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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4일 08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24일 14시 12분 KST

자동차, 배, 식당 | 북한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

소매업계에 개인 사업자들이 증가한 때는 배급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1994년도 쯤부터이다. 배급제도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물건을 파는 일은 단속을 피하기 쉽고 시간적 여유와 네트워크를 가진 여성들의 몫이었다. 처음엔 도로 옆 보따리 장사로 시작하였지만 점점 돈을 모아서 국영상점을 인수하거나 가게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일이 요식업에서도 일어났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여성들이 요리솜씨를 최대한 이용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1997년에서 1998년 사이 큰 가뭄이 들었을 때, 국유 식당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보다 더 나은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 식당들이 생겼다.

자동차, 배, 식당: 북한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

요사이 북한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도시 간 구간 뿐만 아니라 지역 내에서도 민영 버스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택시들 역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택시들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대다수의 택시들은 버스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아닌 민간회사들의 소유이다. 도시 간 사람과 물자의 이동은 최근 들어 개인 자본들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분야이다.

언뜻 보면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 맞나 싶은 -사실은 가짜 국가 허가증을 달고 있는- 사업들이 오랜 시간 동안 증가하는 추세이다. 소매업계, 요식업과 어업, 장거리 운송 분야는 자본주의적 모델이 특히나 성공을 거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업들은 2000년대부터 대부분 민영화되었다.

이런 분야들이 자본주의에 성공한 이유는 다 제각각이다. 소매업의 경우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소매업계에 개인 사업자들이 증가한 때는 배급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1994년도 쯤부터이다. 배급제도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물건을 파는 일은 단속을 피하기 쉽고 시간적 여유와 네트워크를 가진 여성들의 몫이었다. 처음엔 도로 옆 보따리 장사로 시작하였지만 점점 돈을 모아서 국영상점을 인수하거나 가게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일이 요식업에서도 일어났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여성들이 요리솜씨를 최대한 이용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1997년에서 1998년 사이 큰 가뭄이 들었을 때, 국유 식당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보다 더 나은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 식당들이 생겼다.

작은 노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운영되었지만 큰 식당들은 법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였다. 법적인 보호가 필요한 큰 식당들은 폐업한 국영 식당의 허가증을 얻는 방식으로 법적인 보호를 취득했다. 여성이 대부분이었던 식당업자들은 인수한 식당을 새로 개조하고 필요한 용품, 기계들을 사서 식당을 다시 시작하였지만 가끔은 아예 다른 업종으로 개업하기도 하였다.

서류상으로 식당은 국가 소유이고 실질적 소유주는 법적으로는 사업체의 최고관리자일 뿐이다. 실질적인 사장이 종업원을 고용하고 해고하며, 사업을 경영한다.

사장과 국가의 관계는 일반적인 시장 경제에서 세금을 납부하듯 수입 중 일정 금액을 송금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정부에 납부할 액수는 협상 가능하며 사업가들은 회계부정에 능했으므로 정부 감독관들은 기업 수익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사업자들은 지금 상황을 눈감아주는 감독관들을 섭섭하지 않게 챙겨준다.

이처럼 경쟁력이 떨어진 국영 기업들이 조용히 사업을 철수하면서, 개인 사업가들은 소매업과 요식업 분야를 잠식해오고 있다.

사진: 에릭 라포르그

낚시하러 가자!

어업은 사정이 달랐다. 어업은 놀랍게도 꽤 이른 시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이전부터 민영화되었다. 이후 국영 어업회사의 선장과 관리인, 그리고 심지어 사업수완 있는 일부 해군 장교들까지 해산물이 북한에서 쉽게 돈이 될 만한 몇 안 되는 사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선장들은 잡은 생선을 일본 어부들에게 당시로써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팔 수 있었고 조금 더 신중한 어부들은 90년대부터 해안도시에 생기기 시작한 중간상인에 의지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중간상인들은 사업을 국영 무역 회사로 가장하였지만 어떤 면으로보나 사실상 이들은 개인 사업가들이었다. 그 당시 해산물 무역은 가장 수익이 큰 사업이었고 이 부문에서 1990년대 북한 최초의 자본 축적이 일어났다. 단, 골동품 거래는 수입이 더 좋았지만 훨씬 더 위험한 사업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정부는 당초 이런 사업들을 좋게 보지 않았고 몇몇 어부들은 대규모 단속에서 적발되어 '체제전복적 경제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화의 유혹이 너무 큰 나머지 1995년도쯤부터 정부는 단속을 포기하고 외관상 국영기업 소속인 어부와 관리자들이 이윤의 일부를 국가와 공유하는 조건으로 어획고를 판매할 수 있게 암묵적으로 허가했다.

버스의 경우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민영화되었다. 김일성의 치하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벗어나려면 나라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였고 그 허가를 받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여행을 할 일이 없었으며 허가를 받고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해도 그 지역에 오래 있지 않았기에 국가에서 제공하는 교통수단이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도부터 갑작스럽게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물건을 싸게 사서 이윤을 붙여 팔기 위해 지역 간 이동을 시작했다. 관리들의 단속을 피할 소소한 뇌물과 함께 보다 효율적이고 빠른 이동 수단이 필요하였다. 열악한 철로망이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자 민간자본이 치고 올라왔다. 1990년대 말부터는 개인사업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중고트럭이나 버스를 매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 차량들을 북한으로 들여온 후 당국과 생기는 문제를 피하고자 정부 소유로 등록했다. 당국의 비호를 원하는 수준에 따라 등록처가 달라지며 등록비도 정해져 있다. 군부대 차량으로 등록하려면 매우 비싼 등록비를 내야하며,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로 등록할 때는 그보다는 조금 싸고, 민간업자 차량으로 등록하는 건 헐값인 식이다.

차량등록이 끝나면 운송업자는 사람들을 싣고 다른 도시들을 오가면서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운전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말 할 필요 없이 자동차 소유주는 아니다. 트럭이나 중고차를 살 수 있는 재력 정도 된다면 운전자를 고용하여 사업을 꾸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로 사업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짐을 수송하는 이런 차는 '소비차'라고 불린다. 이렇게 출발한 운송사업은 짐이나 다른 물건들을 배송해주는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국가가 운영하는 우체국은 느리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도 이러한 서비스를 환영하였다.

김정은 집권 3년 반 동안 이러한 민간 사업들은 성장을 구가했다. 민간 경제활동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고 있던 아버지와는 달리 김정은은 민간경제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있으며 어쩌면 '신경제'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은 보다 더 나은 교통수단과 식당, 가게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경제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민간 부문의 영향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글쓴이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Nikolaevich Lankov)는 1980년대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학한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입니다. 이 글은 윤이나가 번역하였으며, 메인 사진은 Eric Lafforgue가 찍은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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