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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30일 10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30일 14시 12분 KST

북한의 시장화가 가정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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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지 않았지만 각 가정은 능동적으로 시장화에 대응하였다

가정의 시장화

북한에서 시장화가 이루어지며, 일상적인 사회 경제적 활동은 가족의 활력을 높이고 기능을 강화했다. 국가의 각종 제도와 기구가 유명무실해지면서 노인과 어린이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을 부양하는 국가의 기존 기능이 약화되었고 이러한 역할은 가정으로 전가되었다. 시장화 이전 김일성 치하의 국가는 가정을 사상교육의 장 또는 정치적 매개체로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국가가 부과하는 공적인 활동을 강제하면서 가족의 존재와 역할을 주변화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미 시장화된 선군체제기에 가정은 사회경제적 단위로 훨씬 명확하게 재구성 되었다. 이 안에서 사적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국가 주도에서 벗어난 사회적 관계들이 번성하였다. 동시에, 가족은 시장화된 관계들을 조직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구로 발전했다.

시장화 된 북한에서 여성은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수적인 성 역할을 요구받았다.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사회적, 정치적 지위 향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많은 여성들, 특히 젊은 엄마들은 여전히 가난과 굶주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사노동에 기여하는 남성들이 늘어났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이 가정의 가장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실질적인 변화들은 가정과 사적인 영역은 여성의 분야이며, 공적인 영역은 남성의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암묵적인 북한 사회의 합의를 약화시키지 못했다. 여성이 가정에서 주된 수입을 얻는 역할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편에게 종속되어있다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이와 같은 고정된 성역할 인식으로 인해 국가가 더 이상 사회 안전망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성들은 형편없는 국가 서비스를 대체하여 노약자 등을 돌볼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 데에는 여성들이 시장으로 이동하며 필요한 인력 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크다.

그러나 여성들이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결과, 여성들은 몇 명씩 함께 돌아다니며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거래 활동에 참여했고 개인의 경제 활동을 방해하는 국가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국가가 물자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여성에게 좀 더 책임이 더 가중되었을 뿐 아니라 제한적으로나마 개인의 자유의 폭도 넓어졌다. 이같이 여성들이 시장 활동에 참여하면서 전반적으로 개인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량이 늘어났고 가정생활에 대한 국가의 통제도 줄었다.

다른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교회와 시민단체가 사회적 지원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비국가조직이 허용되지 않는 북한에서는 가정이 사람들의 의지처로서 주된 사회기구의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은 경제적, 사회적 자원을 가정 내에서 동원했다.

비국가조직의 활동은 매우 무거운 처벌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사적이며 가족 주도적인 경제·사회적 연결망의 경우 그 비공식적 속성 때문에 비정치적이라고 여겨 허용하였다. 북한 정권은 가정의 도덕적 가치를 치켜세우고 이를 법제화 하기도 하면서 가정 안에서 또는 그 주변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경제적, 사회적 활동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8년에도 북한에서는 성인 중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 또는 앞으로 결혼할 미혼자에 국한되어 있을 정도로 기혼남녀를 기본으로 한 전통적 가족제도가 여전히 뿌리 깊다. 남성은 18세부터, 여성은 17세부터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었으나 25세 이전에 결혼하는 청년은 거의 없다. 2008년도에 결혼을 한 사람들의 중간 나이는 남성 28세, 여성 26세였다. 결혼에 있어서 주된 제약은 사병으로 복무하든, 민방위 조직에서 복무하든 병역을 마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북한 정부는 여성들이 젊은 시절 사회를 위해 헌신하려 늦게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늦어진 결혼 풍토를 지지했다.

시장화 된 시대에 가정의 목표는 국가의 목표와 동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정의 목표는 정확히 국가의 목표와 상반되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일상생활에 대해 국가적 금기사항을 피해 활동하면서 살아남았다. 특히 국가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참여하는 무수한 거래활동들에 여러 금지사항을 부과했다.

그러므로 선군정책 시기의 정책들은 대부분 가정들의 주된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는 사람들이 체제 변혁을 지지하는 결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정권의 유지에 별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시장가치

시장화는 사회·경제적인 과정이었다. 개인은 일상의 경제적 결정들을 자율적으로 하고 국가에 대한 의존을 멈추었다. 계속된 식량 부족으로 주민들은 국가의 규제를 무시하고 회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국가의 권위에 대한 무시가 팽배했고 그와 동시에 사유재산과 개인의 이익추구라는 시장의 가치가 제도화 되어갔다. 무역 거래와 이익의 추구, 그리고 상명하달식의 경제적 통제에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로의 이행도 김일성 시대의 규범들을 소멸시키지는 못했으나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

생존이 자립을 의미한다는 보편화된 의식은 국가와 지역 사회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합리적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 자구책을 마련해 그 이점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살아남거나 더 나아가 성공한다는 말이 상식이 되었다. 반면 그런 요령이 없는 사람들은 빈곤해지거나, 병약해지거나, 혹은 요절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북한 사람들은 중앙집권적 정책결정자들의 지배를 수용하는 대신, 일상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회피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중요시했다. 스스로 수입원을 찾은 주민들은 개인의 예산을 스스로 계획하면서 개인적으로 저축(가능한 곳에서는 미 달러화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양한 합법, 반(半) 합법 시장들에서 상품들을 사고팔았다. 경제적 보상이나 불이익은 지금까지 당의 명령에 의해 시행되었던 정치적 보상과 처벌 시스템보다 훨씬 중요성이 큰 것으로 인식된다. 결국, 종래의 집단주의에 대한 강조보다 개인적 이익추구가 더욱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책에 대해서

하젤 스미스의 North Korea: Markets and Military Ru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는 북한 김일성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과 기근 후, 시장화 된 정치, 경제 사회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 내용은 시장화를 사회적 절차로 보고 있는 아홉 번째 장 끝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이 장에서는 정당, 법과 질서 그리고 군대와 가정의 시장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원문은 데이터와 자료들에 대한 많은 인용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온라인 기사에는 이 부분들이 생략 되었습니다. 괄호 안에 있는 코멘트들은 원문에 있지 않은 부분입니다.

이 글을 쓴 하젤 스미스(Hazel Smith)는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의 국제 한국학 연구소 소장입니다. 박현비가 번역했으며, 메인 이미지는 Ray Cunningham이 찍은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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