급하다고 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창의적이고 재밌고, 유용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답니다. 또 표현 방식에서 이제는 역사의 무대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비에트시대의 작법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온라인미디어 <패스트 컴퍼니>는 감상평을 한마디로 '젯슨 가족 스타일'(The Jetsons-styl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젯슨 가족>은 1962년 미국 한나-바바라 프로덕션이 워너브라더스와 함께 만들어 방영한 TV 애니메이션으로, 미래의 우주 주택에 사는 젯슨가족의 일상 에피소드를 그린 것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30여년이 지난 1990년대에 국내 텔레비전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젯슨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통해 외부세계와 단절된 북한의 미래 상상력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려투어스는 오는 10월 평양의 현대건축을 테마로 한 북한여행단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관광 코스에는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맞아 지어진 평양의 청년호텔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이번 미래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는 이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사전 행사로 보입니다. 보너는 북한 건축 테마여행과 관련해, 평양 전체가 한국전쟁 이후 총체적으로 재건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별 건물보다는 사회주의 도시 재건 마스터플랜이라는 차원에서 들여다볼 것을 주문했습니다.

지난 7월 평양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 트롤리버스(무궤도 전차)에 탑승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 요즘 평양 시내관광은 주로 이 트롤리버스를 이용해 이뤄진다고 한다. 고려투어스 페이스북에서 인용.

고려투어스와 북한의 남다른 인연

이런 일을 추진하고 있는 고려투어스는 어떤 회사일까요. 이 회사 웹사이트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대표인 닉은 영국인으로 조경건축가 출신입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중국 여행중 당시 평양에서 택배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와 함께 평양 구경을 하러 간 것이 계기가 돼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북한인 친구로부터 여행사 운영을 제안받고 1993년 북한여행 사업에 나섰다는군요. 고려투어스는 여행사업 외에도 <천리마축구단> 등 북한 다큐멘터리 3편도 제작했습니다. 대표인 닉은 북한 미술작품 수집가로서 지난 2012년 미국 하와이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북한 미술전시회 공동 큐레이터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고려투어스는 그동안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북한 관광단을 꾸려왔으며, 한 해 2천여명의 서구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묘향산의 흔들다리. 관광객들에게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콘셉트의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