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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롭고 나른한 봄날, 당신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특히 지금쯤 설레는 맘으로 점점 사랑을 키워가고 있을 열정적 커플에게 ‘주말 데이트’는 약속하지 않아도 이미 결정된 코스일 것.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커플은
PRESENTED BY 한화생명
'가능성 있는', '어울림', '따듯한', '다양한', '역동적인', '매력 있는', '중심의', '활기찬', '인간적인', '재미있는', '첨단의', '흥이 있는', '자유로운'으로 구성된 13개의 키워드는 서울 시민 입장에서 보기에 무척 공감 가고 타당성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은 최종화 단계에서 '여유있는', '배려하는', '트랜디한', '열정적인', '공존하는' 5개의 키워드로 압축되며 의미가 묘하게 변질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트랜디한'은 '열정적인'에 반영 가능하고, '배려하는'은 '공존하는', '여유있는'에 반영가능하다는 이유로 최종 키워드는 '공존', '열정', '여유'로 정해져버렸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서로 공존하며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열정도시, 서울'로 둔갑한 것이다.
나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모른다면? 간단하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나에게 무한대의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봐라. 정말 나의 열정이 있는 것이라면, 숨을 쉬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무엇인가 하고 있을 것이다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 보상도 없는 일임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임에도...
말렉은 허핑턴포스트에 사진 속 남자와 여자는 이전에 전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저는 노년의 섹스도 관능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사진을 위해 진짜 섹스를 한 건 아니지만요." 남자는
과연 열정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업무에 직면해서 열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 열정을 강요당하고 있지 않은가? 의미상 스스로 우러나와야 맞을 텐데 왜 열정을 강요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열정 없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전지로 사용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지금 이 세상은 양극화가 고착되어버린 승자독식사회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노동과 대가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
"냉정한 열정"이라는 화두를 예전에 한 선배가 미국 진보적 지성인의 예를 들어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선배가 지적한 미국 진보적 지성의 문제는 너무 냉정하다는 데에 있다. 냉정하기만 하고 열정이 없는 그들의 태도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슈들에 대해 분석적으로 잘 이해하고, 해결을 위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잘 알고 있지만, 사회를 변혁하려는 에너지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와는 반대로 열정이 과도한 상태도 다른 형태의 문제를 가질 수 있을 듯하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에너지는 충만하지만, 냉정하지 못한 경우에는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너무 쉽게 찾아내고, 하나의 처리하기 쉬운 희생양을 지목하여 열정을 배설해 버리는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도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세월호 사태를 통해서 생겨난 이 엄청난 열정이 조금씩 냉정으로 이어지고, 열정과 냉정이 교묘히 균형을 이룬 "냉정한 열정"의 분위기가 자리잡히길 바라본다.
예술인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에 대해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이 두려움이란 어디까지나 창작이 어렵고 불확실할 때 느끼는 개인적인 것이다. 만일 예술인이라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곡해하면 곤란하다. 이 구별점을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예술인이란 당연히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누려도 되는 존재로 평가절하 당하기 쉽다. 결국 쌓이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라는 냉정한 눈초리라든가 '예술하면 굶어 죽는다'라는 우울한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