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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는 200만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즉 분단으로 모든 한국인은 일본 국적을 잃었다. 이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재일동포 2세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 있는데, 바로 웹툰 '깡'이다.
기술자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획자가 평가절하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정확히는 기획이라는 <생각의 기술>의 부가가치가 무료로 인식되어 있다는 말이다. 15년을 기획자로 살면서 무수히 많은 제안서를 썼지만, 선정되지 못한 제안서의 값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기술의 시제품을 의뢰하면 적어도 그 원가는 받는다. 기술과 기획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증명하는 이야기다.
직원이 몇 명이세요? 10년 넘게 사업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라면 이 질문에 솔직하기 어렵다. 정확한 숫자를 말하면 적어 보일 것 같고, 부풀려 말하면 부담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바로 튀어나올 테니까. 그런데 이 질문의 정답은 직원의 숫자가 아니다. 본질은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특히 직원이 10명 이하인 사장에게는 정말 필요한 통찰.
1970년부터 1990년까지의 경제발전기, 우리는 수출 1억 불, 국민소득 1만 불, 수출 100만 대 등의 구호를 목 놓아 외쳤다. 모든 목표는 늘 0이라는 숫자로 끝났다. 하지만 아산은 달랐다. 1976년 우리가 처음 만든 자동차 포니의 10만 대 수출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100,001대 수출 기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17살의 나이에 몰래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몰고 간 소는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였다.
대한민국의 기업은 대부분 리더가 스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리더와 스타의 역할은 크게 다르다. 리더가 조직의 원활한 흐름을 책임지는 경영자라면, 스타는 조직의 대외적인 상징이 되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마케터다. 둘의 존재는 불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 그야말로 무적함대다.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 캐머런 매킨토시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경우가 그렇다.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타일러 코웬은 "가장 예술적인 것이야말로 상업화되고 대중화되어야 하며,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예술작품에 값을 매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연달아 발생하는 예술의 경제적 가치, 예술문화 사업의 창구효과(window effects)에 주목하고 예술을 '산업화'하자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가는 경제논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2013년부터인 것 같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고, 부러워하던 대기업 출신 선배 미생들이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쫓겨나 사회라는 지옥으로 대거 떠밀려 나오기 시작한 일이. IMF가 시작되던 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지금까지 그런 미생의 대이동을 직접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 미생들의 스펙은 너무 훌륭하다. 그리고 미생을 부러워하는 또 다른 종족(?)을 대량으로 발견했다. 아직 미생조차 되지 못한 미취업 청년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비생(非生)들.
배신의 대가는 참혹했다. 반란을 일으킨 후, 자신의 리더였던 잭을 무인도에 버리고 보물섬을 발견하지만 욕심 때문에 달빛이 비치면 추악한 모습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리고 만다. 문제는 그 저주가 선원들 모두에게 걸렸다는 것. 비겁한 리더를 따른 선원들은 평생을 저주에 걸려 비참하게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비겁자는 포기를 모른다. 저주를 푸는 방법을 찾은 바르보사는 선원들을 설득해서 더 비겁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 하지만 죽을 날을 모르는 게 나아. 삶의 신비를 만끽하며 후회 없이 사는 거야." 위의 글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의 대사다. 충직한 갑판장 '깁스'가 선장인 잭에게 묻는다. 은잔과 눈물과 영원한 젊음을 선사하는 샘물까지 다 가졌는데 왜 마시지 않았느냐고. 잭이 대답한다. 샘물이 사람을 시험하긴 하더군, 영원한 삶도 좋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기업은 더 이상 예술을 사랑하지 않는다. 언론에 기사화되는 일을 더 애정한다. 그래서 발톱은 사라졌다. 기업의 문화마케팅은 더 이상 문화를 창출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