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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7일 09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26일 14시 12분 KST

가석방 안 되면 역차별? 재벌총수를 위한 지독한 거짓말!

법무부장관과 법무부직원은 가석방업무를 심사기준표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 경우 형량이 1년 미만이고 초범인 경우에도 최소한 형기의 60% 이상을 복역해야만 비로소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다. 만약 누구처럼 형량 4년에 재범인 경우에는 최소한 80% 이상 경과해야만 가석방 자격이 생긴다. 한마디로 형기 1/3 요건 충족을 이유로 한 가석방은 현재의 법무부지침이 살아있는 이상 초특급 특혜이자 법무부의 자기부정이다.

Darrin Klimek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비정규직 차별금지가 아니라 재벌총수 차별금지를 정권실세들이 앞 다투어 노래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정부여당의 재벌총수 가석방 차별금지 드라이브는 2014년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집권세력이 명백한 특혜를 원칙이라 부르고 명백한 차별을 법이라 우기자 권력주변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일제히 그것을 엄호한다. 어떤 교수는 "재벌총수를 특별히 봐주자는 게 아니라 '경제적 사역'을 시키자는 뜻"이라는 '창조해석'까지 내놓는다. 이래저래 금년에는 12월의 마지막 주간까지 지록위마의 억지합창에 시달릴 판이다.

처음 총대를 멘 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였다.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재벌총수를 가석방으로 풀어주자고 운을 뗐다. 당장 최경환부총리가 "기업인이라고 엄격한 잣대 온당치 않다"고 받았고 황교안 법무장관이 "가석방 법적요건 갖춘 기업인 차별 안 된다. 원칙대로 하겠다."고 이어받았다. 야당에도 박지원 의원 등 동조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땅콩회항의 여진을 우려하며 망설이던 낮은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언론의 집중보도로 간 보기와 김 빼기에 성공한 여권은 주사위를 던졌다. 재벌총수 조기 가석방이 가시권 내에 와있다.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은 안 된다는 식의 지당한 얘기가 반복되니 일반시민들은 헷갈린다. 마치 가석방 법정요건을 충족했는데도 재벌총수라는 이유로 가석방이 보류된 듯해서 은근히 딱한 생각이 든다. 주류언론도 김승연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왕성한 신규투자에 나서고 있는 한화그룹과 달리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장기복역으로 연간투자액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며 맞장구친다. 재벌총수들을 하루바삐 가석방해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재벌총수의 안하무인 행태를 좋아하지 않지만 만일 그분들이 가석방 결정에서 단 하루라도 부당한 차별처우를 받는다면 그분들을 위해 싸울 각오가 누구보다 단단히 돼있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다. 그뿐 아니다. 여권실세들의 재벌총수 차별금지 촉구발언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정치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를 위한 그분들의 모처럼의 투쟁에 미력이나마 함께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과연 재벌총수들이 부당한 역차별을 받고 있는가?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초대 국가인권위원으로서 양심적병역거부 사안을 맡아 어떻게든 처벌수위를 낮춰보거나 복역기간을 줄여보려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가석방에 생각이 미쳤다. 법무부에 형법에 따라 형기 1/3 경과시점에서 가석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법무부는 그건 안 된다고 하면서 가석방기준표를 가져와 내게 보여줬다. 형기와 범수에 따라 가석방에 필요한 형기경과율을 깨알같이 정해놓은 법무부지침이었다. 지금도 이 지침은 살아있다. 다시 말해서 법무부장관과 법무부직원은 가석방업무를 심사기준표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그 경우 형량이 1년 미만이고 초범인 경우에도 최소한 형기의 60% 이상을 복역해야만 비로소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다. 만약 누구처럼 형량 4년에 재범인 경우에는 최소한 80% 이상 경과해야만 가석방 자격이 생긴다.

단언컨대 법무부의 가석방기준표가 멀쩡히 살아있는 이상 지금 진행 중인 가석방 드라이브는 법대로 원칙대로 해달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재벌총수에게만 예외와 특혜를 인정하자는 것이고 이것을 법과 원칙으로 호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록위마의 억지를 부리며 국민을 속이는 지독한 거짓말이다. 물론 형법 제72조는 형기 1/3 이상이 경과할 경우 가석방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형기 1/3을 넘게 복역한 재벌총수를 '법대로, 원칙대로' 풀어달라고 하는 근거는 오직 이것 하나다. 좋다. 형기 1/3 이상을 복역한 재벌총수를 가석방하라. 단, 일반범도 똑같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치행정이 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형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법무부의 가석방업무지침 때문에 누구도 형기 1/3 경과시점에서 가석방된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서기호 의원이 밝힌 법무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지난 7년 반 동안 형기 60%를 안 채우고 가석방된 경우는 총5만6828건 중 단 1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외국인이고 강제추방을 조건으로 이뤄진 가석방이었다. 형기 60% 이상 70% 미만을 채우고 나온 경우도 총12건(0.02%)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이 이런데도 형기의 1/3 또는 33.33%만 넘으면 가석방하는 것이 법과 원칙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재벌총수를 위한 일념으로 국민에게 지독한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주요언론이 이런 사실에 눈감는 것 역시 재벌총수를 위한 침묵일 뿐이다. 한마디로 형기 1/3 요건 충족을 이유로 한 가석방은 현재의 법무부지침이 살아있는 이상 초특급 특혜이자 법무부의 자기부정이다.

다행히 여론은 부정적이다. jtbc 뉴스9의 긴급 여론조사결과 반대 58.1%, 찬성 22%로 반대가 3배 가깝게 나왔다. 유전무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결기가 읽힌다. 황교안 법무장관도 작년 광복절 때 재벌총수 등 "사회지도층인사에 대해서는 가석방기준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발전을 염원하는 국민여론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불과 1년여 만에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해 가석방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180도 입장선회를 하려면 황교안 법무장관은 반드시 그 이유를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현 정권의 재벌총수 가석방 드라이브는 어떻게든 보은의 성의를 보이라는 재계의 독촉에 여권 전체가 우리가 언제 남이더냐며 살갑게 호응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법리도 논리도 없는 조폭 의리에 주요언론은 물론 많은 야당정치인마저 내심 동조하는 것, 이것이 재벌공화국의 실상이다. 형법의 요건에 따라 재벌총수를 가석방하려면 먼저 형법에 맞춰 가석방지침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재벌총수뿐 아니라 일반수형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가석방요건을 적용하여야 한다. 특히 평화파업주동자와 양심적병역거부자 등 양심범부터 형기 1/3 법정요건을 적용해서 가석방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실시되는 재벌총수 가석방은 민주법치국가가 아닌 재벌공화국의 징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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