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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7일 11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7일 14시 12분 KST

통일 이후 북한 보위부의 미래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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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탄압 가담자 처벌 사실상 어려워

현실적으로 통일 한국의 도래는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는 가정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한국이 쟁취할 승리는 통일 한국의 여러 계층에게 복합적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북한의 중산층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계층입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의 사회에 큰 잡음과 고질적인 문제를 일으킬 계층은 오늘날 북한 정권에 복무한 인사들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특히 군인 출신과 북한의 비밀경찰인 보위부 출신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한 자체가 고도로 군사화된 경찰국가이기 때문에 군인과 경찰에 속하는 계층은 생각보다 머릿수가 많은 편입니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군사화된 나라이며 중국의 공안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공권력 규모가 큰 곳입니다. 오늘날 북한군은 총 120만명 정도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인민군은 고작 230만 명입니다. 인구 2천 500만의 북한 인구 중 무려 5퍼센트에 해당 하는 사람이 군에 복무를 하고 있으며 중국의 군인 수는 인구 대비 0.02퍼센트 정도입니다.

북한 정부는 인민군을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건설장 인부로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징집된 북한군의 약 반에 해당하는 인원은 10년이나 그에 준하는 시간을 복무해야하는데 그들은 복무 기간 중 소총보다는 삽을 더 오래 동안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에는 상당한 숫자의 특전사와 정예 부대가 있습니다. 이러한 특수 군인들은 서방의 고성능 무기를 가지고 훈련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들은 구닥다리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치명적인 교전에는 매우 능하다는 것입니다. 약 20만에서 30만에 달하는 이들 직업 군인들은 최소 10년 동안, 혹은 성인 이후의 모든 삶을 값싼 무기로 인간을 살해하는 법만 배운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병

통일 이후 북한 군인들 대다수는 새로운 체제가 그들을 따뜻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젊은 북한 장교 중 몇몇은 운이 따른다면 통일 한국의 군대에 편입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이상 한반도에 주둔해야 할 군인의 숫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며 이 과정 속에서 한국 출신의 장교들조차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북한 출신의 살인 기계들은 일정 수 이상 통일 한국의 군대에 편입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군대에서 이탈된 북한군 출신들은 통일 한국 사회에 폭력을 야기할 것입니다. 그들은 통일 한국의 경제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그 어떤 경제적인 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지닌 유일한 기술을 이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통일 한국에서 사회 불안정을 야기 시킬 것이며 전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인 서울의 주민조차도 이들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북한 정권에 협력한 고위 계층의 존재도 통일 한국이 이겨내야 할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정치, 학계, 사회는 오늘날까지도 친일파가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와 비슷한 역사는 반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1945년 친일파는 일본의 몰락 이후에 미군정의 도움으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1945년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통일 한국 정부는 과거 북한 정권에 협력한 고위 계층 중 많은 수를 기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모든 사람들이 선전선동 활동에 연루되도록 강제해 왔습니다. 성인의 대부분이 매일 북한 체제를 찬양해야 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특히 북한 정부에 속한 사람들은 김씨 일가와 그들이 이룩한 지상낙원에 대해 끝없이 찬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북한의 공무원들은, 국영 상점 운영자조차 과거 북한 정권에 협조적이었던 '친북파'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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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ric Lafforgue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오늘날 북한의 고위 계층은 통일 한국에서 일반적인 북한 사람들보다 훨씬 적응을 잘할 것입니다. 북한 고위층은 무려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세습을 통해 고등 교육과 여러 고급 기술을 독점적으로 익힌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북한 고위 계층과 그들의 교육 받은 자손들은 북한에서 회사를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며 영어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북한의 평범한 엔지니어보다 더 뛰어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1940년대 말 한국에서 친일파들이 득세한 것처럼, 통일 한국 또한 과거 북한 정권에 빌붙었던 '친북파'들이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존 한국 정부가 완전히 새롭게 구성한 행정부라 할지라도 북한 고위층의 협조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북한의 군인들과는 다르게 고위층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사회 관리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뇌물수수와 같은 북한에서의 악습에 익숙해져 있다 해도 통일 한국의 정부 재편 기획에서 이들의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과거 정권에 의해 압제당한 북한 주민들이 '친북파'들로 이루어진 통일 한국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과거 정권을 한 번 배반한 이들이 북한 출신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까요? 또한 그들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을까?

