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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러시아 10월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많았지만, 정작 혁명이 남긴 교훈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교훈은 레닌과 트로츠키 사이에 있었던 특별한 협력과 관계된 것이다. 1917년 2월 레닌은
지난 2013년,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정권은 유럽연합 대신 러시아를 선택했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야누코비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키예프 내에 있던 레닌 동상을 쓰러뜨렸다. 이후 우크라이나 내의
안철수처럼 주변에서 다 뜯어말리고 아직 시기가 아니라면서 혀를 차는 와중에도 정말 무리하게 서둘러서 전면에 나섰던 정치인이 역사적으로 하나 떠오른다. 오늘 불쌍하게 끌려나온(쿨럭;) 역사적 인물은 무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즉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지도자이자 소련 건국자 되겠다. 1913년 무렵 망명지 스위스에서의 레닌의 상황은 안습 그 자체였다.
짜르의 군인들은 짜르의 초상화를 들고서 짜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고통을 달래주실 자애로운 짜르를 보고 싶다며 짜르의 궁전으로 행진해 오던 노동자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아울러 "탐욕스런 귀족들과 악랄한 관료들이 자애로운 짜르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지만 우리가 직접 가서 짜르께 호소하면 잘 들어주시고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믿었던 노동자들의 소박한 환상도 그 피의 일요일에 완전히 박살이 났다. 오히려 짜르가 문제의 핵심이고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었다는 것이 러시아 안팎의 모든 이들에 백일 하에 폭로되고 말았다.
붉은색 티셔츠와 청바지, 흰색 운동화에 붉은색 노트북 컴퓨터를 든 젊은 날의 '섹시 레닌'. 젊은층의 외면으로 '노인과 연금생활자의 정당'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공산당이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할배 정당' 이미지를
야당과 여당을 넘나들며 대통령까지 지내며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김영삼씨가 생전에 누렸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지려 하고, 또한 그 자리에 끼지 못하면 그런 돼지 여물통(pork barrel)을 나눠 먹지 못한다는 절박감 탓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적 느낌도 드는 것이다. 특히나 '정계를 은퇴'하여 전남 강진에서 '칩거' 중이라는 손학규씨까지 며칠이나 상가를 지켰다고 하니 애잔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의 트로츠키가 엉뚱하게도 자신이 극동 모국(某國)의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장례식에 빠진 정치인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 줄 안다면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끝내 그들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프랑스 출신의 대표격이었던(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었던) 알튀세르는 1980년 어느 날 아내의 목을 졸라서 살해-_-하였음을 고백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한다(프랑스 좌파 중에서도 그의 부인 살해를 쉴드친 이들이 있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현실과 유리된 고담준론이나 내세우고 최소한의 윤리조차 지키지 못했던 주제에 변혁을 감히 입에 올렸던 어느 이념이 완벽하게 파산하는 순간이었다.
97년 전에 일어났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프랑스대혁명이나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처럼 시민들이 체제에 저항해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이 아니라 소수의 직업혁명가들이 무력을 동원해서 기존 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쿠데타에 가까운 사건이다.
옛 소련 시절에 세워진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모습이 카메라에 생생히 담겼다. 동상이 세워졌던 곳은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하리코프다. 동상의 높이는 20미터에 달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레닌 동상이었다