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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2일 11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2일 14시 12분 KST

북한에도 지역감정이 존재할까?

양강도는 '날강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실 북한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곳이 양강도이기 때문에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강도에서는 거의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어 돈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 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해져서 잘 모르겠지만 타 지방 사람들은 그런 문화가 조금은 낯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강도는 가장 인심이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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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News는 가깝고도 먼 곳인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매주 북한 출신자에게 한 가지씩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주에는 "북한에도 강원도 사람들이 함경도 사람을 무시한다든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와 같은 지역감정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

한국의 6-7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북한에도 지역감정이 좀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각 지역마다 그 지방 사람들에게 붙여진 별칭을 알아보며 왜 그러한 편견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북한에서 지역색을 거론할 만한 지역으로는 평양, 양강도, 자강도, 황해도, 함흥이 있습니다. 다른 지방 사람들 역시 양강도 출신인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평양사람들을 부를 때는 '평양노래'라고들 합니다. '노래'라는 말은 일하기 싫어하고 놀기만 좋아한다는 뜻으로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평양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이들이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맡은 일에서 빠져 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래'라는 말을 꼭 평양 사람들에게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보면 '까나리 그물에서도 빠져 나갈 것 같은' 사람 -아주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는 사람- 이 어딜 가든 한두 명씩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대부분 '노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생활하는 동안 평양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대부분 투박하기 때문에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히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시켜도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기 때문에 가끔은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양 사람들은 결국에는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시키는 사람이나 주위 사람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그 상황을 구렁이 담 넘듯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평양 사람들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지방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자강도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기꾼'이라는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10명이 사기를 당하면 거의 7명은 자강도 사람에게 당했을 만큼 자강도 사람들이 사기를 잘 쳤습니다. 자강도는 제 고향인 양강도와 별로 멀지 않음에도 말투부터 천지차이로 달랐습니다. 양강도 사람들은 억양이 세고, 톤이 높지만 자강도 사람들은 부드럽고 목소리 톤도 낮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덕분에 자강도 사람들이 양강도 사람들에게 쉽게 사기를 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3번 정도 사기를 당했는데 가해자는 모두 자강도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중에 피해액을 전부 돌려받기는 했지만 그들을 잡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자강도 사람이라면 우선 경계를 하게 되고,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강도 사람들이라고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두 번 당하고 나니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황해도 사람들은 지나치게 착해서 '땡해도'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황해도 사람들의 착한 심성을 전해 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에 황해도 사람들은 썩은 새끼줄에 묶여 가면서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놈 순사가 가는 길에 술에 취해 길에서 자고 있으면 "순사님 이러다 어두워 질 때까지 경찰서에 도착하지 못 하겠어요. 어서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순사를 깨워 자기발로 경찰서에 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회자됩니다.

함흥 사람들, 특히 함흥 여성들은 '함흥얄개'라고 불립니다. 함흥 여성들은 대체로 생활력이 강하고 드세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한 성격적 특성이기는 하나 가끔 경우 없이 우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조금 안 좋은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에도 함흥 여성이 시집와 살았는데 목소리 톤이 높고,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벽도 문이라고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어 동네 사람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본인도 조금씩 고치려 노력하고 동네 사람들도 조금씩 받아 주면서 나중에는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생활력이 강해서인지 함흥에서 시집온 여자들은 대부분 가정을 잘 꾸렸고, 먹고 사는데 어려움 없이 잘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지막으로 양강도는 '날강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실 북한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곳이 양강도이기 때문에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강도에서는 거의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어 돈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 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익숙해져서 잘 모르겠지만 타 지방 사람들은 그런 문화가 조금은 낯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강도는 가장 인심이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양강도는 날씨가 춥기 때문에 과일나무도 자라지 못할뿐더러 벼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심이 좋기 때문에 전국 각지의 꽃제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다른 지방들에서는 음식을 훔치면 끝까지 따라와 뺏고 때리기 일쑤지만 양강도 사람들은 대부분 따라오지 않고, 오히려 지나가면서 가끔씩 음식을 사주거나 돈을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집도 오지랖 넓으신 어머니 덕분에 꽃제비들을 집에 데려다 식사를 대접하거나, 명절 음식들을 가져다 주곤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나중에 집에 찾아와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제 훔치고 빌어먹는 것을 그만두고 구두를 닦거나 역에서 짐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돈을 받아 가정도 꾸리고 잘 산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꽃제비들에게 음식을 주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왔다 간 다음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위의 모든 이야기들은 북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특정 경험을 하면서 자란 개인의 생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아예 지역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더 심각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건 사물이건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에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도 단편적인 언론 기사나 항간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단정적으로 믿기 보다는,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부터 선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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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있으면 ask@nknews.org로 이름과 사는 도시, 그리고 질문을 적어 보내주세요.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채택하여 답해드립니다.

글쓴이 이제선은 20대 후반이며 2011년에 백두산을 통해 탈북했습니다. 삽화는 Cathaerine Salkeld가 그렸습니다. 영문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