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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를 통해 생각의 지평이 넓어졌다
나는 제이미의 팔뚝에서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기 위한 혈액검사 주사바늘자국을 발견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자인가 보다" 라고 했을 땐 "그래, 그렇게 살아라"고 말했지만, 정말 외형을 바꾸려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며칠 전, 수술 부위를 감고 있는 압박 붕대를 푼 모습을 어머니께서 처음 보셨다.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만족하냐." / "응." 대화는 간결했다. 나는 이 간결한 대화에서 속도 없이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딸이 커밍아웃을 한 뒤로,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수적일 거라는 판단 때문에 오빠는 커밍아웃의 마지막 장벽 남겨두었다. 보수적일 것이라는 판단과 나의 젠더 편견이 입을 막은 것이다. 어머니 병환으로 가족회동이 잦던 어느 날, 오빠에게 얘기를 꺼내게 됐다.
군형법 같은 건 정말 네가 군대에 가서 잡혀갈 수도 있는 너무 큰 문제잖아, 어떻게 동성애자 다 잡아간다는데 널 군대를 보내. 그래서 막 그런 집회(군형법 폐지 집회)도 가게 된 거지. 가기 전에는 내가 뭐 구호 외치는 걸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가니까 또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더라고.(웃음) 아 이게 부모의 힘인가. 부모가 돼서 내가 이렇게 됐나. 옛날에는 자신감이 없어서 못 나섰지만 이제는 자식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용기 내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싶은 거지. 그리고 반성도 좀 해. 왜 그동안은 사회적 소수자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깊게 안 가졌을까.
피디수첩이 방송되었을 때,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 모두 카메라가 비추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밝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도 방송에 공개되어도 괜찮다고 할 만큼 단단해졌다. 물론 방영되고 나서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불안함도 있었지만.... 그런 저런 걸 다 고민하면 세상일 아무것도 못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뭐든지 하고 나서 후회하기로 했다. 안하고 생기는 후회는 영원히 숙제로 남겠지만 하고 나서 생기는 후회는 적어도 해결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아이의 반응을 보니 그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일단 첫 반응은, 조용해졌습니다. 6명이 앉아서 술을 먹는 자리였는데, 제가 커밍아웃을 의도해서 한 게 아니었고요. 그 친구들 모임이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등산을 가는 모임이거든요. 그런데 성소수자 부모모임도 매달
2: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9. 왜 동성 간에 결혼을 하려고 하나요? [2016년 10월 타이페이에서 열린 '프라이드 행진' 참가자] 오 -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대부분이 직장 다니잖아요. 그런데 가족 관련된
각자 고민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커밍아웃을 결심한 성소수자들에게는 아직 많은 난관과 단계들이 남아있다. 부모님이 TV를 보거나 식사하다 무의식중에 했던 차별 발언이 생각나기도 하고, 혹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해본 적이
폭력을 가한 이후로 가족들은 나에게 동성애,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애가 착해서 세상에 관심 많고 사회적 약자/소수자 인권활동을 하는, 그런 착한 아들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역시도 나는 답답했다. 내가 성소수자인데, 왜 이성애자인 척하면서 가족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걸까. 그래서 난 다시 나의 존재를 알리고 가족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다시 커밍아웃을 하고자 했다. 성소수자가 혐오가 넘쳐흐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공간도, 교회라는 공간도, 어느 하나도 내게 편한 공간이 없는데, 가족마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