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jae

다 읽고 방치한 책들은 꽉 찬 책장에 자리 잡지 못하고 바닥과 책상, 침대에 켜켜이 쌓여 사나운 기둥이 된다. 그래도 나는 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괴로워서 뒹굴거리다 유혹에 항복한다. 고뇌와 지름의 과정을 관찰하여 결론 내건대, 나는 독서가가 아닌 귀 얇은 소비자에 가깝다. 책들과 통장을 학대하고 있다. 죄책감으로 심란한 마음을 달랜답시고 정리정돈 기술에 관한 책을 사서 책 기둥의 키만 키우는 어리석음이라니.
“다산의 문집 이름에는 왜 ‘다산’이란 그의 호 대신 ‘여유당(與猶堂)’이란 글자가 들어갔을까? 여유당은 정약용이 자신의 서재에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당호(堂號), 즉 서재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유당에는
“돌이켜보면 90년대는 참 멋진 시대였어요. 1996년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냈는데, 그해 첫 작품을 선보인 영화감독이 김기덕과 홍상수예요. …. 둘 다 충격적이고 신선했습니다. …. 아마 이번에 오지
절대 다수의 장서가는 공간에 대한 한계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는 일이 두렵고 새로운 좋은 책을 발견하는 일이 불편하게 될 수도 있다. 책을 사다 둘 곳이 없으며 억지로 구겨 넣는다고 해도 제때에 제대로 활용하기가 힘들다. 심지어는 그 책을 자신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기도 한다. 누가 강유원의 '책과 세계'를 강력추천해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드디어 주문했고 배송이 시작되었다. 그 무렵 책이 넘쳐서 정리되지 않은 책장을 뒤척거리다가 '책과 세계'를 발견했다.
"몇 달 전 남편과 나는 드디어 책을 한데 섞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안 지 10년, 함께 산 지 6년, 결혼한 지 5년 된 사이였다...그러나 우리의 책들은 계속 별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내 책은 주로 우리 아파트
진돗개가 그렇듯 장서는 한 주인만을 섬긴다. 주인을 잃은 장서는 안타깝지만,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주인이 세상을 떠나며 버림받은 유기견의 신세와 비슷하다. 장서를 의도치 않게 떠안은 자식들은 대개 헌책방이나 고물상에 무게를 달아 팔아넘긴다. 이런 이유로 헌책이나 희귀본 수집가들에게 최고의 기회는 다른 교양 있는 장서가의 죽음이다. 내 서재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지금도 내 서재의 장서는 풍전등화 신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만의 서재'라는 건 공통된 로망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네이버는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를 운영 중이고, 언론에 서재 스타일링이 '핫한' 트렌드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로망의 가장
“”당신이 선하고자 애쓰는 이유가 오로지 신의 인정과 보답을 얻거나 신의 불만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요? 그것은 당신의 모든 움직임, 심지어 온갖 속된 생각까지 감시하는 하늘의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서재는 사색과 휴식의 장소다. 잘 계획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규칙이 필요하다. 계획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책만 잔뜩 쌓아놓으면 '책 창고'이지 '서재'가 아니다. 정원을 관리하듯이 서재도 물을 뿌리고,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내고, 거름을 줘야 한다. 서재를 방문한 사람이 "이 책을 다 읽어셨어요?" 라는 질문을 했을 때 , 미국의 성직자 '토머스 웬트워스 허기슨'은 이렇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