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2월 15일 12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5일 14시 12분 KST

북한 정권은 정말 히틀러를 좋아할까?

2015-12-11-1449835490-2657167-timthumb.jpg

북한에 대한 근거 없는 악마화, 오히려 정권을 정당화

지난 20여 년 간 해외 언론들이 북한에 대해 꾸준히 다룬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지도자는 히틀러의 팬인가?'의 여부일 것입니다. 2013년 한 인터넷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자신의 생일에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한정본을 당 간부들과 정치 고위층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해당 언론사에 의하면 최부일 대장(인민보안부장, 한국의 경찰청장에 해당)은 과거 보안부회의에서 "우리는 외국으로 치면 경찰이다. 외국 사람들은 군대보다 경찰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장마당에서 돈 뜯을 궁리나 하지 말고 독일의 게슈타포가 될 생각을 하라. 김정은 시대에선 인민보안부가 제일이니 자부심을 가지라"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종류의 보도는 저에게는 모두 헛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일단, 범죄자를 다루는 최고 기관인 북한의 인민보안부가 독일 크리포(Kriminalpolizei: 나치 독일 시대 히틀러 친위대 소속의 보안 기관)가 아닌 게슈타포(Geheime Staatspolizei: 나치 독일 시대의 비밀 정치 경찰)를 닮아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히틀러, 세계 역사상 최악의 인물

북한에서 히틀러에 대한 인식은 구 소련에서 널리 알려진 히틀러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당시 소련이 보는 히틀러의 모습은 서방 국가들과 거의 동일했습니다. 그들에게 히틀러는 잔혹하고 매우 악독한 독재자이며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조금 다른 점은 유태인 학살에 대하여 서방 국가들은 나치 전쟁범죄의 핵심으로 본 반면 소련은 나치의 여러 전쟁 범죄 중 하나 수준으로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소련의 전쟁 관련 영상물은 과거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북한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북한은 1973년에 소련에서 제작된 드라마 시리즈 <봄의 열일곱 순간>의 컬러버전을 구입해서 방영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소련 첩보원이 독일 나치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 역사상 히틀러가 미화된 영상물이 반영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또한 2014년 12월 노동신문은 대한민국의 반정부시위대가 박근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교하며 시위하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북한에서 히틀러가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었다면 그런 사진은 북한의 언론에 노출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김정일이 히틀러의 숨겨진 팬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주석궁에서 히틀러의 저작 '나의 투쟁'을 읽지만 대중에게는 그 취향을 철저히 숨기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처형 성혜랑(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언니)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성혜랑은 아들이 과거 북한의 정보원에 의해서 살해당했고 본인은 현재 서방으로 망명해 살고 있기에 북한 정권에 대해 조금도 미화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그녀조차도 김정일이 히틀러 애호가라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다고 회고록에 적어놨습니다.

민족주의가 북한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북한 미디어가 "조선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반드시 인종차별주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북한은 "조선 인종" 또는 "우리 인종"과 같은 단어를 민족주의 선동에 사용한 적도 없습니다. 또한 북한이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1989년 12월 발간된 김정일의 연설문 '조선민족 제일주의 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에서 그가 말하는 민족주의란 생물학적인 구분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생물학적 인종 차별은 "반동적인" 것이며 "부르주아"적인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김정일은 조선 민족은 가장 뛰어나지만 그것이 생물학적 뛰어남은 아니며,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을 공경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미디어가 언급한 것 중 인종 차별의 범주에 속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2007년 4월 27일 노동신문은 "다국적이며 다인종 사회는 파멸적인 사회"라는 글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의 제노필릭(xenophilic: 외국인의 문화, 풍습에 매료되는 현상)적인 다문화 정책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 이후 이와 같은 의견은 북한 매체의 중심에 등장한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중점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김정은 시대까지도 이어집니다.

(역주) 2014년 5월 경 조선중앙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을 "이상한 검은 원숭이"라고 표현하는 등 매우 원색적인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원작자와 상의 후 아래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물론 2014년 5월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을 '검은 원숭이'라고 부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피부 색깔에 대한 인종 차별적 언급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 일회용 단발적인 도발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은 인종주의가 북한 정권의 중심된 기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논쟁은 더 단순합니다. 히틀러는 인종주의자를 넘어 오직 게르만 인종만이 우수한 인종이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 민족주의자가 히틀러를 지지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는 마치 흑인 우월론자가 갑자기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팬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네오나치가 "총통 각하를 따르는 몽골인종"을 반갑게 여기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형제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또한 김정은이 극우 인물인 히틀러의 팬이 된다면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전세계 극좌파들이 자신들의 지지를 재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거짓말 바로잡기

김씨 일가의 히틀러에 대한 애정이 거짓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상황이 논리적으로 풀립니다. 근대사에서 가장 사악한 인물로 묘사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아무리 잔혹했더라도 캄보디아의 학살자 폴 포트나 콩고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천만명을 대살육한 벨기에 왕국의 왕 레오폴드 2세는 아닐 것입니다. 근대 역사상 가장 악하게 묘사되는 인물은 바로 히틀러입니다.

선동가는 자신의 적수를 비방하기 위해 상대방이 히틀러를 좋아한다고 선전하거나 상대를 히틀러와의 비교하는 등의 행위를 서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가 너무 지나치다 보니 심지어는 '고드윈의 법칙'이라는 요상한 법칙까지 등장했습니다. 이 법칙의 골자는 '온라인에서의 토론이 길어질수록 나치나 히틀러에 대한 비유가 나올 확률은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법칙은 상대방의 논지를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 상대방을 나치로 몰아서 논쟁에 일단락을 내려는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씨 정권을 히틀러에 비교하는 행위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이해하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북한에 대한 오보는 주로 북한에 대한 무지, 사실로 둔갑한 루머, 그리고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의 배포에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김씨 일가와 같은 폭압적 독재 정권을 무분별하게 공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김씨 일가가 히틀러를 좋아한다는 주장, 장성택이 굶주린 개들에게 잡어 먹혀서 죽었다는 소문,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는 한때 포르노 배우로 일한 적이 있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 모두 그러한 실례에 속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분들에게 딱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그만두시죠"

놀랍게도 그러한 행동은 김정은 정권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씨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소문에 노출이 될 것이며 왕조의 지지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 북한 정권의 반대자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학자들의 논지를 잘 보십시오. 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많은 논지 중 가장 신빙성이 낮은 증언을 발판 삼아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이 조작한 음모론"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공격 중 거짓에 기반된 것은 위의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똑같이 활용될 것입니다. 장성택이 굶주린 개에 먹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한은 고문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권국가라는 식의 논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김씨 일가 중 히틀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히틀러와 달리 국민의 복지와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국가로 선전될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궤변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러한 궤변이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것인가요?

글쓴이 이휘성은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안재혁이 번역하였으며, 글에 사용된 사진은 가상 이미지로 이휘성이 제공했습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 페이스북트위터에서 NK News 한국어판을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