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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7일 13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7일 14시 12분 KST

김일성이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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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주장 뒤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

1986년 9월 6일, 이날은 무려 80여개의 국가 대표들이 참가하는 '조선반도에서의 비핵·평화를 위한 평양국제회의'가 개최된 날이었습니다. 회의장의 벽에는 "조선 반도를 비핵·평화 구역으로 만들자!"와 "자주적이며 평화적인 한반도의 통일을 응원하자!"와 같은 정치적 문구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은 이 자리를 빌어 전 세계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지구상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이상 핵전쟁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으며 인류는 핵무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북한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비축, 도입을 삼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물론 이 선언은 그저 연막작전에 불과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은 이미 핵무기 개발을 열성적으로 추진했습니다. 1956년 김일성은 북한 주재 소련대사에게 북한 과학자들이 핵무기 연구에 대한 경험을 쌓게 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 후로 약 20년 동안 핵무기 개발에 대해 경험을 쌓은 북한 관리들은 1976년 헝가리 외무부에게 '실험을 통해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미국과 남한에 대한 핵전쟁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 미국은 북한의 세 번째 원자로와 무기급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시설 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런 연막작전을 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북한은 비핵화 주장을 통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정통성을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연막작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순간부터, 남한과 북한은 앞다투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1958년 중국군이 북한에서 철수한 이후 자국에 외국군이 주둔하지 않는다는 점, 국가 지도자들이 반제국주의 투쟁 이력이 있다는 점을 내세워 남한보다 평화적이고, 독립적인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남한이 공격적이며 군국주의적인 미국의 괴뢰정부로 한반도를 군사력으로 통일하려는 국가로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국내에 이와 같은 사상전을 펼침과 동시에 전 세계에 이와 같은 선동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은 각종 선전물을 배포하고 여러 '친선' 협회들에 자금을 대면서 이와 같은 내용을 탈식민화된 지 얼마 안 된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외에까지 퍼뜨렸습니다.

김일성은 이와 같은 사상전을 통해 제 3세계 국가들이 자신을 혁명적인 업적을 쌓은 반제국주의적 정치인으로 인정하고 세계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강국이자 비동맹, 반제국주의의 보루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김일성의 대외전략은 자신을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각인하는데 집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979년 2월 22일, 북한 정부는 아일랜드의 신문 '아이리시 타임즈(Irish Times)'에 김일성의 초상화가 그려진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그 광고는 남한의 '두 개의 한국' 음모를 분쇄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물론, 국제 사회는 당시 반핵과 반제국주의를 내걸고 있던 김일성의 숨겨진 의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알고 있었다면 이 광고는 굉장히 위선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남한 사회의 여론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습니다 1980년대, 한국에선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선 학생들과 사회 운동가들의 시위가 한창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한국 정부는 국내 곳곳에서 시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북한은 '평화를 사랑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남한 국민을 꾀어 이들이 '인민 혁명'을 일으키면 궁극적으로 두 한국이 '김일성주의' 아래 통일되기를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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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북한은 핵무기의 소유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습니다. (사진: 에릭 라포르그)

남한에 비치된 미국 핵무기의 위협은 북한 지도층을 긴장하게 했습니다. 1986년 평양에서 열린 '조선반도에서의 비핵·평화를 위한 평양국제회의'에서 김일성은 "미국은 좁은 남조선에 대량의 핵무기들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남조선의 핵무기들은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 지역에 배치한 밀도보다 무려 네 배나 더 높게 밀집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강력한 미국을 등에 업은 남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포위된 비핵 소국의 이미지를 내세워 서방 세계의 좌파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노동당과 기타당 소속의 하원의원 15명이 1986년의 평양 비핵·평화회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결의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무려 1천개가 넘는 핵무기가 한국에 비치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긴장된 지역이 되었다. 북한은 단 하나의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영국 내각 그리고 유엔에 한국에 주둔한 모든 외국군과 외국군 군사 기지를 철수시킬 것을 건의하며 이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가 비핵화 되기를 희망한다"

진실은 저 멀리

물론, 북한의 비핵화 레퍼토리의 기만성은 아주 오래 전에 들통 났습니다. 오늘날 북한 정부는 그 누구보다 핵무기를 신봉하며 '서울 불바다'를 강조하는 나라입니다. 북한은 엄연한 핵무기 보유국이며 민주화된 한국에서 미국의 핵무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 북한의 비핵화 수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은 '북한 정권은 의도적으로 속내를 숨기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분명 우리가 북한의 보도를 접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배우는 점은 많지만 외부의 관찰자들은 북한이 내보내는 보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보도는 북한 정부가 알리고 싶은 내용,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브라이언 레이놀즈 마이어스 교수는 북한의 선전물은 국내 소비용, 국내 및 해외 선전용 그리고 해외선전용 세 종류로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1986년 평양 비핵·평화회의와 그를 통한 김일성의 사상전은 오직 해외선전을 목적에 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최근 8.25 회담을 통해 언급된 북한의 '평화' 레퍼토리 역시 그들의 기만적 연막작전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쓴 벤자민 영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역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입니다. 안재혁이 번역했으며 메인 사진은 D-Stanley의 소유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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