그렇다면 북한 인권 학대 행위의 가장 중심에 있는 북한의 보위부 출신 인물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죄에 대해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저질러지는 인권 학대는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의가 구현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가장 큰 난점은 북한 정권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 인권 유린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지난 과거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8만에서 20만명에 달하는 북한 사람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전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수감 되었고 정치범의 가족이란 이유로 수용소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수용소 밖으로 나온 이들은 평생 북한 사회 속에서 차별을 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과거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만 무려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감옥에서 죽거나 나와서 사망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정치범 수용소의 희생자는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권 탄압 행위는 수만에 달하는 보위부 출신과 민간에 숨어있는 보위부 밀고자의 손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 사람 50명 중 1명의 밀고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낙인찍힌 계층일수록 밀고자의 비율은 더 높아집니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라고 해도 북한 사람 중 약 50 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북한 보위부의 끄나풀로 일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중에 효용이 다해서 버려진 밀고자까지 합한다면 그 수는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씨 정권을 위해 일한 밀고자들은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해가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한 밀고자들도 있을 것이고 열성적인 밀고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둘의 사이 지점에서 밀고 행위를 계속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면밀한 조사가 뒤따르지 않고서는 유죄와 무죄를 가리기가 힘듭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50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조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과거 보위부에 재직했던 사람 중 매우 폭압적이었거나 악명이 높았던 사람, 지극히 운이 없는 사람들만 처벌 받을 것으로 보이며 밀고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보위부가 자행한 학대를 모두 수사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것도 경제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장애인이 되었거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북한의 인권 학대를 오래 겪은 세대의 대부분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의 미래는 통일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배신자의 자녀로 낙인찍히고 북한 변방에서 평생 육체노동만 하던 이 자손들은 남은 일생도 사회계층 사다리의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운명입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대비시켜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는 가상이지만 현실을 충분히 염두에 두었으며 이 문제가 통일 한국에 도덕적,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1970년대 북한에서 두 친구가 집에서 만든 술을 마신 채로 길을 걷고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술에 약간 취한 한 친구는 약간은 위험한 발언을 합니다. 예를 들어, "남한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지?" 또는 "소련에서는 배급이 안 된대, 그래도 가게애서 돼지고기를 살 수 있다더군" 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바로 보위부에게 달려가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입이 가벼운 친구는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고 국가에 충성한 친구는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밀고자는 해당 구역의 당 비서로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수십 년 후를 예측해 봅시다. 통일 한국에서 젊고 똑똑한 한 여자아이는 완벽한 영어 실력과 컴퓨터 기술을 익힌 후 통일 한국의 대기업에 취직해 성공대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청소부는 화장실의 변기를 닦고 있습니다. 성공한 소녀는 위에 언급한 밀고자 당 비서의 딸이며 청소부는 한때 자신의 친구를 너무나 믿었던 입이 가벼운 남자의 자식입니다.

북한 인권 탄압의 가해자들의 생존력, 그리고 북한의 국가 제도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겪은 고통 그리고 과거 보위부와 협력한 인물들에 관한 끊임없는 소문들은 통일 한국의 사회에 수십 년간 해악을 끼치는 독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특히나 이 독은 통일 한국 인구 중 많은 사람들, 특히 북한 출신자들 사이에서 불의가 횡행하고 있다는 감정에 불을 지피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Nikolaevich Lankov)는 1980년대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학한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입니다. 안재혁이 번역하였으며 메인사진은 Eric lafforgue가 찍은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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